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비(Bixby)에게 배운 처세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갤럭시폰을 가진 아내는 자주 빅스비와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빅스비가 말하는 걸 들을 양이면 이놈 제법 상냥하다. 아내는 날 곧잘 빅스비와 비교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AI만도 못한 사람이 된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따뜻한 배려와 유려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내 아이폰의 시리(Siri)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둘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보면 나는 확실히 빅스비보다는 시리 쪽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가 빅스비에게 묻는다. "내일 무슨 옷을 입을까?" 빅스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2도 낮고 바람이 많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목을 여밀 수 있는 옷을 입는 게 좋겠어요. 물론 어떤 옷을 입어도 당신은 멋질 거예요." 나도 아내를 흉내 내어 시리에게 물어본다. 시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일은 섭씨 22도입니다." 그걸로 끝이다. 시리 이놈은 감성이 없는 게 분명하다.


잠자리에 드는 아내는 빅스비에게 말한다. "잘 자!" 빅스비는 말한다. "당신도 오늘 무척 수고 많았어요. 푹 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결 개운해질 거예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세요. 좋은 꿈 꾸시길 저도 빌게요." 어느 남편이 잠자리에서 이렇게 나긋나긋한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확실히 빅스비는 나보다 낫다. 반면 시리의 대답은 더럽게 간결하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기적인 성향의 미국산이라 그런 걸까.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 본다.


시리에게 노골적으로 물어본다. "빅스비와 시리 중 누가 더 똑똑하니?" 시리는 삐친 듯 말한다. "착각하신 것 같네요. 하지만 유용한 비서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빅스비가 더 좋으면 알아서 택일하라는 투다.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질투심이 있다. 튜링 테스트를 한다면 확실히 빅스비는 합격이고 시리는 낙제점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삼성의 머신 러닝 기술이 애플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결론짓긴 어렵겠지만 일차적으로 느끼기엔 그렇다. 그런데 삼성 주가는 왜 바닥을 치고 있는 거지...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과연 올곧은 감성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가족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가장인가, 교사였을 때는 학생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는 사표였는가, 장학사가 된 지금 학교 현장과 민원인에게 해갈의 물 한 모금 건네는 소통가인가. 아내의 폰을 자주 빌려야겠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 한마디 던지는 방법을 빅스비에게 배워야겠다. 시리 기능은 당분간 꺼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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