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문제아 헤라클레스
신의 기획으로 탄생한 문제아인 헤라크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예외적이었다. 그는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질서를 회복하되 그 안에 들어설 수 없는 존재였다. 이 글은 그 영웅의 탄생이 어떻게 신의 설계와 인간 세계의 혼란 속에서 기획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 신의 기획으로 탄생한 문제아 헤라클레스의 탄생은 단순한 출산이 아니었다. 제우스는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알크메네를 선택해 잉태하게 한다. 제우스는 이 아들이 미케네의 왕이 되도록 운명을 정했지만 이를 눈치챈 헤라는 출산을 방해하고 에우리스테우스를 먼저 태어나게 해 왕위를 빼앗는다.
알크메네의 시녀 갈린테스는 출산을 방해하는 여신들에게 '이미 아이를 낳았다'라고 거짓말하면서 출산이 이루어지고, 분노한 여신들은 갈린테스를 족제비로 만든다. 이 아기는 알케이데스였고 그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 동생은 이피클레스였다. 헤라의 보복이 두려운 알크메네는 그를 들판에 버리고 이런 그를 아테나가 데려가 헤라의 젖을 먹이자 넘친 젖이 하늘로 흘러 은하수가 되었다. 이후 헤라는 아기에게 뱀 두 마리를 보내지만 그는 맨손으로 이를 죽이며 비범함을 증명한다.
그는 교육을 위한 각각의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반항을 일삼으며 음악을 가르치던 리노스를 죽이고 추방된 후 키타이론 산에서 방황한다. 그를 괴롭히기 위하여 헤라가 보낸 키타이론의 사자를 죽이고 테스피오스 왕의 딸들과 동침한다. 무려 49명과. 테바이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신의 조롱에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여 테바이의 모욕을 풀어준다. 메가라와 결혼하지만 헤라가 보낸 리사(발광)와 마니아(광기)로 인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게 된다. 그는 신탁을 통해 12년 종살이의 길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영웅 서사가 시작된다.
헤라클레스의 어린 시절은 신적 존재가 태어날 때 세계가 겪는 불균형과 그 균형 회복을 위한 신의 의지, 그리고 인간 사회의 혼란을 동시에 보여주는 강력한 신화 구조를 지닌다. 이를 모티브로 한 문학 작품으로는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가 있다. 해리 포터도 태어날 때부터 볼드모트의 저주를 받는다. 그를 죽이기 위한 시도는 오히려 볼드모트를 무력화시키고 해리는 살아남은 아이로 전설이 된다. 하지만 이 영광 뒤에는 부모의 죽음, 사회적 소외, 진실에 대한 혼란이 있다. 해리 역시 신비한 능력과 예언 속에 갇힌 존재로, 스스로 운명을 감당해나가며 진짜 영웅으로 성장한다.
헤라클레스는 분명 신들이 의도를 가지고 만든 존재였다. 단순한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 신들이 기획해 태어난 존재. 그런데 그토록 필요했던 아이가 정작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크메네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가로막혔고 헤라는 거듭해서 그를 죽이려 했다. 태어난 후에도 그는 버려지고, 시험당하고, 오해받는다. 필요한 존재가 환영받지 못하는 역설은 단지 이야기 속 장치로 보기에는 너무 반복적이고, 너무 인간적이다.
제우스는 기간토마키아에 대비해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존재를 원했고 헤라클레스는 그 설계 하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 아이는 신의 영광이자 동시에 신계의 균열이었다. 헤라는 이 아이를 단순히 제우스의 외도 결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신계의 권위를 훼손한 존재, 다시 말해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협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분노는 사적인 복수와 동시에 공적인 대응이기도 했던 것. 그렇게 보면 헤라와 제우스는 둘 다 질서를 원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질서의 결은 달랐던 셈이다.
그토록 고귀한 목적 아래 태어난 아이가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을 가졌는가? 그는 리노스를 죽이고, 스승과 대적하며, 분노와 충동으로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 헤라클레스는 미덕으로 존경받기보다는 오히려 괴력과 파괴력으로 무서움을 사고 두려움 끝에 존중을 받는다.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존재였다. 그것은 그의 결함이 아니라 세계의 모순이 전가된 결과였다. 이것은 개인의 결함인가, 아니면 세계의 구조적 모순이 한 아이에게 전가된 결과인가?
신화는 이 불안정한 존재를 단죄하기보다 오히려 그에게 과업을 부여한다. 자신이 죽인 가족을 대신해 그는 열두 가지 불가능한 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은 속죄이자 사명이며 동시에 사회가 그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용서받지 못하지만 필요하다. 그는 다시 질서를 회복시켜야 하지만 그 질서 속에 완전히 들어설 수는 없다. 마치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경계에만 존재하는 자. 헤라클레스는 결국 외부에서 질서를 지키는 자로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영웅이 되는가? 고대의 영웅이란 단지 착하고 용감한 존재가 아니라 질서가 완전히 붕괴된 순간에 그 밖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자였다. 그는 법과 정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그 둘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자였다. 영웅은 미덕보다 감당력, 혈통보다 책임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무게를 견뎠기에 영웅이 된 것이다. 이 역설 속에서 우리는 헤라클레스가 왜 그렇게 불안정해야 했는지를 본다. 너무 무거운 짐은 원래부터 멀쩡한 자에게는 맡겨지지 않는다.
이런 영웅상은 신화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 밖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아무도 진심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진실을 품고 나타나며 구조를 넘어서 움직인다. 그들의 등장은 경고이고 예외이며 따라서 언제나 고립된다. 현대의 반영웅들이 이러한 모티프를 반복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인물은 존재해 왔다. 신화는 신들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그 구조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도 반복된다.
신의 기획으로 탄생한 문제아는 신의 피를 타고났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러나 바로 그 왜곡된 탄생과 시련이 있었기에 그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모범적이기보다는 감당할 수 있었기에 선택된 자였고 세계가 가장 혼란할 때 경계에 선 자였다. 결국 영웅이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세상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방식으로 도착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