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373조, "채권의 목적"

by 법과의 만남
제373조(채권의 목적) 금전으로 가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것이라도 채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다.


오늘부터 드디어 채권법에 들어갑니다. 본격적으로 제373조를 알아보기 전에, 채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채권법 파트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채권법이란 무엇일까요? 채권법이란 어떤 사람 사이의 채권과 채무 관계에 대해 규정한 법을 의미합니다. "그럼 채권채무법이라고 하지 왜 채권법이라고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전개되는 법률관계 모두를 통틀어서 '채권관계'라고 표현하기 때문에(김준호, 2017) 그냥 '채권법'이라고 하더라도 채권과 채무를 모두 공부하는 파트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채권과 채무란 무엇일까요? 먼저 채권(債權)이란, '빚 채'에 '권리 권'의 한자를 씁니다. 직역하자면 빚에 대한 권리라는 뜻인데, 법학에서는 특정인(채권자)가 다른 특정인(채무자)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송덕수, 2020). 그리고 채무(債務)란, '빚 채'에 '일할 무'의 한자를 씁니다. 직역하자면 빚을 갚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 될 텐데, 채권의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면 특정인(채무자)가 특정인(채권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채권관계(債權關係)란, 앞서 얘기한 채권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는 법률관계를 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의 볼펜이 마음에 들어 5만원을 줄 테니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고 합시다. 영희가 동의하면, 둘 사이에는 계약이 성사된 것입니다. 이른바 볼펜 매매계약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철수는 영희에게 5만원을 지급하여야 할 의무(채무)와 볼펜을 넘겨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채권)를 갖게 되고요, 영희는 반대로 철수에게 볼펜을 넘겨줘야 할 의무(채무)와 볼펜 값으로 5만원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채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서로 하기로 했던 일을 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앞으로 채권법에서 공부하게 되겠지요?


자, 이렇게 우리가 공부할 채권이라는 것은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이므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향후 채권법 공부의 기초가 될 수 있으므로, 꼼꼼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특성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송덕수, 2020; 8-11면 참조)


1. 채권의 내용 : 재산권

채권은 그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재산권입니다. 재산권에 대해서는 우리가 [민법총칙]에서 공부한 바 있으므로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복습을 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재산권이란 경제적 가치에 대한 권리로서, 물권, 채권, 지식재산권 등의 다양한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공부했었지요.


2. 채권의 효력 : 청구권

청구권이란 말 그대로 어떠한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공부하였던 물권은 '물건'을 객체로 해서 성립하는 권리였지만, 채권은 본질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채권이라는 단어가 곧 청구권이냐? 채권=청구권이냐? 이런 질문이 자주 제기됩니다.


송덕수(2020)는 청구권이라는 용어를 채권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예가 많고, 채권과 청구권의 개념 정의도 유사하기는 하지만 두 권리는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일치된 견해라고 지적합니다. 양자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상 차이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인데요, 먼저 채권이라는 개념은 권리를 생활이익을 기준으로 재산권, 인격권, 가족권, 사원권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재산권의 한 유형으로 제시된 것이고, 청구권은 권리의 행사 과정에서 어떤 효력이 발생하는지 살펴보면서 지배권, 청구권, 형성권, 항변권으로 나누어지다가 제시된 것이라는 겁니다. 즉 채권은 권리의 내용상 분류에서 나온 것이고, 청구권은 권리의 효력상 분류에서 나온 것이므로 존재하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지요.


또한 채권=청구권의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청구권이 항상 채권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권으로부터 나오는 물권적 청구권도 있고요, 부양청구권 같은 것도 채권과는 상관없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이행기가 되지 않은 채권은 아직 청구권이 발생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채권=청구권이라고 도식화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송덕수, 2020; 11-13면).


그럼 도대체 결론이 무엇이냐? 정리하자면, "채권이 일반적으로 청구권을 발생시키는 것은 맞다. 채권과 청구권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채권과 청구권을 완전히 동일한 권리로 보기는 어렵다."라는 수준으로 조금 단순하게 이해하시는 것이 편할 것 같습니다.


3. 채권의 의무자 범위 : 상대권

앞서 우리가 물권을 공부하면서 채권과 물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드렸던 바 있습니다. 물권의 특징 중 하나는 '절대권'이라는 건데요,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소유한 자동차가 있다고 했을 때, 철수는 자신의 소유권(물권)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건 누구건 누구에게나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철수가 자동차의 소유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채권은 상대권입니다. 상대권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영희에게서 볼펜을 5만원에 사기로 분명히 계약을 맺었는데, 영희가 철수에게 볼펜을 넘겨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몰래 나부자에게 볼펜을 먼저 팔아 버렸다고 해봅시다. 철수는 인도를 받지 못했으므로 아직 볼펜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고(제188조 참조), 따라서 상대권에 불과한 채권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철수는 제3자인 나부자에게 볼펜을 내놓으라고 할 권리는 없습니다. 철수와 영희 사이의 채권관계는 오직 철수와 영희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는 것이지, 나부자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니까요. 물론 이런 경우 철수는 영희에게 채무불이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188조(동산물권양도의 효력, 간이인도) ① 동산에 관한 물권의 양도는 그 동산을 인도하여야 효력이 생긴다.
② 양수인이 이미 그 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 그 효력이 생긴다.




지금까지 채권이란 무엇인지, 채권의 성질은 어떤지 알아보았으니 채권이란 어떻게 발생되는 것인지, 그 탄생과정에 대해서도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혀가 길어져서 마음이 불편합니다만 채권법을 보다 즐겁게 공부하기 위한 초석이니 참고 한 번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권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지원림, 2013 참조).


1. 법률행위에 의한 발생

법률행위가 무엇인지는 총칙에서 이미 공부했었습니다. 법률행위에 의해서 채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계약인데요, 앞에서 예시로 든 철수와 영희 사이의 '볼펜 매매계약'이 바로 그것입니다. 매매계약의 성립에 따라 철수와 영희에게는 채권과 채무가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법률행위를 공부할 때 계약뿐만 아니라 단독행위도 있다고 하였으므로, 단독행위에 의하여 채권이 발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표적인 단독행위인 유증(遺贈)은 어떤 사람이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고, 그 유언에 따라서 재산을 넘겨주는 행위인데요, 당사자 혼자서 의사표시만 해도 성립한다는 점에서 단독행위에 해당하고, (유산을 받을) 상대방에게 그 의사표시가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에 해당합니다. 어쨌거나 유증이 있게 되면 유산을 받을 사람(수유자)는 재산적 이익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므로 채권이 발생하게 된다 볼 수 있습니다.

*유산을 받을 상대방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있다, 없다 따지는 기준은 이익을 받는 사람이 실제로 있느냐가 아니라,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해야 효력이 발생하느냐 그러지 않아도 되느냐를 기준으로 따집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유증으로 아들에게 재산을 남긴다면, 아들이 미국에 있어서 철수의 유언을 못 듣고 철수의 의사표시가 도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증의 효력은 발생합니다. 이와 같은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의 예로 유증, 유언, 재단법인의 설립행위, 권리의 포기나 상속 승인과 포기 등이 있습니다.


2. 법률의 규정에 의한 발생

법률행위 때문이 아니라, 법률에 이러저러한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즉 법률 때문에 채권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이러한 경우로 사무관리(제3편 제3장), 부당이득(제3편 제4장), 불법행위(제3편 제5장)을 각각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우리가 채권법(제3편)을 공부하면서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사무관리, 부당이득, 불법행위 같은 원인들은 법률행위에 해당되지는 않기 때문에, 법률의 규정에 따라 채권을 발생시킨다는 정도만 알고 지나가시면 충분합니다.




자, 그럼 이제 채권이 대략 무엇인지 맛을 보았으니 제373조를 보겠습니다. 제373조에서는 '채권의 목적'이라는 제목 하에 금전으로 가액을 산정할 수 없는 것이라도 채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채권의 목적'이라는 개념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앞에서 공부한 채권의 정의를 잘 읽어보면, 채권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물건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채권의 목적'과 '채권의 목적물'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권의 목적은 "채무자의 행위"이고, 채권의 목적물은 "채무자의 행위의 대상이 되는 객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김준호, 2017; 957면). 즉,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가진 채권의 목적은 "영희가 철수에게 볼펜을 넘겨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채권의 목적물은 "볼펜"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와 같이 채권의 목적이 되는 채무자의 행위를 가리켜 여러 교과서는 '급부'(給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공급할 급'에 '줄 부'의 한자를 쓰는데, 채권의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급부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런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제373조는 금전으로 가액 산정이 안된다고 하여도 채권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이건 무슨 뜻이냐, 즉 경제적인 가치가 꼭 있어야만 채권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전으로의 가액을 뽑을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먼저 '경제적인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제3자 입장에서는 쓰레기나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들이 서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사고 팔기로 계약을 했다면, 서로 좋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없겠지요? 또한, '경제적인 가치는 있어 보이긴 하는데 현실적으로 금액으로 가치를 산정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 간에 알아서 가격을 흥정해서 계약을 했다면, 이 역시 그 게약을 무효로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채권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모든 행위가 다 채권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채권의 목적이 갖추어야 할, 다음의 5가지 요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확정성

우리가 공부했던 물권의 경우에는 '물건'이 그 목적이 되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볼펜을 소유하고 있다면, 철수의 소유권의 목적이 되는 것은 볼펜이라는 동산인 것이지요. 하지만 채권의 목적은 급부(채무자의 행위)이기 때문에, 확정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계약서에 "철수는 영희에게 500만원을 지급한다. 대신 영희는 철수에게 뭔가를 해준다."라고 되어 있고, 그 뭔가가 뭔지 안 적혀 있다면, 급부가 확정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급부는 채권 성립 당시에 반드시 확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행기까지는 확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계약서 쓴 날에는 빈칸으로 되어 있어도, 이행일이 될 때에는 어떤 급부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면, 민법 제105조와 제106조에 비추어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과 임의규정, 관습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김준호, 2017; 958면).

제105조(임의규정)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제106조(사실인 관습)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


2. 실현가능성

급부는 실현 가능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영희에게 500만원을 지급한다. 대신 영희는 철수를 위해 태양계를 폭발시킨다." 이런 계약은 영희가 애초에 태양계를 폭발시킬 능력이 없으므로 안됩니다. 이와 같이 채권이 성립하기도 전에 이미 채무의 이행이 불가능한 것을 원시적 불능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어렵다는 뜻이지요. 태양계를 폭발시키고 하는 거는 너무 극단적인 예시인데, 예를 들어 이미 철거되어 없어진 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매매계약은 성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위의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사례는 현실에 없겠지만, 실제로 처음부터 실현 가능하지 않은 급부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당연히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나중에 공부할 민법 제535조에 따라서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거죠.

제535조(계약체결상의 과실) ①목적이 불능한 계약을 체결할 때에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자는 상대방이 그 계약의 유효를 믿었음으로 인하여 받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배상액은 계약이 유효함으로 인하여 생길 이익액을 넘지 못한다.
②전항의 규정은 상대방이 그 불능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다만, 원시적 불능이라고 해서 모두 그 계약은 성립하지 않은 것이 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불능'을 나누는 또 다른 기준으로 주관적/객관적 불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객관적 불능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불능입니다. 객관적 불능이란, 당사자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와도 그 법률행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위에서 예를 든 태양계의 폭발 같은 것이 바로 객관적 불능에 속하겠지요. 반면, 주관적 불능이란 당사자(채권관계에서의 채무자)만이 법률행위의 목적을 실현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볼펜을 넘겨주어야 할 채무를 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계약을 한 철수가 집에 와서 보니 볼펜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잃어버린 거죠. 그러면 철수는, "음, 계약 체결 시에 이미 볼펜을 내가 잃어버리고 말았었군. 미안하지만 원시적 불능이니, 영희와의 계약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은 것으로 해야겠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안됩니다. 왜냐하면 철수가 문구점에 가서 볼펜을 새로 사서 영희에게 주면 되는 문제니까,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채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관적 불능의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이나 (나중에 공부할) 담보책임 등이 문제가 되는 거고, 채권의 불성립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원시적+주관적 불능의 경우를 계약 불성립으로 다루는 학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제철웅, 2020).


3. 적법성

급부는 우리나라의 강행법규에 위반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500만원을 지급한다. 대신 영희는 철수의 원수를 살해한다." 이런 계약에서의 채권은 발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4. 사회적 타당성

급부는 사회질서에 지나치게 위반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앞서 총칙에서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것을 공부했었지요(제103조).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오늘은 채권법의 첫 시작을 알리는 조문이다 보니 아무래도 좀 길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채권법의 기초가 되는 내용이니 그래도 한 번쯤은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내일은 제374조, 특정물인도채무자의 선관의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950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16면(제철웅).

송덕수, 「채권법총론(제5판)」, 박영사, 2020, 8면.

지원림, 「민법강의(제11판)」, 홍문사, 2013, 888-890면.


[심화학습]


*채무불이행, 채권자취소권, 대상청구권, 채권자대위권, 다수당사자의 채권관계 등 아직 공부하지 않은 내용이 대거 등장하므로, 해당 내용을 숙지하신 후 살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채권관계는 상대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해서만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청구할 수 없으며, 당사자 아닌 제3자의 항변권을 원용하거나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채권관계의 상대성이 항상,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채권관계의 상대성에도 예외가 인정되는 사례가 있습니다(이하의 사례는 제철웅, 2020 참조).


대표적인 예로 2중매매의 사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나부자(제1매수인)에게 팔기로 계약을 해놓고, 몰래 최부자(제2매수인)에게도 팔기로 계약을 했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일단 철수의 부동산은 세상에 1개밖에 없기 때문에, 나부자와 최부자 둘 중 1명은 부동산을 취득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계약은 둘 다 체결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각각 철수에 대해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철수가 꽤 나쁜 놈인데요, 우리 대법원은 이중매매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처리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중매매라고 해도 원칙적으로는 각 계약의 효력은 유효합니다. 따라서 먼저 철수가 최부자(제2매수인)에게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줘 버리면, 나부자가 제아무리 최부자보다 먼저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부동산을 취득할 수는 없게 됩니다. 민법 제186조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최부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어 버린 경우, 그럼 나부자는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요? 방법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나부자는 ①철수의 채무불이행[이행불능]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②계약을 해제하고 이미 지급한 매매대금 및 이자의 반환을 청구하면서 동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③판례에 의하여 정립된 대상청구권을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중매매의 사례 풀이와 구제수단에 대해서는 고시계(2019)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나부자가 부동산을 찾아올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부자(제2매수인)이 철수와 나부자 사이에 이미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철수의 행위(배임행위)에 가담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철수와 최부자 사이의 매매는 반사회적 법률행위(제103조)로서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아래 판례 참조).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따라서 나부자는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여 최부자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고, 철수에게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즉, 최부자에게서 부동산을 찾아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마치 나부자의 (철수에 대한) 채권에 대세효를 인정하는 것과 실질이 같으므로, 상대성 원칙의 예외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판례는 "이미 매도된 부동산에 관하여 체결한 저당권설정계약이 반사회적 법률행위로 무효가 되기 위하여는 매도인의 배임행위와 저당권자가 매도인의 배임행위에 적극 가담한 행위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적극 가담하는 행위는 저당권자가 다른 사람에게 목적물이 매도된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매도사실을 알고도 저당권설정을 요청하거나 유도하여 계약에 이르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362 판결)라고 합니다.


또한, 채권자취소권도 채권의 상대효에 대한 중요한 예외입니다. 채무자가 자신의 책임재산을 감소시키는 법률행위를 하여 총채권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채권자는 채무자의 사해행위를 취소할 수 있게 되는데요, 이렇게 되면 법률행위가 취소되어 책임재산을 사들인 사람(채권자도 채무자도 아닌 제3자)은 자신이 획득한 재산을 다시 잃어버리게 됩니다. 즉, 채권자도 채무자도 아닌 사람에게 채권이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서, 이는 채권의 상대성 원칙에서는 다소 벗어나는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다른 예도 있습니다. 여러 연대채무자 중 1명이 상계할 수 있는 채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계를 안 하고 있으면, 그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가 상계를 해버릴 수 있습니다(제418조제2항). 유사하게 보증인도 주채무자의 채권으로 상계할 수 있습니다(제434조). 이 역시 채권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다른 제3자가 상계를 해버리는 것이므로, 채권의 상대성에 대한 예외라고 하겠습니다. 그 외에 상세한 예외 사유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418조(상계의 절대적 효력)
②상계할 채권이 있는 연대채무자가 상계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다른 연대채무자가 상계할 수 있다.

제434조(보증인과 주채무자상계권) 보증인은 주채무자의 채권에 의한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10-13면(제철웅).

고시계, “일상가사대리와 이중매매”, 고시계사, 고시계 제64권제12호, 2019.11, 119-125면.




2024.2.27.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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