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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305조, "건물의 전세권과 법정지상권"

by 법과의 만남
제305조(건물의 전세권과 법정지상권) ①대지와 건물이 동일한 소유자에 속한 경우에 건물에 전세권을 설정한 때에는 그 대지소유권의 특별승계인은 전세권설정자에 대하여 지상권을 설정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료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이 이를 정한다.
②전항의 경우에 대지소유자는 타인에게 그 대지를 임대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한 지상권 또는 전세권을 설정하지 못한다.


오늘은 전세권과 법정지상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법정지상권이라는 표현은, 무언가 지상권인 것 같긴 한데 우리가 상세히 공부하였던 적이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민법 교과서에서는 지상권 파트에서 법정지상권을 별도의 목차로 구성하여 공부하고 넘어갑니다만, 저희는 민법의 조문 구성을 따라 하나씩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법정지상권이라는 것에 대해 살펴보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지상권을 공부할 때, 대체로 법률행위(지상권설정계약이나 이미 설정된 지상권의 양도, 유언 등)에 의해 취득된 지상권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지상권 역시 일종의 물권이기 때문에, 상속, 공용징수, 판결, 경매, 그 밖에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취득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187조 참조). 이러한 지상권 취득은 법률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률의 규정에 의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물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187조(등기를 요하지 아니하는 부동산물권취득) 상속, 공용징수, 판결, 경매 기타 법률의 규정에 의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취득은 등기를 요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이를 처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상권의 경우 상속이나 공용징수 등 방금 말씀드린 법률의 규정에 의한 취득 위에도 조금 독특한 취득방법이 있는데, 법률행위를 통해서 얻지 않는 독특한 지상권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법정지상권(법률이 정하는 지상권)이라고 부릅니다. 대략 정리하자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픽토그램.jpg 지상권의 분류

이 중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법정지상권으로, 관습상 법정지상권은 별도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건 법정지상권은 그 취득에 관하여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법제에 도입된 법정지상권은 총 4가지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공부할 민법 제305조입니다. 특히 이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1. 민법 제305조제1항에 따른 법정지상권: 건물 전세권자의 보호

오늘 공부할 제305조제1항을 읽어봅시다. 이에 따르면,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동일하였던 경우, 건물에 전세권을 설정한 때에는 그 대지소유권의 특별승계인은 전세권설정자에 대하여 지상권을 설정한 것으로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땅의 소유자이고, 자신의 땅 위에 건물을 하나 지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땅과 (그 땅 위에 있는) 건물 둘 다 소유한 것이죠. 부럽습니다. 그런데 철수는 나이도 먹고 건물 관리하기도 힘들고 해서, 마침 사업을 좀 해보려고 하던 이웃집 영희와 전세권 설정계약을 맺고, 건물을 사용하도록 해주었습니다(전세권 등기도 했습니다). 대신 전세금을 받아 주식 투자를 좀 했습니다.


그런데 철수가 주식 투자한 것이 매우 망하여, 철수는 빚을 잔뜩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철수는 돈이 없어 자신이 소유한 '땅'을 나부자에게 팔기로 합니다. 이렇게 땅 주인이 철수에게서 나부자로 바뀌어 버리면, 이제는 땅 주인은 나부자인데 건물 주인은 철수인 상황이 됩니다(영희는 건물을 사용만 하는 전세권자). 바로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되는 것이지요.


픽토그램2.jpg Designed by Freepik from www.flaticon.com


만약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면, 지금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게 됩니다. 편의상 대화체를 만들어서 생각해 볼게요.

나부자: 안녕하세요, 영희 씨. 오늘부로 제가 땅 주인입니다. 이제 건물을 비워주시지요.

영희: 무슨 소리인가요? 저는 이 건물의 적법한 전세권자입니다. 등기도 되어 있습니다. 민법 제304조를 보세요. 남의 땅에 있는 건물에 전세권을 가진 경우에는 지상권 또는 임차권에 효력이 미친다고 되어 있잖아요.

나부자: 하하, 그건 법률 해석을 잘못한 겁니다. 제304조제1항을 보면, '지상권 또는 임차권'에 효력이 미친다고 되어 있지요. 그런데, 철수가 적법한 지상권이 있습니까? 임차권은요?

영희: 네?

나부자: 저는 철수에게 지상권이나 임차권을 줄 생각이 없는데요? 따라서 철수에게 지상권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제304조를 근거로 전세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나가 주시지요.

영희: ....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물권으로서 전세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영희는 굉장히 곤란해집니다. 철수가 나부자에게 지상권을 따내지 못한다면, 영희는 지금 하던 일을 접어야 할 판입니다. 민법 제305조제1항은, 이처럼 대지와 건물이 동일한 소유자(철수)에게 속해 있다가, '건물'에 전세권이 설정되었고(전세권자: 영희), 그러다가 땅이 팔린 경우, 그 특별승계인(나부자)은 전세권이 설정되었던 당시의 전세권 설정자(옛날 땅 주인: 철수)에 대하여 지상권을 설정해준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희는 건물 주인인 철수가 땅 주인(나부자)에 대하여 지상권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민법 제304조) 전세권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민법 제305조제1항에 따른 법정지상권입니다. 결국 이 조문은, 얼핏 봐서는 옛날 땅 주인이었던 철수에게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줌으로써 전세권 설정자가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땅 주인이 이리저리 바뀌는 와중에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건물 전세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 나부자가 억울할 수도 있으므로, 제1항 단서에서는 땅세(지료)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정해 주도록 하여 나부자가 확실히 땅세를 받아낼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있습니다.


제305조제1항에 의해서 법률이 정하는 지상권(법정지상권)이 당연히 건물 소유자(철수)에게 발생하기 때문에, 제2항에서는 땅 소유자(나부자)가 다른 사람에게 땅을 임대하거나 지상권, 전세권을 설정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1항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2. 민법 제366조에 따른 법정지상권: 저당부동산의 경매

이 법정지상권은 마찬가지로 땅과 건물이 동일한 사람에게 소유되고 있다가, 저당권이 설정되고 실행되어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다르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아직 저당권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제366조 파트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3.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따른 법정지상권: 가등기담보권 실행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법정지상권) 토지와 그 위의 건물이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는 경우 그 토지나 건물에 대하여 제4조제2항에 따른 소유권을 취득하거나 담보가등기에 따른 본등기가 행하여진 경우에는 그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그 토지 위에 지상권(地上權)이 설정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그 존속기간과 지료(地料)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이 정한다.

가등기담보권자가 담보부동산에 대해서 가등기담보권 실행을 하여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다르게 된 경우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가등기담보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로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4. 입목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른 법정지상권: 입목저당권의 실행

입목에 관한 법률

제6조(법정지상권) ① 입목의 경매나 그 밖의 사유로 토지와 그 입목이 각각 다른 소유자에게 속하게 되는 경우에는 토지소유자는 입목소유자에 대하여 지상권을 설정한 것으로 본다.
② 제1항의 경우에 지료(地料)에 관하여는 당사자의 약정에 따른다.

입목에 대해서는 민법 총칙 편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법정지상권도 위에서의 논리와 유사하게, 땅과 그 위의 입목이 서로 다른 소유자에게 속하게 되는 경우를 규율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5. 관습상 법정지상권: 땅과 건물이 같은 소유자에게 속해 있다가, 토지나 건물 둘 중 1개가 매매 등의 이유로 소유가 바뀌어 소유자가 달라지게 되는 경우


이건 저당권의 실행이나, 가등기담보가 실행되었다거나,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었다거나 하는 사정없이, 그냥 건물을 판다든가(매매) 하는 이유로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서로 달라지게 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우리 민법이나 다른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없고, 관습상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아니, 법률에 말이 없는데 법정지상권을 누가 내어 준단 말입니까? 대통령인가요?"

이상한 생각이 드실 수 있겠지만,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대법원입니다. 관습상 법정지상권이라는 개념은, 아주 예전 조선고등법원판결(20세기 초반)부터 ‘한국에 관습이 있어서 특별히 인정해 주는 것’으로 존재해 왔다가, 해방 이후 대법원에서도 계속하여 인정해 왔던 것입니다(김준호, 2017).


따라서 관습상 법정지상권에 대해서 민법 어디에서도 조문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판례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법’정 지상권인데 ‘법’에 말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예전에 민법 제1조에서 공부하였듯 관습법도 법이니까요.


관습상 법정지상권의 성립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박동진, 2022). ①토지와 건물이 같은 사람의 소유였다가, ②매매·증여·대물변제·공유물분할·강제경매·공매 등의 이유로 소유자가 달라지게 되어야 합니다. ③또한,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질 때에는 건물을 철거하겠다는 등의 특약을 미리 정해두지 않아야 합니다.

*다만, 저당권 실행에 따른 경매의 경우에는 제366조가 따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굳이 적용될 필요가 없습니다.


위의 3가지 요건을 충족하게 되면, 건물소유자는 땅에 걸린 법정지상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것은 법률(관습법)에 의한 물권변동에 해당되어, 민법 제187조에 따라 등기를 하지 않아도 효력을 발생합니다.

판례도 “관습법에 의하여 취득된 지상권은 법률에 의한 취득으로서 등기를 요하지 않으므로 그 지상권자는 등기 없이 대지매수인에게 지상권을 주장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이고요(대법원 1972.07.25 선고 72다893).


다만, 이러한 관습상 법정지상권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되는 ‘관습’ 자체가 과연 있었는지, 그리고 아직 남아있다고 할 수 있는지 지적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한, 등기 없이 인정되는 지상권의 존재가 거래의 안전을 해칠 수 있으며, 토지소유자에게 불리하고, 국민들의 법감정에도 맞지 않는다는 등 비판도 있지요(金尙泫·李承吉, 2009; 85-88면). 그 외에도 건물의 철거를 방지하기 위하여 굳이 지상권을 이용할 필요가 있느냐, 임차권이라는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권재문, 2008).


참고로, 우리 대법원도 이러한 비판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은 공익상의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2022년에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의 판례를 재확인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7다236749 전원합의체 판결).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서는 김재형 대법관의 반대의견도 있고, 아예 해당 판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석하는 논문도 있으니(윤진수, 2023) 관심 있는 분들은 판결문이나 참고문헌을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늘은 법정지상권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특히 법정지상권의 경우 법률관계가 조금 복잡한 것들이 있으니, 천천히 곱씹어 보면서 복습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지상권’에 대한 내용인데, 전세권 파트에 있는 것이 조금 의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대로 제305조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건물전세권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왜 이 조문이 이 위치에 있는지 조금은 납득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제305조에 대해서는 실무상 거의 적용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왜냐, 현실에서는 일단 대지와 건물을 같은 사람이 갖고 있다가 땅만 처분하는 경우라면 대부분 건물 이용을 위한 지상권이나 임차권계약을 함께 체결할 것입니다. 미래에 건물을 어떤 권리로 사용하건 내 알바 아니고 귀찮게 계약 체결은 해서 뭐하냐고 생각하는 건물주는 거의 없겠지요. 그런 상태에서 건물에 전세권을 설정해준다면, 그 경우에는 제304조제1항에 따라 건물전세권자는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제305조를 굳이 원용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설령 지상권이나 임차권계약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서 말씀드린 관습상의 법정지상권을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매매 등의 사유로 대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게 된 경우, 철거 특약이 없는 한 판례는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건물소유자에게 인정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305조가 적용되는 사례는, 관습상 법정지상권조차 인정되지 않는 보기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철거 특약이 있어 관습상 법정지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경우에는 건물소유자(건물전세권설정자)는 제305조제1항을 들어 법정지상권의 취득을 주장해볼 수 있겠지요(조용현, 2019). 어쨌거나 제305조도 쓰임새가 있기는 있는 만큼 아무 무의미한 조문까지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내일은 전세권의 양도와 임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권재문,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인정근거와 필요성에 관한 비판적 고찰”, 한국법사학회, 법사학연구 제37호, 2008, 99-127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739면.

金尙泫·李承吉, 慣習上 法定地上權에 關한 考察- 民法改正案 第279條의2에 對한 檢討를 中心으로 -, 한국법학회, 법학연구 제36호, 2009.11., 85-88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물권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316-318면(조용현).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2, 324-332면.

윤진수,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을 인정하는 판례에 대한 비판적 고찰 -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7다236749 전원합의체 판결”, 사법발전재단, 사법 통권 제65호, 2023, 261-303면.



2024.1.15.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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