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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Jan 07. 2022

서른한 살, PB센터 고객이 되다

나는 허수아비, 돈의 주인은 은행

 이 글은 곧 출간된 나의 첫 책

<내 집을 갖고, 새로운 뇌가 생겼습니다>의 일부분입니다. 출간 전 연재라고 하나요?  

블로그나 브런치 제가 운영하는 SNS 어디에도 노출하지 못했네요.  과거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담겨 있거든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바보 같았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글입니다. 제 삶에서 가장 아팠던 기억과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의 이야기입니다.


 투고 당시 한 출판사 대표님께서 ' 독자와 함께 하는 성장 스토리'로 가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최종적으로 그 출판사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대표님께서 제게 해주신 격려와 칭찬이 생각납니다.  작은 개인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성공' 이 아닌 '성장'을 향해 가는 이야기라서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곧 만날 나의 책을 생각하면 여전히 화끈거리지만 초심을 떠올리며 용기 내어 펜을 듭니다.

 바보 같았던 나의 고백이 여러분께는 삶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여러분은 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엄마의 목숨과 맞바꾼 유산


 나는 엄마가 쓰러지던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날 아침 내 결혼식 날짜를 정하는 문제로 엄마와 심하게 다투었다. 나는 내 할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 놓고 쌩하니 출근해 버렸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엄마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자 유산이 따라왔다. 돈은 좋은 것인데, 엄마의 죽음의 결과로 얻게 된 돈이라는 생각에 반갑지 않았다. 남겨진 유산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때 엄마와 싸우지만 않았어도...



 그때, 00 하지만 않았어도.... 수 없이 필름을 돌려 '그날의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다. 죄책감은 내게서 돈을 밀어내도록 작용했다.


 과거의 나는 돈을 쓸 줄만 알고 모으는 법을 몰랐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저축하고, 월급 대부분을 나를 치장하는데 썼다. 갖고 싶은 물건이 내 능력을 넘어서면 엄마에게 의존해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물욕은 끝이 없었다.

'돈 개념이 없던 나'

남겨진 유산을 함부로 쓰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그때, 엄마의 자산을 관리해 주던 모 은행 PB센터부터 반가운 제안을 받는다.  상속받은 유산을 관리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이 제안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받았다. 무거운 짐짝을 던지듯 은행에 모든 돈을 입금하고 나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들고 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던 나. 돈은 지킬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부모를 잃은 내게 은행은 '부자 아빠' 같은 존재였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유산을 알아서 관리해주겠다는 은행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다.

'유능한 전문가에게(프라이빗 뱅커)' 관리받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은 마치 내게 '돈을 다루는 능력'이 생긴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였다. 은행에서 권하는 상품마다 영혼 없이 도장을 찍고 사인을 했다. 이게 내가 한 노력의 전부였다. 은행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두 손에 쥐어진 것은 '돈' 대신 여러 개의 통장뿐이었다.




PB센터 가 봤니?

 

 은행에 들어서면 왠지 어깨가 으슥해졌다. 길게 선 줄을 뒤로하고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계단을 밟는다. 이 공간을 출입하는 내 또래의 고객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만큼 나는 특별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죽소파에 몸을 기댄다. 여기선 번호표 따위는 필요 없다.

 가입한 상품의 만기가 다가오면 센터장이 직접 내가 일하는 직장 앞까지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목동에서 강남까지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 주었다. 생일이 되면 꽃바구니가 배달되고,  신혼집에는 행복하게 살라는 메시지와 함께 예쁜 화분을 보내왔다. 그들은 명절도 잊지 않았다.

 

(중략)


나를 홀린 투자 의향서


"구혜은 님의 투자 성향을 분석해보겠습니다."

PB센터 담당자가 몇 방의 종이를 내밀었다. 내 투자 성향을 알아보는 일종의 설문지란다. 상속받은 유산을 지키고 싶어서 은행을 택했는데, 설문지를 받아 들자 마음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한 방에 큰돈을 벌고 싶어!



'은행에서 알아서 해줄 거야. 게다가 PB센터잖아.' 

돈을 지키겠다는 초심은 어느새 큰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으로 바뀌었고, 은행의 전문가와 시스템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설문을 마치고 나니, 나는 어느새 공격형 투자가가 되어 있었다. 


 "혜은 님 성향으로는 A형이 좋겠어요. '이런 성향' 고객님이 최근 가장 많이 선택한 상품이 바로 00입니다."

몇 가지 문항에 답하는 것으로 '나'란 사람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엮였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확신을 원한다. 누군가 나서서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유형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군가 알려주기를 원한다. 이들은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것, 남이 가진 것을 자신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바로 내가 그랬다. 

PB센터장의 말속에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단어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A형' '이런 성향' '최근 가장 많이' 같은 단어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당시 나는 내 돈이 어떻게 투자되고 어떤 원리와 규칙으로 운용되는지 알지 못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조차 몰랐다. 센터장의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체면을 차리느라 그의 설명을 다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길게요. 당신이 전문 가니까요.



부끄럽지만 내 마인드는 딱 여기까지였다.


(중략)



나는 허수아비, 돈의 주인은 은행


 나는 분명 내 돈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내 돈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음을... 주인을 잃은 돈은 은행원들의 손에 맡겨졌고 그들이 조정하는 의도에 따라 내 돈은 굴러갔다. 이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바보 같았는지 말이다. 그 돈은 분명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째, 나는 돈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돈 개념이 없던 나.

남겨진 유산을 함부로 쓰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이 돈은 지금 내가 받을 돈이 아니야, 시기가 너무 빨랐어. 없는 돈이라 생각하자.' 돈을 잃을까 두려웠던 나는 유산을 '없는 돈' 취급했다. 내가 돈을 외면하자 돈도 내게서 멀어져 갔다.


둘째, 나는 돈에 대한 목적의식도, 주인의식도 없었다.

은행에서 정해 놓은 기준과 잣대에 기대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결과 상당한 수수료를 내면서도 손실만 보는 무능한 투자가가 되었다. 목적을 잃은 돈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고, 주인을 잃은 돈은 운용하는 은행 구미에 맡게 다루어졌다. 돈의 주인은 은행이었다.  내 돈은 은행을 위해 일했지 결코 나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셋째, 나는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유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었지만 엉뚱하게도 공격형 투자 상품에 가입했다. 장기적인 안목이나 계획 없이 은행에서 권하는 상품에 투자하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모순 투성이었다.

은행이 내 돈을 자신들의 목적대로 주무르게 두고서 내가 얻는 대가는 고작 줄 서지 않고 은행 접견실을 이용하는 것, 도어 투 도어 서비스, 생일날 받은 선물과 꽃바구니 정도였다. 그때는 그것이 엄청난 호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근사한 케이크는 남에게 넘겨주고 나는 빵 부스러기에 만족한 셈이었다.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세상 곳곳에 산재한 덫에 빠진다. 발을 딛는 곳 모두가 함정이 된다. 상대방이 나쁜 의도를 가졌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친절과 호의가 한순간에 화살이 되어 나를 쏠 수도 있다.


 나는 분명 센터장의 선한 의도를 읽었다. 진심으로 그가 나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은행은 내 돈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닌 '안정'과 '보살핌'이었다는 것을… 엉뚱한 곳에서 부모님을 대신할 안식처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PB센터장은 내가 원했던 것을 분명히 주었다. 단지 내가 장소를 잘못 찾아갔을 뿐이다.






책에는 없는 이야기....


 내가 나의 돈에 이름을 붙여 줄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유산을 상속받은 지 무려 5년이 지나서야 내 돈을 내가 굴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듬해 봄날, 나는 엄마가 정해준 날짜에 맞춰 식을 올렸다. 혼주석에는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가 앉았다. 일부러 나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결혼식 준비도 혼자서 했다. 식장이며 혼수며 내가 직접 알아보고 발로 뛰었다. 서글픈 생각이 들라치면 그 생각이 내려앉기 전에 현재에 더 집중했다. '지금 여기' , '바로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서 있는 지금의 현실을 버티기 위해 나는 열심히 지금을 살았던 것 같다. 슬퍼할 겨를도 그리워할 틈도 주지 않았다. 늘 입꼬리를 올리고 살았다. 천성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엄마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어땠을까?

자주 하는 생각이다. 물론 너무 좋겠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왠지 부모님이 곁에 계셨다면 나는 여태 나이만 먹고 생각은 자라지 않은 중년이 되었을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철없는 어른이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려고 한다. '나 답게, 주체적이게, 나 다운 삶을 늘 고민한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는 여전히 마음 시리지만, 덕분에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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