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조(전세권의 내용) ①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ㆍ수익하며,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②농경지는 전세권의 목적으로 하지 못한다.
오늘부터 드디어 전세권에 대해 공부합니다. 지상권, 지역권의 경우 사실 소유권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물권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부하시면서 지루한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전세권을 보고, "와, 드디어 익숙한 것이 나왔다. 나도 전세 사는데."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전세'가 이 '전세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세'와 여기서 말하는 '전세권'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우선 우리가 공부할 '물권'으로서의 전세권에 대해 먼저 설명을 드릴게요.
제303조제1항에 따르면 전세권이란, 전세금을 지급하고 다른 사람의 부동산을 점유하고, 그 부동산의 용도에 따라서 사용·수익한 후 전세권이 소멸하게 되면 부동산을 (주인에게) 되돌려주면서 전세금을 돌려받는 권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전에 공부하기를, 물건의 사용가치를 지배하는 제한물권을 용익물권이라 한다고 했던 적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내 소유가 아닌 남의 부동산을 사용하고 싶을 때, 용익물권을 (계약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취득하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전세권이 바로 이러한 용익물권의 예이며, 우리가 공부한 것 중에는 지상권과 지역권이 바로 용익물권에 해당합니다.
"남의 소유 땅을 사용하고 싶다! 어떤 용익물권이 필요할까?"
①남의 땅에서 건물 기타의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하고 싶다 ⇒ 지상권을 취득
②남의 땅에서 나오는 이익을 이용해서 내 땅을 이롭게 하고 싶다 ⇒ 지역권을 취득
③남의 땅이나 건물을 사용하고 싶다 ⇒ 전세권을 취득
이런 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궁금한 부분이 생깁니다.
"제 친구 철수는 지금 남의 집에서 거주하고 있고요, 집주인한테 전세금도 줬습니다. 2년 계약했고요. 계약 끝나면 전세금은 돌려받을 겁니다. 위에서 말하는 전세권의 개념과 같지 않나요?"
이게 헷갈리는 부분인데 같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여기서 철수가 가진 권리는 전세권이 아니라 임차권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부터 공부할 전세권은 채권이 아니라 물권이고, 물권은 민법 제186조에 따라 득실변경의 등기를 해야 효력이 생깁니다.
제186조(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
그런데 소위 '전세 산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중에 그 전세 내용을 부동산 등기까지 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해주는 집주인도 별로 없고요(자기 소유 집에 등기가 추가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철수는 지금 전세권자로서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과의 계약에 따른 임차권자로서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철수가 부동산 중개사 통해서 계약을 했다면, 계약서에는 '주택임대차계약서'라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물권설정계약서'가 아니라요.
*임차권 등기라고 해서 임차권도 등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설령 이런 경우라고 해도 어차피 물권으로서의 전세권 등기가 아니기 때문에 전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는 소위 '전세'라고 불리지만, 그 실상은 물권으로서의 전세권이 아닌 이러한 형태를 채권적 전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채권적 전세의 경우 오늘부터 공부할 물권편의 전세권 관련 규정이 아니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민법상의 임대차 관련 규정 등이 적용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지금 말하는 전세권과 채권적 전세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요?"
사실 대충 보기에는 물권이냐 채권이냐 차이 정도 말고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추 비슷하긴 합니다. 목돈(흔히 전세금이라 불리는 돈)을 땅 또는 건물 소유자에게 주는 것, 전세권이 소멸하거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부동산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 등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아무래도 물권과 채권이라는 큼지막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부분은 차차 전세권을 공부하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건 지금은 두 가지 제도가 서로 아예 다른 제도라는 것만 이해하고 넘어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대략적인 (물권으로서) 전세권의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용익물권의 특성을 가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담보물권으로서의 특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세금의 지급은 전세권의 성립요소입니다. 따라서 무상으로 전세권을 설정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전세권은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수익하는 권리로서 전세금의 지급이 없으면 전세권은 성립하지 아니하는 등으로 전세금은 전세권과 분리될 수 없는 요소일 뿐 아니라, 전세권에 있어서는 그 설정행위에서 금지하지 아니하는 한 전세권자는 전세권 자체를 처분하여 전세금으로 지출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전세권이 존속하는 동안은 전세권을 존속시키기로 하면서 전세금반환채권만을 전세권과 분리하여 확정적으로 양도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며, 다만 전세권 존속 중에는 장래에 그 전세권이 소멸하는 경우에 전세금 반환채권이 발생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 장래의 조건부 채권을 양도할 수 있을 뿐이라 할 것이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02. 8. 23., 선고, 2001다69122, 판결).
*다만, ‘전세금은 전세권의 요소’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는 전세금이 지급되어야 전세권이 유효하게 성립한다는 의미인데, 전세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과 전세권등기만으로도 전세권은 유효하게 성립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표현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세금이 현실적으로 지급되어야 전세권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양창수·김형석, 2023).
한편, 이러한 전세금은 등기하여야 합니다('부동산등기법' 제72조).
부동산등기법
제72조(전세권 등의 등기사항) ① 등기관이 전세권설정이나 전전세(轉傳貰)의 등기를 할 때에는 제48조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록하여야 한다. 다만, 제3호부터 제5호까지는 등기원인에 그 약정이 있는 경우에만 기록한다.
1. 전세금 또는 전전세금
2. 범위
3. 존속기간
4. 위약금 또는 배상금
5. 「민법」 제306조 단서의 약정
6. 전세권설정이나 전전세의 범위가 부동산의 일부인 경우에는 그 부분을 표시한 도면의 번호
② 여러 개의 부동산에 관한 권리를 목적으로 하는 전세권설정의 등기를 하는 경우에는 제78조를 준용한다.
제303조제1항에 명확히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이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전세권에는 점유가 수반되기 때문에 전세권자는 혹시 점유가 침탈되거나 방해를 받는 경우 점유물반환청구권이나 방해제거청구권 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제204조부터 제206조까지 부분을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만약 등기를 하지 않는다면 제3자에게 전세권을 주장하면서 대항할 수 없게 됩니다. 물권으로서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전세권설정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채권의 효력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제303조제1항 뒷부분인데요, 바로 아래에서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303조제1항 뒷부분을 보면 좀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부분인데요, 이건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작업장으로 쓸 만한 공간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영희의 건물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영희와 전세권설정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보통 현실에서는 임대차계약을 할 건데, 드물게 영희가 전세권설정하는 것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가정합시다). 전세권의 기간은 3년으로 하기로 했고, 그 대신 철수는 영희에게 3억원의 전세금을 지급하였습니다. 이제 영희는 철수에게 받은 3억원으로 돈놀이를 하든, 은행에 넣어서 이자를 받든 수익을 내면 됩니다.
그런데, 영희는 철수가 주는 전세금도 받았겠다, 사업을 한번 크게 해 보고 싶어서 은행에서 자신의 건물을 담보로 2억원의 대출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근저당을 설정한 것인데, 근저당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기서 크게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영희가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정도로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영희가 사업을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그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망했으니까 은행에 약속한 날짜까지 돈을 못 갚았지요. 그리고 은행에서는 영희가 돈을 갚지 않자, 영희 소유의 건물을 경매에 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임의경매).
예전에 '경매'의 개념에 대해서 간단하게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민법 제187조 파트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은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서 은행은 영희에게 빌려준 2억원을 기한이 되었는데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희의 건물을 처분해서라도 자신의 돈을 보전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철수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합니다. 사실 임대차도 그렇고 남의 부동산 쓰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이보다 더 긴장되는 소식은 드물 것입니다. 철수는 당장 자신의 전세금은 어떻게 되나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뭐가 잘못되고 해서 전세금을 못 받고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 철수는 민법 제303조제1항을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철수의 경우 은행보다 먼저 전세권을 등기하였고, 따라서 시간상 나중에 근저당권을 등기한 은행의 경우 철수보다 순위가 밀립니다. 즉, 은행은 제303조제1항에서 말하는 '후순위권리자'인 것입니다. 제1항에서는 후순위권리자나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변제'(辨濟)란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돈을 갚는다는 겁니다. 우선변제란,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먼저 돈을 갚는다'라는 것으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돈을 먼저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대략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권리를 우선변제권이라고 합니다.
즉, 철수는 후순위 권리자인 은행(2억원)보다 먼저 자신의 돈(3억원)을 건물의 매각대금에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건물이 4억원에 팔렸다고 하면(집행비용 등 기타 비용은 없는 것으로 전제하겠습니다), 철수는 그 중 3억원을 먼저 받아갈 수 있는 겁니다. 은행은 아쉽지만 남는 1억원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은행의 입장에서 너무 아쉽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영희의 건물이 충분히 시장가치가 있어서 비싸게 팔리고, 그에 따라 철수도 은행도 모두 자신의 돈을 받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동산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따라서 사실 현실에서는 은행 입장에서 영희의 건물처럼 선순위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애초에 대출을 해줄 가능성 자체가 많이 낮기는 합니다. 은행도 바보가 아니니까요.
철수는 어쨌든 다행히 경매의 난장판 속에서 자신의 3억원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큰돈을 맡긴 전세권자 입장에서는 우선변제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 돈 날리지 않게 해주는 보호장치인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제303조제2항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농경지는 전세권의 목적으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즉, 농경지에는 전세권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조항을 두고 있을까요? 그건 우리나라의 법제가 농경지, 즉 농사짓는 땅을 특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즉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류 역사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국가적으로 의미 있게 다루어져 왔다 보니, 세계 각국의 법제에 경자유전의 원칙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처럼 헌법에 명문으로 경자유전을 기재한 사례는 거의 드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헌법을 제정한 취지는, 남북 대치 상황 등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식량자급기반 확보를 위한 안정적 농지 확보, 농업의 보호가 중요한 정책과제로 인식되는 상황 하에서 경자유전 원칙이 중요한 원칙이자 정책수단으로 이해되었던 것에 있다고 합니다(김홍상, 2006). 한편, 헌법 외에도 '농지법'이 따로 있어 농사짓는 땅의 경우에는 특별한 법적 규율을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21조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어찌 되었건 민법 제303조제2항에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농사짓는 땅은 함부로 전세권을 주어 남에게 농사를 짓게 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헌법 제121조는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던 바 있고, 민법 제303조제2항의 경우에도, 농지의 전세를 금지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점, '농지법'상 농지의 임대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세권 역시 어느 정도 범위에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던 바 있습니다(강태성, 2018). 이 부분은 참고로만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전세권을 처음 공부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첫날이다 보니까 기본적인 개념을 언급할 필요가 있어 이야기가 좀 길어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내용이 많으니 꼼꼼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전세권과 지상권, 임차권 등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김홍상, <경자유전 원칙에 관한 소고-헌법과 법률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경제 제29권제2호, 2006.10., 146면.
강태성, <전세권에 관한 민법규정들의 검토 및 개정방향-민법 제303조․제306조․제308조를 중심으로->, 한국재산법학회, 재산법연구 제35권제1호, 2018.5., 110-111면.
양창수·김형석, 「권리의 보전과 담보(제5판)」, 박영사, 2023, 754면.
2024.1.18.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