프롤로그 -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어

죽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생각

by 아스팔트 고구마

난 과거의 즐거움을 추억하는 것은 좋아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살면서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살아오지는 못했어도, 최선을 선택하지 않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으름이 의지를 이길 때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노오력을 한다 하더라도 100%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는 당연히 없었다. 최선의 선택의 위한 노력과 결과를 두고 말하기엔 오히려 그 짓을 뭐하러 했나 싶을 때가 많았다.

지금의 결과를 과거에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확정된 현재의 모습은 과거에 그토록 알고자 했던 지금이 되고 나서야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결국 다가올 미래도 지금의 선택을 반영한 현재가 만든다. 딱 한번 사는 삶에 사람은 모두 인생의 초보다. 인생에 마스터는 없다. 선택에 따른 후회가 적은 것일 뿐.






'20대가 인생을 논하는 것은 우습고 주제넘은 일일까?'

2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 전역을 앞둔 내 머릿속은 취업 고민과 미래의 두려움이 함께 뒤섞여있었다. 군대에서 본 지뢰 사고와 소대원의 백혈병 소식 등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생각했다. 그 사건들은 매일의 고단한 노력과 고심한 선택조차 결국엔 모든 것이 무의미함으로 변한다는 허무함으로 밀려왔다.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지뢰사고나 백혈병 모두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은 멀지 않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꼈다.


전역을 며칠 앞둔 마지막 수색 작전, 매번 걸었던 수색로에서 6.25 때 쓰던 불발탄을 발견했다. 그날따라 저승사자가 피곤했던 걸까, 내가 믿는 신이 날 좀 더 쓸만하다 싶어 이 땅에 둔 걸까? 날 데려가진 않았다. 지뢰였으면 나는 살아있었을까? TV에서나 보던 이야기와 사고가 바로 내 옆에서 벌어질지 몰랐고, 그게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직접 불발탄을 손으로 꺼내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다. 죽음은 내 가까이에, 그리고 언제나 있었다. 겨우 20대가 인생이라는 거대담론을 논하는 것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어떤 모양으로든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니까.






'죽음'이란 존재를 자각하고 나서야 난생 처음 의지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세계일주를 떠났다. 길어야 2-3년이 될 거라 생각한 세계일주는 8년간의 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의지적으로 끝냈다. 시작과 끝 모두 관성대로 살아온 방향을 바꾸는 그 선택을 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죽음 때문이었다. '10년만 젊었어도', '그때가 좋았지' 10여 년 가까운 시간을 외국에서 보냈어도 20대 때 들었던 말이 지금도 들리는 걸 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삶을 대하는 모습은 그리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과거로 돌아갈 일 걱정할 일은 없지만 현재까지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10년 전으로 다시 가져가는 일이 가능하면 사람은 같은 선택을 할까? 다른 선택을 할까? 아마도 자기가 겪은 바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확률이 크다. 군대에서 본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 덕분에 떠난 여행이었는데, 세계일주 동안 그런 일을 오히려 더 밀도 있게 겪었다. 그러다 보니 삶에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는 게 부쩍 잦아졌다.


"죽은 자는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하는 거다."


특별하다고 믿고 싶지만 살다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느낀다면 내 경험과 이야기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살아가다 한 번쯤 마주할 곤란한 상황에서 수월하게 결심을 도울지도, 또는 덜 후회할 수 있는 선택에 작은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