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멀어지고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부산에서 상경하며 부모님께 50만 원만 주시면 어떻게든 졸업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수입이 변변찮았던 부모님에겐 너무나 큰돈임을 알고 있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합하여 29만 원을 받아 들고 집을 떠났다. 꿈에 부풀었다. 방 대신 값싼 독서실을 잡아 살며 일용직과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버티다 돈이 거의 바닥나버렸다.


며칠을 굶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눈썹을 깎았다. 눈썹을 깎으면 다시 자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어리석은 몸무림이었지만 어떻게든 희망의 옷자락을 잡고 싶었다. 눈썹을 깎으면 얼굴이 흉측해진다. 그 자리에 반창고를 붙였다. 그리고 대학 구내 취업보도과를 찾아가 아무거라도 일자리를 달라고 졸랐다. 최대한 불쌍해 보이려 애쓸 필요 없었다. 내가 봐도 불쌍한 몰골이었다. 일주일 뒤 취업보도과로부터 사설학원 강사 자리를 추천받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나름 큰 규모의 학원이었다. 주민등록증과 학생증을 확인한 원장은 한 가지 조건만 지켜준다면 바로 내일부터라도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출근할 때 군복 바지를 입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친구에게서 바지 하나 정도는 얻어 입을 수 있을 터였다. 영어를 가르치던 강사가 잠시 쉬게 되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지만 일을 잘하면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좀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원에서는 젊고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총각 강사를 새로 영입했다고 선전했다. 젊고 잘 생긴 총각은 맞지만 능력 있는 건 입증된 바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학원의 선전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저녁 7시부터 중학생 10여 명을 가르치게 되었다. 막막했다. 동네 학원을 다녀 본 적도, 영어를 가르쳐 본 적도 없어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산만한 중학생들은 수업에 잘 집중하지 않았고 필기조차도 하려 하지 않았다. 강한 동기를 가지고 온 학생들이 아닌 만큼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했는데 내겐 그게 없었다.


한날은 평소에 필기라곤 전혀 하지 않던 녀석이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적는지 물었더니, 엄마가 선생님 하는 말은 뭐든 적어 오라고 했다 한다. 뭔가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학원생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5명만 남은 날 저녁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원장이 기다리고 있다 작심한 듯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학원이 파하고 나면 환송 회식을 한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복잡한 감정에 젖어 부어 주는 대로 술잔을 기울였던 것 같다. 회식이 끝나고 원장이 봉투를 건넸다. 한 달 보름 근무일을 계산했다며 55만 원이라 했다. 독서실로 돌아오는 밤길은 무척 쓸쓸했다. 술기운에 비척거리다 가로수에 기댄다는 것이 그만 도로에 쓰러져 누웠다. 교사의 꿈을 갖고 상경했는데 가르치지 못해 해고당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막막했다. 교직이 정말 나의 길일까 하는 고민과 좌절감의 무게에 쉬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굉음과 함께 내 머리 바로 옆을 차바퀴가 지나갔다.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하마터면 머리가 짓눌려 그대로 생을 마감할 뻔했다. 어쨌든 살아야 했다. 어느듯 눈썹은 꽤 자라 있었고, 내 안주머니에는 55만 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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