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476조, "지정변제충당"

by 법과의 만남
제476조(지정변제충당) ①채무자가 동일한 채권자에 대하여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수개의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 변제의 제공이 그 채무전부를 소멸하게 하지 못하는 때에는 변제자는 그 당시 어느 채무를 지정하여 그 변제에 충당할 수 있다.
②변제자가 전항의 지정을 하지 아니할 때에는 변제받는 자는 그 당시 어느 채무를 지정하여 변제에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변제자가 그 충당에 대하여 즉시 이의를 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전2항의 변제충당은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써 한다.


오늘부터는 변제충당의 개념에 대해 알아봅니다. 충당(充當)이란 원래는 어떤 것을 채워서 메꾼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변제충당이라고 하면, 그럼 대충 변제를 통해서 무언가를 메꾼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변제충당이란, 변제를 어떤 채무에 채울(메꿀) 것인지 논의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왜 이런 개념이 필요한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철수가 나부자에게 1억원(A), 2억원(B), 3억원(C)의 채무 3개를 갖고 있다고 해봅시다. 철수가 어느 날 나부자에게 8천만원을 먼저 갚았다면, 과연 A, B, C 중에 어느 채무를 갚은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대충 아무 거나 갚았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나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위 3개의 채무는 모두 금전채무이지만, 각 채무는 변제기나 약정이자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채무는 담보가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A 채무의 약정이율은 10%, B 채무의 약정이율은 5%라면, 나부자 입장에서는 이율이 더 약한 B 채무를 철수가 갚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동일한 채권자에게 여러 채무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특정한 변제가 어떤 채무를 갚은 것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변제충당의 문제입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철수와 나부자가 계약을 할 때 계약서에 명확히 써두면 제일 좋긴 할 겁니다. 가장 먼저 갚는 돈은 A 채무에 충당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식으로요(이와 같은 방법을 합의충당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가 없는 상황이라면 이제 민법의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제476조입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제1항은 "채무자가 동일한 채권자에 대하여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수개의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 변제제공이 채무 전부를 소멸시키지 못하는 경우 변제자가 채무를 지정하여 변제충당을 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철수(채무자)가 동일한 채권자(나부자)에 대하여 같은 종류(모두 금전채무)의 채무 3개를 부담하고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근데 왜 하필 같은 종류인가 하면, 종류가 다른 채무라면 변제충당을 굳이 논의할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억원의 금전채무와 만년필 인도채무의 2종류가 있다고 하면, 철수가 나부자에게 8천만원을 갚는 경우 그것은 당연히 금전채무를 갚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만년필을 인도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변제제공이 채무 전부를 소멸시키지 못하는 경우 변제충당을 논의할 실익이 있습니다. 만약 철수가 6억원을 통째로 나부자에게 갚았다고 해봅시다(이자에 대한 논의는 생략). 변제충당이고 뭐고, 그냥 A, B, C 채무 3개 모두 소멸했다고 보면 됩니다. 변제충당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철수는 제476조제1항에 따라 나부자에게 8천만원을 갚으면서, "이 돈으로 A 채무를 충당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지정하면 됩니다. 변제하는 사람이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 입장에서는 이율이 가장 높은 A 채무를 지정해서 갚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제1항에서는 '그 당시'라고 하고 있으므로, 변제자는 변제제공을 하는 시점에 '지정'을 해야 합니다. 변제제공을 하고 나서 1년쯤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A 채무에 갚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겠죠.


제2항을 봅시다. 변제자가 전항의 지정을 하지 아니할 때에는 변제받는 자는 그 당시 어느 채무를 지정하여 변제에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제2항 본문). 하지만, 변제자가 그 충당에 대하여 즉시 이의를 한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제2항 단서). 철수가 8천만원을 갚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변제를 받는 나부자는 여러 채무 중에 1개를 골라서 그에 충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수가 바로 이의를 제기하면("B 채무에 충당하는 것은 안됩니다!"), 나부자의 (채무)지정은 효력은 잃게 됩니다. 이 단서 규정은 변제하는 사람의 의사를 한번 더 존중하기 위하여 있는 조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제3항에서는 앞의 제1항 및 제2항에서의 변제충당은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한다고 합니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 의사표시입니다.




지금까지 변제충당의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제476조와 같이 당사자의 지정에 의하여 변제충당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정(변제)충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와 같은 지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철수가 8천만원을 별말 없이 주었는데, 나부자도 별생각 없이 받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후 1년이 지났다면, 과연 어떤 채무에 충당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그리고 제476조제2항 단서에서처럼 나부자가 어떤 채무에 충당을 하려고 했는데 변제자가 반대한다면, 그런 다툼이 있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변제충당을 해야 하는 걸까요?


바로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법정충당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내일 제477조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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