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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Dec 06. 2022

OMR

그래도 사랑은 한다.

앙리(Henry)는 저능아였다. 지능이 현저히 낮았고 항상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맞았지만, 급우들이 보는 앙리의 사색은 질환에 가까운 그 무엇과 같았다. 그런 앙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글도 겨우 읽었으며 수학은 덧셈과 뺄셈이 전부였고 때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껌을 떼는 칼로 급우들을 위협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렇게 앙리의 저항이 있을 때마다 앙리는 곱절의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

 

건달이 되기를 꿈꾸며 약한 자를 괴롭히기 좋아하던 학생들에게 앙리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앙리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눈의 초점은 항상 흐려져 있었고 다른 물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달을 꿈꾸던 아이들은 앙리에게 포르노에서 보던 주인공들을 흉내내도록 했다. 사색에 갇혀있는 앙리는 사색에 갇힌 채로 그 장면들을 흉내 냈다. 아무런 수치나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고 당당하리만치 과감하던 그 모습은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앙리의 뇌는 앙리에게 삶의 괴로움이 괴로움인지 알지 못하도록 속이고 속였다. 고장이었다.

 

그런 앙리도 고등학교는 가야만 했다. 그 해 우리가 중학생이었으니까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만 했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학구열을 불태우며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고자 학업에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학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앙리의 어머니도 앙리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고자 연구하고 또한 궁리하셨다. 그렇지만 앙리에게는 4칙 연산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정복하기 어려운 세계였고 국어 문제의 지문을 이해하도록 읽는 것도 도스또예프스키의 그것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앙리의 어머니는 한 치의 양보도 없으셨다. 담임 선생님에게 반드시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낼 거라 으름장을 놓았고 선생님은 깊은 수심에 빠졌다.

 

200점 만점의 고입고사에서 80점 이상을 맞아야만 앙리는 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담임 선생님은 앙리를 위해 특별한 훈련에 돌입했다. OMR카드를 100장 이상 준비했고 시험지 없이 컴퓨터용 사인펜을 주며 색칠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 장의 OMR카드가 가득 채워지면 반 아이들 중 제법 똘똘한 아이가 그 종이를 가져가 채점을 했다. 고입고사 3개월 전부터 책상 한 개를 교실 맨 끝에 위치시키고 색칠놀이의 세계로 앙리는 들어갔다. 마음껏 색칠했다. 일렬로도 하고 지그재그로도 했다. 의미 있는 모양의 색칠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앙리는 색칠하고 또 색칠했다.

 

시험 날, 앙리는 여전히 사색에 갇혀 사인펜과 연필 하나만을 들고 조용히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다른 아이들은 문제집을 보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앙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겨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며 또 생각하고 머릿속의 누군가와 계속 대화했다. 종이 울리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감독관이 들어왔고 시험지와 OMR카드가 배부되었다. 그 순간, 앙리는 사색을 멈추었고 눈이 불꽃과 같이 타올랐다. 마치 세르반테스의 ‘동끼호떼’에서 알론조처럼 말이다. 그렇게 앙리는 자신 앞에 주어진 운명을 당당하게 맞이했다.

 

결과는 그의 불타는 노력에 보답하는 듯한 ‘합격’이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도 앙리의 삶은 이렇다 할 반전 같은 것은 없었다. 더 건달 같은 아이들이 더욱 괴롭혔고 운동장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챙겨 온 도시락을 먹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앙리와 나는 성인이 되었고 20대의 중반을 향해가던 어느 날, 마을버스 안에서 우두커니 서서 여전히 사색하고 앙리를 나는 보았고 만났다.

 


 

“앙리! 오랜만이네!”

 

“.....”

 

사색에 골몰하던 앙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창 밖에 무언가를 응시할 뿐이었다.

 

“앙리! 군대 갔다 왔어?”

 

그 말에 앙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앙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을 나는 그날 앙리에게 했고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앙리는 대답했다.

 

“좋아하는 여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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