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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Mar 05. 2024

20240305 어쨌든 오늘

생각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 오늘은 등산을 하고 싶어졌다.



  갑자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임파선 전이가 심해 14시간 수술을 하고 나온 나는 보호자로 와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수술 안 받았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다. 전신마취가 풀려 정신 없는 와중에도 수술을 후회했던 이유는 그토록 원하던 죽음과 한 발 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자의와 타의가 반반 섞인 생존. 그래서 나는 2024년 3월 5일을 살아가는 중이다.


  수술 후 4개월. '나'는 생소한 '나'를 마주하고 있다. 나를 갉아먹고 있던 깊은 우울을 교수님이 수술하면서 같이 떼어주셨나보다. 하루하루 나아져가는 과정에는 우울이 거의 없었다. 내가 숨쉬는 사실조차도 슬퍼하던 내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 '나'를 이루고 있던 많은 것이 수술대 위에서 떨어져 나갔다. 수술실 천장에 붙은 뽀로로 스티커를 보면서 눈을 감았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0여일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온 후, 꽤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밤마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거나 칼을 들이미는 꿈을 꿨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몇 시간마다 깼고, 익숙하지 않은 뻐근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야'했다. 오롯이 내가 이겨내야 할 일이었고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기에. 끙끙 앓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아빠는 왜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그리움은 시간에 푹 묵혀져 원망으로 변해버렸다. 아직도 매일같이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종이 위에 토하고 잠든다.


  '암'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의 입에서 빠른 시일 안에 수술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나는 의연했다.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암은 내게 그저 감기 같은 질병이었다. 그랬으면 했다. 수술 받고 약 먹으면 금세 괜찮아 질 수 있는, 쉽게 고칠 수 있는 아픔이면 했다.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다, 착한 암이다, 다른 암에 비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암이다 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그게 맞는 말이라고 믿었다. 우연히 왼쪽 목에서 혹을 발견한 날부터 지금까지도, 내가 암에 걸렸(었다는)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울 수 없었다. 달래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운 단 말인가.


  일단 살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랬더니 아직 살아있다. 죽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흘러 넘처 삶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암은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나를 멈춰 세웠다. 쉬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했고, 견디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알았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던 타인의 감정에서 발을 뺐다. '나'의 변화가 새롭다.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겪으며 '나'는 '나'에게 낯가림하며 익숙해지려고 애쓰며 지낸다. 언제쯤 완벽하게 가까워질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어쨌든 아직 살고 있다. 곧 다가올 내일도 나는 살아 있을 거다. 썩 내키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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