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374조, "특정물인도채무자의 선관의무"

by 법과의 만남
제374조(특정물인도채무자의 선관의무) 특정물의 인도가 채권의 목적인 때에는 채무자는 그 물건을 인도하기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하여야 한다.


제374조를 보면, '특정물인도채무자의 선관의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물건을 '인도'하는 것이 채권의 목적인 경우에는 채무자가 그 물건을 인도하기 전까지 잘 보존을 해야 한다, 그런 뜻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특정물'이란 무엇일까요? 특정물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급부의 분류(유형)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작위급부와 부작위급부


우리가 앞서 공부한 '급부'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작위(作爲)' 급부와 '부작위(不作爲)' 급부입니다. '작위'는 한자를 대충 직역하면 "어떤 행위를 한다"라는 것이고, '부작위'는 대충 직역하면 "어떤 행위를 안 한다"가 되는데요, 작위급부란 적극적 행위인 급부를 의미하고 부작위급부는 소극적 행위인 급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돈을 빌렸다고 하면 철수는 영희에게 돈을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 것이지요. 이 때 철수의 채무는 적극적인 행위로서 돈을 영희에게 이체하여 주어야 하는 것(사실 이체하건 현금으로 주건 작위급부인 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이므로 작위급부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철수의 아들이 고3이어서, 아들이 공부에 집중하게 하려고 철수가 옆집의 영희에게 돈을 주면서 수능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을 내지 말아 달라는 계약을 체결했다면, 영희는 큰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할 채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영희의 채무는 영희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달성되는 것이고 소극적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작위급부: 주는 급부와 하는 급부


그런데 '작위' 급부는 또다시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위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인데요, 작위급부는 '주는 급부'와 '하는 급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한자가 아니라서 조금 더 의미가 쉽기는 합니다. '주는 급부'는 물건이나 그 밖의 객체의 인도를 내용으로 하는 급부이고, '하는 급부'는 그 외의 작위에 해당하는 급부를 말한다고 합니다(배용준, 2020).


예를 들어 위 사례에서 철수가 영희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할 채무는 '돈을 주어야 하는' 급부이므로 '주는 급부'입니다. 반면 '하는 급부'의 예시를 들자면 김가난이 나부자의 집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매달 100만원을 받는 고용계약을 맺은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김가난의 채무는 나부자의 '집을 청소하는' 급부이므로 '하는 급부'라고 하겠습니다. 주는 급부에서는 채권의 목적이 실현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하고(급부결과가 중요), 채무자의 인도행위 자체는 수단에 불과한 반면 하는 급부에서는 채무자 '자신'이 그 급부를 직접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하는 급부'가 채무자 자신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지어달라는 도급계약을 했다면, 건물을 짓는 것은 '하는 급부'이지만, 결국 채권자가 원하는 것은 건물의 완성이니까 건물의 완성 자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고용계약을 맺은 경우 해당 업무는 그 사람의 특성(능력)을 보고 일을 주는 것이므로, 일을 해주는 사람(노무자)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자기가 할 일을 맘대로 외주(?)를 줄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민법 제657조제2항). 앞서와 같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있는 '하는 급부'를 '대체적 작위급부'로,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하는 급부'를 '부대체적 작위급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건 아직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이 아니니, 대충 읽고 넘어가셔도 무방합니다.


3. 주는 급부: 특정물급부와 불특정물급부


자, 아직 끝이 아닙니다. '주는 급부'는 또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특정물급부'와 '불특정물급부'입니다. 드디어 '특정물'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특정물이란, 구체적인 거래에서 당사자가 특정 물건을 지정하여 다른 물건으로 바꿀 것을 허용하지 않는 물건을 뜻하고, 불특정물이란 같은 종류, 같은 성질, 같은 양이면 어떤 것이라도 무방한 물건을 뜻한다고 합니다(김준호, 2017; 961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영희가 가진 500년된 고려청자를 탐내다가, 1억원을 주고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영희가 철수에 대하여 지는 채무는 고려청자를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는 급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희가 가진 고려청자를 넘겨줘야지,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다른 도자기를 넘겨주면 안 됩니다. 철수는 '영희가 가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급 고려청자'를 '특정'한 것이므로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특정물입니다. 반면, 철수가 영희에게 사과 10개를 구입하기로 했다면 영희는 어디서 구했건 사과 10개를 철수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영희 냉장고에서 굳이 사과 10개를 꺼내서 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불특정물입니다.


다만, 특정물의 개념은 '당사자의 지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물건의 성질에 따라 바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즉 물건이 갖는 개성, 물건의 자연적 성질, 세상에 1개밖에 없는 것인지 같은 사항은 특정물의 판단에 중요하지 않습니다(윤용석, 2015). 예를 들어 위의 사과 10개 사례에서, 계약의 내용이 "영희가 굳이 자신의 냉장고에 있는 사과 10개를 반드시 꺼내서 줄 것"이었다면, 영희가 다른 곳에서 사과 10개를 공수하는 것은 안 되고, 영희는 자신의 집 냉장고에서 사과 10개를 꺼내서 주어야 하므로 영희의 채무는 특정물채무가 되는 것입니다.

*물건의 객관적 성질에 따라 결정되는 개념으로 대체물/부대체물의 개념이 있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제379조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나중에 해당 부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금전급부라든지 종류물급부라든지 생소한 표현들이 있지만, 해당 내용은 관련 파트에서 공부할 것이니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대략적인 급부의 유형에 대해서 알고만 계시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특정물급부는 특별히 빨갛게 표시해 뒀습니다.

픽토그램.jpg 출처: 송덕수(2020) 참조


자, 그러면 이제 제374조로 드디어 돌아옵시다. 특정물의 인도가 채권의 목적인 경우, 채무자는 그 물건을 인도하기 전까지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물건을 보존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라는 표현을 이번에 처음 본 것은 아닙니다. 민법총칙의 '법인' 파트에서, 그리고 물권법의 '유치권' 파트에서 우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라는 표현을 접했던 바 있습니다. 제324조에서는 '선관의무'라는 표현으로 공부하였었지요. 기억이 잘 안 나시는 경우 해당 파트를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제61조(이사의 주의의무)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그 직무를 행하여야 한다.

제324조(유치권자의 선관의무) ①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한다.
②유치권자는 채무자의 승낙없이 유치물의 사용,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유치물의 보존에 필요한 사용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유치권자가 전2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


어쨌거나 제374조에 따르면, 특정물을 넘겨주기 전까지, 채무자는 “그 사람의 직업,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보통 일반적·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 물건을 보존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보통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에서의 주의를 말합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사람에 따른 개인차를 인정하지 않고, 일반적·객관적 표준에 의한 일반적인 평균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였을 때, 이를 추상적 과실(抽象的 過失)이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민법에서는 선관주의의무를 원칙으로 하고, 과실은 추상적 과실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과는 달리, 이보다 좀 더 완화된 수준의 주의의무도 민법에 있기는 있습니다. 우리 민법에서 ‘자기 재산과 동일한 주의’ 등으로 표현되는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법 제695조는 돈을 안 받고 물건을 임치해 주는 사람(수치인)은 그 물건을 자신의 재산과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 보관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제695조(무상수치인의 주의의무) 보수없이 임치를 받은 자는 임치물을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로 보관하여야 한다.


보통 자기 소유의 물건을 관리할 때에는 “이건 내 것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막 관리(?)할 수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재산과 동일한 주의란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의 주의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위자의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주의능력에 따른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였을 때, 이를 구체적 과실(具體的 過失)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에 제695조를 제374조의 예외라고 보기도 합니다(곽윤직·김재형, 2023).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자신의 집을 팔기로 했습니다. 영희가 철수의 집을 찍어서 사기로 했으므로, 철수의 집이 이번 거래에서의 특정물이 됩니다. 그런데 철수는 선관의무를 게을리하여서, 영희에게 집을 넘겨주기 전에 그만 집에 불이 나서 일부분이 탔습니다. 이런 경우, 철수는 선관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인정될 것이고 추후 공부하게 될 채무불이행책임(제390조)이 성립될 것입니다.


그런데 철수가 집을 늘 철저하게 관리하고, 굉장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재수 없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철수의 집 일부분이 망가졌다고 해봅시다. 이런 경우, 철수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는 다하였기 때문에, 집이 좀 망가졌다고 하더라도 영희에게 그대로 넘겨줄 수밖에 없으며(제462조), 손해배상책임을 지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철수가 스스로 선관의무를 다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여야 할 입증책임을 지게 됩니다(김용덕, 2020;101-102면). 여기서 "영희가 그럼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 문제는 위험부담의 문제로서, 나중에 한번 더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좀 더 구체적으로 영희의 입장을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오늘은 특정물이 무엇인지, 특정물채권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채권의 기초로서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까 말이 좀 길어진 측면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일은 종류채권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곽윤직·김재형, 「채권총론(제7판)」, 박영사, 2023, 29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959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1(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79면(배용준).

윤용석, "특정물채권과 특정물도그마", 「재산법연구」 제31권제4호, 2015, 208-209면.

송덕수, 「채권법총론(제5판)」, 박영사, 2020, 56면.





2024.2.29. 업데이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법 제373조, "채권의 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