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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Jul 23. 2024

민법 제433조, "보증인과 주채무자항변권"

제433조(보증인과 주채무자항변권) ①보증인은 주채무자의 항변으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②주채무자의 항변포기는 보증인에게 효력이 없다.


보증채무는 주채무와의 관계에서 독립성을 갖지만, 또 한편으로 부종성도 갖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부종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증인에게 인정되는 권리를 하나 알아볼 겁니다. 바로 '주채무자 항변권' 입니다.


'항변권'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변'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제397조제2항에서 본 적이 있을 뿐입니다. '항변권'이라는 단어는 제433조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지요.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항변', 대충 생각하면 "억울하다"라고 주장한 것 같은 의미일 듯한데요.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방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말입니다. 보통은 항변권을 청구권의 행사를 저지할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을 빌렸고, 그 돈을 갚는 채무(주채무)를 영희(보증인)가 보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철수와 나부자 간의 주채무는, 선량한 풍속에 어긋나는 반사회적인 계약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채무 계약(기본계약)은 무효입니다(제103조).


그런데 영희는 어느 날 나부자로부터 문서를 하나 받습니다. 바로 철수가 빌려간 1억원의 돈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희 당신은 보증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보증채무는 주채무와는 독립된 채무지요. 주채무가 무효라고 해도 당신과 제가 맺은 보증계약은 멀쩡히 잘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제게 1억원을 갚아야 합니다." 과연 맞는 말일까요?


여기서 영희가 참고하여야 할 조문이 바로 제433조제1항입니다. 즉, 영희는 주채무자(철수)의 항변("기본계약은 반사회적인 것이므로 무효이다")을 들어 나부자(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부자의 공격을 철수의 방패를 빌려와서 막아내는 거지요. 제1항은 이처럼 보증인인 영희가 채무자의 방패를 렌탈(?)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는 무효인 예를 들었지만 주채무자에게 인정되는 많은 사유들을 보증인이 갖다 쓸 수 있습니다. 주채무의 변제기도 도달하지 않았다거나, 나중에 공부할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있다거나, 주채무자가 이미 빚을 갚았다거나 주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든가 하는 사유들도 보증인이 가져다 쓰면 됩니다. 물론 갖다 쓸 수 있는 사유에는 취소권이나 상계 같은 것도 있겠습니다만, 해당 사유는 뒤에서 공부할 조문들에 이미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은 제외하고 살펴볼 것입니다.


왜 이런 규정을 두고 있는 걸까요? 일단 이 조항이 보증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인 것은 뚜렷해 보입니다. 제433조제1항의 근거는 사실 우리가 앞에서 공부한 제430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430조에 따르면 보증채무는 주채무보다 목적이나 형태가 더 무거워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주채무가 소멸하거나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보증채무를 보증인에게 지운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주채무보다 무거운 부담을 보증인에게 안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취지에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독일이나 일본 민법에서도 제433조제1항과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제430조(목적, 형태상의 부종성) 보증인의 부담이 주채무의 목적이나 형태보다 중한 때에는 주채무의 한도로 감축한다.


다음으로 제2항을 보겠습니다. 주채무자의 항변 포기는 보증인에게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주채무의 변제기는 2024년 12월 6일이었는데, 그 날짜가 되기도 전에 나부자가 영희에게 1억원을 청구했다고 합시다. 영희가 변제기도 안 됐는데 왜 벌써 청구하냐고 따지니까, 나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철수에게 물어봤더니 기한의 이익을 포기한다더라(제153조). 주채무자가 기한의 이익을 포기했으니 보증인인 당신도 할말 없겠지. 돈 갚아라." 맞는 말일까요?


제2항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수(주채무자)의 항변 포기(기한의 이익을 포기)는 영희(보증인)에게는 효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철수가 방패를 버렸다고 해서 영희까지 얻어 맞아야 하는 것은 심하겠지요. 적어도 철수가 버린 방패를 주워서라도 쓸 수 있게는 해줘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희는 여전히 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나부자의 이행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채무자 항변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주채무자 상계권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71-87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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