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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y 01. 2023

불행의 축복

슬픔의 기쁨

세르게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불길이 치솟는 곳은 세르게이의 초라한 집이었고 자비가 없는 불길은 세르게이의 집을 사르고 살랐다. 세르게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보기 싫고 흉했던 집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아이는 미소를 마음껏 지었다. 술에 잔뜩 취해 잠이 든 아버지는 이미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고 어린 여동생은 세르게이의 손을 잡고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타들어 가는 집을 보며 불길을 진압했지만 집의 모양이라고 할 수 없었던 세르게이의 집은 그렇게 모습을 다하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환영했다. 매일 술에 찌들어 자신과 여동생을 돌보지 않던 세르게이의 아버지는 마음의 커다란 짐과도 같았다. 그런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은 세르게이에게는 고통이었고 환멸이었다. 그리고 세르게이의 집도 세르게이에게는 언젠가 없어졌으면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세르게이의 소원대로 집은 사라져 갔다.

 

중학교 1학년이던 우리들 사이에서는 세르게이의 집이 다 불타버렸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다. 세르게이는 얻어 입었던 교복마저 타버려서 때에 찌든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학교로 왔다. 그날 세르게이의 몸에서는 탄 냄새가 가득했고 그 아이는 여러 차례 수업을 빠지며 교무실로 교장실로 불려 다녔다. 그런 세르게이의 표정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눈이 마주치지 않는 곳에 세르게이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게 말이다.

 

며칠이 지나고 선생들은 대책을 내어 놓았다. 세르게이의 가정을 재건하기 위해 전교생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었다. 한 사람당 천 원을 내기로 했고 가정 형편에 상관없이 전교생이 참여하기로 했다. 학생주임선생은 그 일을 맡아 진두지휘했으며 세르게이의 형편을 향한 동정의 마음은 전교생을 하나로 뭉치게 했으며 1994년 당시 15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만들었다.

 

세르게이와 그의 여동생의 거처는 그 고장에 있는 보육원으로 바뀌었다. 새로 생긴 돈으로 그 아이는 교복을 새것으로 맞추어 입었고 새 신발도 샀다. 세르게이의 새 교복은 제법이나 근사했다. 세르게이를 괴롭게 했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육원에서의 삶은 불타버린 집에서의 삶보다 다섯 배는 나았다. 물론 또래들 간의 신경전을 감내해야 했지만 하루 세 번의 식사와 따뜻한 개인만의 침대는 퍽이나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자신도 건실한 어딘가의 구성원이라는 자존감 세르게이를 더욱 든든하게 만들었다.

 

학생주임 선생의 실수는 그것이었다. 세르게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150만 원이라는 거액의 통장과 도장을 세르게이의 손에 맡긴 것 말이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불행을 축복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도 사라졌고 끼니 걱정과 돈 걱정도 사라졌으니 말이다. 세르게이는 신이 났고 행복했다. 써 도 써 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150만 원이라는 돈이 자신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는 여동생을 데리고 잠실의 놀이공원을 갔다. 보육원에는 외출을 한다며 말하고 나와서 버스표를 끊어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세르게이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기억은 모호했고 흐릿했으며 TV에서나 보던 단란한 가정의 놀이공원 방문은 14살의 생애에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 원을 풀고자 동생을 데리고 나섰다. 세르게이는 준비한 돈으로 자유이용권 두 장을 샀고 마음껏 놀이기구들을 탔다. 비싼 돈가스와 햄버거도 마음껏 먹었고 간식과 음료도 사 먹었다. 세르게이의 불행이 잊히는 날이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인해 속앓이를 했던 날들도 뚫어져 구멍이 난 헌 교복을 입어 창피했던 날들도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놀이기구의 함성과 함께 모두 사라졌다. 여동생도 세르게이의  근처에서 함께 웃어주었다. 행복했고 행복했다. 그날!

 


 

세르게이의 통장은 화수분과도 같았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도 좀처럼 돈의 양이 줄지 않았다. 그런 세르게이는 더욱더 대담해졌고 날이 갈수록 세르게이는 부잣집 아들의 모양으로 바뀌어 갔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던 학생주임선생과 담임선생은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돈을 절제하지 못하고 쓰고 있는 걸 말이다. 결국 불행의 날이 다가왔다. 담임선생은 세르게이의 옷과 학용품 그리고 소유물들을 검사하며 출처가 어디인지 묻기 시작했고 별로 영악하지 못했던 세르게이는 보육원에서 후원이 들어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담임선생은 곧장 보육원으로 전화를 넣어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보육원 측에서도 세르게이의 거창한 소유물에 대해 의심을 품고 물었지만 학교에서 사고 이후, 후원을 받은 거라 말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담임선생과 학생주임선생은 곧장 세르게이에게 통장을 가져오게 했고 세르게이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세르게이는 주저앉으며 그것만은 검사하지 말아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눈물도 흘렸다. 세르게이는 행복의 근원인 통장이 검사당하면 그것이 자신의 수중에서 사라질 거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울며 빌기 시작했다. 이내 선생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튼실한 몽둥이를 가져와 세르게이를 위협했다. 그렇지만 세르게이는 울며 저항했고 통장 검사를 거절했다. 곧 망설임 없이 선생의 몽둥이찜질은 시작되었고 울며 세르게이는 빌었다. 매에는 장사가 없듯 이내 세르게이는 다리를 절며 새로 산 나이키 가방에서 통장을 꺼냈고 그 통장에는 오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 몇 장이 새어 나와 땅으로 떨어졌고 통장은 선생의 손으로 넘어갔다. 통장을 보며 선생은 인상을 찌푸렸고 계속해서 세르게이를 때리고 또 때렸다. 세르게이는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통장은 학생주임선생의 손으로 들어갔고 선생들의 잠정적 합의는 세르게이가 졸업하는 날 들어갈 고등학교의 담임선생의 손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때까지 세르게이는 다시 곤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기쁨은 날아가는 비둘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반년동안 세르게이가 화수분처럼 쓴 돈은 30만 원 남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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