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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Apr 29. 2024

민법 제426조, "구상요건으로서의 통지"

제426조(구상요건으로서의 통지) ①어느 연대채무자가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통지하지 아니하고 변제 기타 자기의 출재로 공동면책이 된 경우에 다른 연대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가 있었을 때에는 그 부담부분에 한하여 이 사유로 면책행위를 한 연대채무자에게 대항할 수 있고 그 대항사유가 상계인 때에는 상계로 소멸할 채권은 그 연대채무자에게 이전된다.
②어느 연대채무자가 변제 기타 자기의 출재로 공동면책되었음을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 다른 연대채무자가 선의로 채권자에게 변제 기타 유상의 면책행위를 한 때에는 그 연대채무자는 자기의 면책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다.


오늘은 '구상요건'으로서 통지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구상요건'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렇게 써놓으니까 마치 구상권의 성립요건이라든가, 소멸요건 같은 것처럼 느껴집니다만, 실제로 제426조의 내용을 보면 뭔가 성립이나 소멸의 요건을 직접 규정한다기에는 좀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통지를 안 한다고 해서 구상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거나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서요. 이 때문에 여러 교과서에서는, 어제 공부한 제425조를 "구상권의 범위"로, 제426조를 "구상권의 제한"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도 제426조가 어떻게 구상권을 제한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항을 봅시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 영희, 민수는 나부자에 대해 9억원의 연대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부담부분은 균등합니다(1:1:1). 그런데 철수는 영희나 민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9억원의 채무를 다 갚아 버렸습니다. 나부자에게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나서서 9억원을 갚았으니 다른 녀석들도 기뻐하겠군. 아, 그래도 구상권은 행사해야지. 부담부분대로 영희와 민수에게 3억원씩 나한테 달라고 하면 되겠구먼."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희가 발끈한 겁니다. "3억원을 달라니 무슨 말이냐. 나는 옛날에 나부자에게 빌려준 돈 4억원이 있었다. 이거를 상계할 생각이었는데 네가 말도 없이 변제를 하고서 3억원을 달라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때 영희가 갖고 있는 채권을 '상계적상에 있는 반대채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중에 상계 파트에서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항을 풀어서 다시 쓰면 이렇습니다. "철수가 다른 연대채무자(영희, 민수)에게 통지하지도 않고 변제 등으로 공동면책이 된 경우, 영희(다른 연대채무자)가 나부자(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가 있었을 때에는 영희의 부담부분에 한하여, 그 사유로 철수(면책행위를 한 연대채무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그리고 영희의 사유가 상계인 경우, 상계로 소멸할 영희의 채권은 철수에게 이전된다."


자, 여기서 철수와 영희의 관계에 집중해 봅시다. 먼저 변제로 인해 철수는 영희에게 구상권을 갖게 됩니다. 3억원이죠. 그런데 영희는 원래 나부자에게 상계할 있었던 채권 4억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수의 통지 없는 변제로 인해서 그걸 못하게 됐으니까, 영희는 대신 자기 부담부분(3억원) 한도에서 철수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야, 너 때문에 상계 못했으니까, 내 부담부분 3억원은 너한테 구상 못해준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철수는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일단 철수는 먼저 다른 채무자인 민수에게 3억원 열심히 받아내야 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제426조제1항 후단에 따라, 상계로 소멸할 채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즉, 철수는 영희가 못 준다고 한 3억원의 채권(나부자에 대한 채권)을 받게 됩니다. 결국 철수는 영희가 아니라 나부자에게 3억원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9억원 변제하고 6억원 회수하게 되니까, 최종적으로는 원래의 내부적인 부담부분만큼 내긴 한 거죠. 한편 영희는 어떨까요? 원래 갖고 있던 4억원의 채권(나부자에 대한 채권) 3억원은 철수에게 이전되었으니까, 영희는 1억원의 채권이 남게 됩니다. 따라서 남은 1억원은 나부자에게 받아내면 됩니다. 


그런데 제1항에서 말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는 상계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동시이행의 항변권(나중에 공부할 것), 소멸시효의 완성, 기한 미도래, 조건 불성취, 무효 또는 취소 사유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합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제2항을 보겠습니다. 제1항이 변제 등을 하기 '전에'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였다면, 제2항은 변제 등으로 공동면책이 된 '이후에'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를 다룹니다. 즉, 제1항이 사전적인 의미의 통지였다면 제2항에서는 사후적인 의미의 통지를 규율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나부자에게 9억원을 변제한 후, 다른 채무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시다. 사후 통지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영희는 철수가 빚을 이미 갚은 것을 모른 채(제2항에서는 '선의'를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채무자들에게 사전통지를 하고 9억원을 다시 나부자에게 갚아 버렸습니다. 소위 '이중변제'가 이루어진 겁니다. 나부자는 지금 18억원을 가져간 거죠.


이러한 경우, 제426조제2항은 다음과 같이 처리합니다. 먼저, 영희는 철수가 사후 통지를 게을리 함으로써 나부자에게 괜히 또 변제를 하였으므로, 철수에 대해서 "자기의 면책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면책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상대방에게 구상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영희는 자신이 9억원을 변제했음을 들어 철수에게 3억원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철수는 어떻게 될까요? 철수도 일단 9억원을 썼습니다만, 제426조제2항에 의해 영희에게 구상할 수 없습니다. 되려 3억원을 영희에게 구상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민수에게는 3억원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왜냐, 제426조제2항의 효과는 모든 연대채무자에 대해 미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변제한 사람(철수)과 나중에 변제한 사람(영희) 사이에서만 "상대적으로" 미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결국 민수에게 3억원을 받습니다. 

*제426조제2항의 효과를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효로 파악하는 학계의 소수 견해도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논의가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통설적인 견해에 따라 내용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수는 어떻게 될까요? 일단 민수는 변제를 하거나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처음 변제를 한 철수에게 3억원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럼 영희에게는요? 영희에게는 안 줘도 됩니다. 민수는 딱히 이 사례에서 뭔가 잘못한 것은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원칙대로 그냥 먼저 변제한 철수에게 구상해주면 그만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 돈 문제를 정리해 볼까요? 영희는 자기 부담부분(3억원)보다 6억원 더 썼으니까 6억원 챙겨야 하는데, 아직 철수에게만 3억원 받았고 민수에게는 못 받았습니다. 철수도 자기 부담부분(3억원)보다 6억원 더 썼으니까 6억원 챙겨야 하는데, 아직 민수에게만 3억원 받고 영희에게 오히려 3억원을 다시 지출한 상황입니다. 나부자는 18억원 들고 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학설은 이렇게 분석합니다(이하의 논리 전개는 [김준호, 2017] 및 [박동진, 2020] 참조). 먼저 영희는 남은 3억원을 누구에게 받느냐? 바로 철수입니다. 철수에게, "야, 네가 민수로부터 받은 3억원 다시 나한테 내놔라. 왜냐하면 나의 면책행위는 너에게 유효하니까, 네가 민수로부터 받은 3억원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3억원을 뜯어(?)갑니다. 그러면 이제 영희는 드디어 처음부터 받아야 할 6억원을 모두 챙기게 됩니다.


철수는 그럼 이제 총액 12억원을 쓴 셈이 됩니다. 민수에게 받은 돈 3억원조차 영희에게 돌려줬기 때문이죠. 철수의 원래 부담부분(3억원)을 고려하면, 최소 9억원은 어디서 땡겨 와야 손해가 안 납니다. 누가 있을까요? 한 명 괘씸한 사람이 있죠. 바로 중복해서 돈을 2번이나 꿀꺽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 나부자입니다. 학설은, 이중 변제를 하면서 발생한 (나부자에 대한) 영희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철수에게 이전하고, 철수는 나부자에게 부당이득 9억원을 돌려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 지출액은 철수 3억원, 영희 3억원, 민수 3억원이 되어서 공평하게 됩니다.


"뭘 이렇게 복잡하게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과하게 복잡하긴 합니다. 결국 3억원씩 다 부담할 거면서... 어쨌거나 제426조에 대한 통설의 견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이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철웅(2002), 전경근(2021) 등 여러 교수님들의 논문이 이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요, 연대채무자의 통지와 관련하여서는 아주 의미 있는 논문들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사후통지가 없었던 동안에 두 번째 변제자가 사전통지도 하지 않고 이중변제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학설이 다소 엇갈립니다. 역시 참고문헌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구상요건으로서의 통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용이 꽤 복잡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나중에 보증채무에서 한번 더 비슷해 보이는 조문이 나올 것이므로 꼼꼼히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내일은 상환무자력자의 부담부분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18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285면.

박동진, 「계약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0, 420면.

전경근, "연대채무ㆍ보증채무에서 통지 없이 이루어진 면책행위의 효과에 관한 단상- 이중변제에 관한 송덕수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 -", 「법학논집」 제25권제4호, 2021, 261-277면.

제철웅, "보증채무 및 연대채무에서의 구상권 상실", 「비교사법」 제9권제1호, 2002, 103-1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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