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과 해석

한결같지 않으면 어때서?

by 아스팔트 고구마

여행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8년의 시간을 기록한 여행기가 1000편이 넘었다. 덕분에 여행 중 현지에서 여행기를 통해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인터넷의 위력(지금은 이 말도 너무 낡은 느낌이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응원을 해 주시는 분들과는 별개로 일부 독자로부터 여행의 이동 방식과 일정에 여행할 때의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결같지 않은 나의 모습에 실망했다고.(그것이 한결같은 고생을 기대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왜 캠핑을 하지 않느냐 묻는 사람도 있었고, 명색이 자전거 여행에 왜 대중교통을 이용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첫 나라였던 중국을 달렸을 때만 해도 7개월간 약 8800km를 달린 것에 비하자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만으로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3300km 정도밖에 달리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여행 초기엔 여유로운 시간과 돈이 부족해 어떻게든 자전거를 활용해야 했다. (솔직히 아프리카가 너무너무 재미없던 이유도 컸다.) 반면에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짜 놓은 일정과 촉박한 시간, 여행 초기 대비 여유 있는 예산으로 여행 코스의 일부를 비행기나 기차, 버스 배로 점프했다. 응원이야 감사하다. 그러나 이러다 대륙간 바다 건널 때와 여행 중 잠도 자전거로 전부 해결을 요구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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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자전거 여행자와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착


여행 막바지는 서유럽을 향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발한 배는 약 20시간이 걸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겨울이었음에도 상쾌한 햇살이 날 맞이했고 바닷가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갈매기의 등장과 기분 좋은 짠내가 났다. 예상한 축축함 대신 상쾌함이 실린 바람 덕분에 가벼운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12월의 지중해 날씨가 어떤지 피부로 맛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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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다 담기도 어려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 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명성만큼이나 볼 것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놓칠 수 없는 랜드마크는 단연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었다. 건축을 잘 모르는 나로서도 성당 외관이 주는 독특한 디자인과 웅장함에 경이로웠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성당 곳곳에 새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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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


빛의 반영해 비치는 성당 외부의 느낌은 햇빛의 강도에 따라 변하는데 그 사진에서 본 것과는 전혀 비교될 바가 아닐 정도로 강렬했다.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화를 이루면서 은은하게 퍼진 채 내려오는 빛은 마치 조명 커튼처럼 보였다. 관광객으로 붐벼서 그렇지 내부가 고요했다면 생각지도 않게 무릎 꿇고 기도하게 만들 수도 있을 만큼의 분위기였다.


성당 내외부를 보며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부분은 이 건물의 설계자였다. 그는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더불어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과 빌딩으로 함께 유명해진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다.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디자인 때문에 유명해진 이유도 있지만 더욱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건축기간이 무려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계속 지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2026년,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해 완공을 목표로 한다.)


21세기가 된 지금은 가우디에 대한 평가를 '20세기에 재림한 미켈란젤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앞선 건축의 혁신가'라는 이름으로 설명하지만, 생전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물론 당시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건축가이긴 했지만, 주류였던 양식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을 설계했다. 당시 사람들 중 일부는 그의 작품이 독특하다고 여겼지만 상당수는 괴이한 것으로 여겼다.


가우디의 말로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미사 후 돌아오는 길에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입었고, 그의 볼품없었던 차림새 때문에 노숙자인 줄 알고 택시 탑승 거부와 병원에서도 여러 차례 받아주지 않아 사고 후 대처가 늦었다. 그는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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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박물관과 주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가우디의 말년을 생각해보며 스페인에 오기 얼마 전 지나왔던 네덜란드의 한 예술가를 떠올렸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사랑한다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빈센트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딱 1점의 그림만이 팔렸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선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행동과 정신병 이력, 생전 박했던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배경 지식이 없다면 당시엔 왜 그렇게 평가받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빈센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고흐 박물관 방문을 손에 꼽는다. 가우디의 독특한 양식처럼 마찬가지로 빈센트의 그림 또한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가우디와 달리 빈센트는 생전 성공이라는 걸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이 두 예술가의 생전과 사후 평가를 보며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정의 조차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지 그들은 알 수 있었을까? 아니, 그들이 사는데 그게 중요하긴 했을까? 나의 삶을 살았음에도 결국 어떻게 해석될지는 나의 몫이 아닌데.






여행의 막바지, 비교되는 두 예술가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여행 속 삶과 삶 속 여행의 고유함을 떠올려본다. 어릴 적 빈곤하게 쌓아 올렸던 내 세계관은 이렇게 여행 중 얻은 생각을 골재 삼아 다시 리모델링하는 순간이다.


사람은 태어날 시기와 배경을 스스로 만들 수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의 사람을 보는 건 의미 있다. 가우디는 살아생전에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성공한 건축가였지만 현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통해 죽고 나서 전보다 더 알려진 사람이 되었다. 한편 빈센트는 당시 화가로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 그는 (어쩌면) 그가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위치의 세계적인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심지어 그의 작품은 가치를 매기기 조차 어렵다.


나에겐 두 사람이 남긴 작품과는 별개로 그들이 생전 겪었던 삶과 비교되는 이후 평가가 더 의미 있다.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들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한 명은 사고로, 한 명은 자살로 마감한 그들의 삶을 21세기를 사는 내가 바라보는 감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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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가우디 /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가우디는 당시 유행한 모더니즘 건축풍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자신의 작품에 그의 생각을 담았다. 빈센트 역시 함께 그림을 그렸던 세계적인 화가 폴 고갱과는 다른 화풍으로 그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가우디의 예술혼은 세계인을 사로잡는 건축물로 남았고, 빈센트는 죽었어도 그의 그림 그리기에 대한 소망은 강렬한 색채로 남아 죽은 그의 작품을 보러 외국에서 찾아오게 만들었다.


두 예술가가 생전 걸어온 길을 살피며 받은 느낌은 뻔한 결론이다. 과거의 옳음이 미래에도 항상 옳지 않음을, 과거의 평가와 현재가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삶과 나름의 결론을 보며 나의 이중성, 아니 다중성을 본다. 기분이 좋을 때면 성공한 가우디로, 기분이 우울하면 빈센트의 기분이 되어본다. 욕심이 생길 땐 유명세가 좋았던 가우디와 빈센트의 일부 멋져 보이는 적당한 광기, 그리고 그들이 꿈꿔보지 못한 크나큰 사후 평가를 전부 가지길 원한다.


한편으론 두 사람을 보면서 성공한 삶을 꿈꾸면서도, 그마저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고 나면 다 필요가 없는데. 거창한 여행 중 세계관 만들기는 별 의미 없음으로 돌아왔다. 어떤 이름을 남기느냐 하는 생각도 결국 남의 눈치에서 비롯된 건데 자유롭기 위해 자유를 가두는 모순을 만든다.


여행 중 사람들의 시선에 참 신경을 쓰는 나 자신을 보았다. 하지만 여행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 속 중심과 시선이 중요함을 느꼈다. 그땐 참 나이브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단 처음의 사실로 되돌아왔다. 다행이라면 이 과정 동안 나를 좀 더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관 만들기라는 거창한 주제는 접어두고 줏대나 가져야지. 조금 더 욕망하며 살아야지. 한결같지 않아도 됨을 스스로에게 강요하지 말아야지. 다만 책임감 있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