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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an 17. 2023

깡패가 되고 싶어요!

1992년 그 어느 때, 그 어느 날,

청소년은 깡패가 되는 게 꿈이었다. 깡패가 돼서 사람들을 패주고 싶었고 모두들 자기를 무서워하길 바랐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만족할 성공을 이룰 만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깡패가 제일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야 언제고 선생님과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깡패가 되길 바랐던 소년은 무력으로 얻어낸 아래 아이들로부터의 존중이 전부였다. 청소년은 그 맛이 나쁘지 않고 달콤했다. 읍내를 지나다니며 보이는 나이트클럽을 보며 언젠가 자기도 저곳에서 일하기를 꿈꾸며 열심히 학교에서 깡패의 흉내를 내고 또 냈다. 아이들의 동전을 빼앗았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교칙에 정해진 교복을 준수하여 입지 않았고 진짜 건달들이 입고 다니는 패션을 따라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청소년 인생에 도시락은 별로 없었다. 집이 가난하기도 했고 엄마가 아팠다. 신장과 간이 안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기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엄마는 청소년을 돌 볼 내면의 힘 또한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청소년은 주기적으로 싸움을 했다. 같은 학년에 신경전을 벌이는 다른 아이들과 싸움을 했고 이웃 학교 아이들과 자웅을 겨루기도 했다. 때로는 원하는 수금액이 걷히지 않으면 아래 학년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다른 아이들과의 싸움이 선생님에게 발각이 돼서 체벌을 당할 적에는 훈장을 다는 듯 그런 기분까지 느껴졌기에 삶이 나름대로의 보람으로 가득했다.

 

청소년은 컵라면을 즐겨 먹었다. 도시락을 싸 올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서 갈취한 동전으로 매일 컵라면을 먹었다. 매점에서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의 반찬과 흰쌀밥을 빼앗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은 또래 아이들 보다 머리가 하나 컸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저항을 하지 않았다. 학교라는 사회에서 얻어내는 굴종의 맛은 무엇보다도 청소년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90년대 초반의 그 어느 날, 청소년은 깡패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어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진짜 건달들로부터 가입 제의를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관문이 필요했는데 청소년에게는 아직 발급되지 않은 신분증을 소유한 어른을 때리고 겁주며 나이트클럽에서 빌려준 돈을 담대히 받아오는 임무였다. 청소년은 설렜다. 꿈을 이룰 절호의 기회가 다가왔고 그 사실을 인식한 때부터 자신의 진로가 정해졌다 여기고 따 놓은 당상인 냥 더 이상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도 내면의 아무런 힘이 없는 엄마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마도 근본은 인정의 욕구였을 것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채워 보지 못한 인정의 욕구를 몇 만 배 얻어 낼 수 있는 그 깡패의 소굴로 자신이 이제는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주어진 임무를 몇 번이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시작하는 날 청소년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신분증을 소유하고 있는 자기와는 다른 세계의 어른을 마주 했다. 그 어른은 힘이 없었고 다리를 절룩거렸다. 어른이라기보다 노인에 가까웠고 몸에서는 역한 냄새와 술 냄새가 같이 났다. 그 사람을 때리고 겁주어 돈을 받으려 하니 겁이 났다. 하지만 이내 자신도 수많은 어른들에게 깡다구가 있다며 인정받을 법한 사실을 이내 곧 주어질 것 다는 생각이 들자 비겁한 용기가 마구 솟구쳐 올랐다. 동급생 아이들에게 동전을 빼앗을 때 때리는 것처럼 그 어른을 때렸다. 어른은 말랑한 촉감을 청소년의 손에 안겨줬으며 몇 대 맞지도 못한 그 추한 어른은 길가로 나뒹굴어지며 서럽게 울었다. 청소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겁이 났지만 사력을 다해 그 어른을 때렸다. 그리고는,

 


“빌려간 돈 갚아!”

 

떨리는 호흡으로 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동네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순찰차는 이내 그 동네로 왔다. 청소년은 곧장 체포라고 하기에도 부끄럽게 경찰에게 붙들렸고 파출소로 향했다. 이제 파출소에서의 고초의 시간만 끝나면 자신도 그럴듯한 깡패가 된다는 생각이 파출소 안에 있다는 불안감을 상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나이트클럽의 건달들은 아무도 청소년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 그렇게 유치장에서의 몇 시간이 흐르고 흘러 청소년은 자신이 형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의 이름을 대며 그 형님들이 날 도와줄 거라고 경찰들에게 말했고 경찰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나이트클럽으로 전화를 넣었다.

이내 나이트클럽의 사람들과 반가운 덕담을 몇 마디 주고받은 경찰서 사람은 전화를 끊고 청소년에게 다가왔다.

 

“넌 아직 너무 어리기만 하구나!”

 

경찰이 한 말이었다. 이내 자신이 폭력을 가했던 어른의 가족들이 찾아와 고성을 높여댔고 청소년을 소년원으로 보내라고 악을 쓰며 울었다. 결국 경찰의 연락으로 집에 있는 엄마의 귀까지 이 소식이 들어갔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불안이 청소년에게 엄습했다. 엄마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데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어찌 될 것인지 뒤에 상황이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가 파출소로 오는데 까지는 체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파출소의 문이 끼익 하며 열렸고 온몸에 힘이 받혀있는 엄마를 청소년은 보았다. 간과 신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엄마의 몸에는 긴장과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은 엄마의 발이 맨발인 것을 보았다. 신발도 신지 않고 파출소로 달려온 것이었다. 흙이 잔뜩 묻어 있었고 어떻게 알았는지 피해자 가족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가서 흙 묻은 발을 보이며 손이 발이 되도록 울며 악을 쓰고 살려 달라 빌었다. 용서를 빈 다기보다 협박에 가까운 악이었다. 그렇게 고성이 오가며 시간은 흘렀다. 청소년의 가정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낼 것이 없다고 생각한 피해자 가족은 침을 한 번 청소년의 엄마에게 뱉고는 자리를 떴다. 그렇게 청소년은 파출소에서 나와 엄마와 길을 걸었다.

 

둘은 나란히 신작로를 걸었다. 그제야 엄마는 맥이 풀렸는지 걸음을 절었고 깊은 숨을 걸음마다 내쉬었다. 아들은 자신의 간절한 꿈이 엄마 때문에 무너졌다는 생각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흙이 잔뜩 묻은 엄마의 발을 보며 자신의 신발을 엄마 쪽으로 내던졌다. 두 쪽 전부 다 말이다. 청소년 또한 양말이 없는 맨발이었다.

 

“이거 신어!”

 

퉁명스러운 청소년의 말이었다. 엄마는 한사코 사양을 하다가 흙이 묻은 발을 대충 털어내고는 신발 속으로 자신의 발을 넣었다. 한참이나 큰 신발을 너풀거리며 신으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안심이 되었다. 아들은 경찰의 처벌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없는 형편에 돈이 나갈 일 도 없었다. 너풀거리는 아들의 따뜻한 신발이 불행 중 다행처럼 느껴졌다. 몇 걸음 앞서서 걷는 아들이 맨발로 신작로를 걸었다. 상황대로라면 엄마는 처지를 한탄하며 하염없이 울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들의 신발이 자꾸만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따끔거리는 신작로를 더 이상 밟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 편해짐은 파출소에서 여한 없이 악을 지르며 울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1992년의 어느 때, 어느 날, 청소년은 깡패가 되길 바랐고 엄마는 아들의 신발이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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