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탐나
원래 하고자 했던 행사는 찻자리를 찾아 나서고 찻자리를 추천받아 펼치는 ‘구석구석 찻자리‘ 였다. 그러나 영 석연치 않았다. 공간에 대한 고민이 커지면서 찻자리를 찾아 선택하는 것도, 추천해 주는 찻자리를 받아 펼치는 것도 두려움이 앞섰다. 공간의 이야기와 사람, 그리고 차를 엮어내는 게 부담스럽고 또 억지스러웠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라는 성수동과 인근 문래 창작촌, 전남 강진과 영암, 담양 등을 두루 다니며 잘 나간다는 공간들을 가봤다. 덩치 큰 자본 또는 잘 엮어진 사람들의 관계망, 그것도 아니면 토박이들의 자연스러움이 공간을 만들어 냈다.
자본도 관계도 토박이도 어느 것 하나 해당사항이 없는 내가 구례에서의 찻자리를 어떻게 펼쳐야 할까. 공간은 또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고민 중 핸드폰 사진을 뒤적이다 얼마 전 다녀온 다산과 아암혜장선사의 공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진 길, 다산과 혜암의 글들, 그중 다산이 아암께 보낸 차를 구걸하는 걸명소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고 여기에서 행사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걸명소(乞茗疏)
나그네는 요즘 들어 다도(茶饕) 즉 차 욕심쟁이가 된 데다(旅人近作茶饕), 겸하여 약용(藥用)에 충당하고 있다네. 글 가운데 묘한 깨달음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세 편과 온전히 통하니, 병든 숫누에는 마침내 노동(盧仝)의 일곱 사발 차를 다 마셔 버렸다오. 비록 정기를 고갈시킨다는 기모경(棊母㷡)의 말을 잊지는 않았으나, 마침내 막힌 것을 뚫고 고질을 없앤다고 한 이찬황(李贊皇)의 벽(癖)을 얻었다 하겠소. 아침 해가 막 떠오르매 뜬 구름은 맑은 하늘에 환히 빛나고, 낮잠에서 갓 깨어나자 밝은 달빛은 푸른 냇가에 흩어진다. 잔 구슬 같은 찻가루를 날리는 눈발처럼 흩어, 산 등불에 자순(紫筍)의 향을 날리고, 숯불로 새 샘물을 끓여, 야외의 자리에서 백토(白兎)의 맛을 올린다. 꽃무늬 자기와 붉은 옥으로 만든 그릇의 번화함은 비록 노공(潞公)만 못하고, 돌솥 푸른 연기의 담박함은 한자(韓子) 보다 많이 부족하다네. 해안어안(蟹眼魚眼)은 옛사람의 즐김이 한갓 깊은데, 용단봉단(龍團鳳團)은 내부(內府)에서 귀하게 나눠줌을 이미 다했다. 게다가 몸에는 병이 있어 애오라지 차를 청하는 마음을 편다오. 들으니 고해(苦海)를 건너가는 비결은 단나(檀那)의 보시를 가장 무겁게 치고. 명산의 고액(膏液)은 서초(瑞草)의 으뜸인 차만 한 것이 없다고 들었소. 애타게 바람을 마땅히 헤아려,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기 바라오.
구례와 구례의 차를 찾는 이들께 정말 맛있는 차를 내어드리고 싶다. 그것도 구례의 의미 있는 공간에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서 엮어진 찻자리가 바로 ‘차를 탐내는 나그네여!‘의 마더스오븐, 강류재, 예유당, 그리고 운흥정과 노고단이다.
한국 전통 작설차 고차수의 깊은 맛과 향을 경험할 수 있고 구례의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에서 차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고차수
#구례
#찻자리
#차를탐내는나그네여
#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