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죽음을 앞둔,

by 날마다

이모는 여름이 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나는 당신의 삶의 힘겨운 순간- 유복녀를 낳았다던가 홀로 자매들을 키웠다던가, 병이 몸을 잠식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간절히 당신의 신(神)에게 기도하고 매달렸을까 생각해보면서 죽음을 통해 당신이 원하던 안식의 세계로 돌아갔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언니다, 내가 가보지도 못하고... 정말 미안해" 나의 어린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을때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던 것 같다. 아니면 한다리 걸쳐진 담담한 슬픔이 미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언니. 전화줘서 고마워요. 언니 엄마랑 통화할때 저희도 엄마옆에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언니전화받고 정말 행복해했어요. 언니 고마워요."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젊은 딸들만 서있는 장례식장의 서늘한 공기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다부진 아이구나, 적어도 휘청휘청 방황하는 나의 영혼과는 달리 심지가 느껴지는 아이였다. 내 혼란한 마음은 달리 길이없어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넣는 조의금따위의 것들로 밖에는 달리 행동할 것이 없었다.

신앙없는 이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늘 이렇게만 조바심나는 마음으로 막연한 대상에게 기도를 던진다. 그런 기도는 그래도 나름 간절하지만, 또 한철뿐인 것같기도 해서 서글프다. 어디서도 이미 고갈된 내 생명력이 무얼해도 제역할을 못하는 탓이다. 그러기에 더욱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것 보다, 내죽음이 더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것일테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도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므로, ...그러니 부디 누군가를 위해 올리는 저의 기도를 받아주소서.


그리고도 몇 개월, 여름이 왔다. 나는 몇년만에 스무시간가량을 거쳐 친정을 찾아 왔으면서도 끝내 몇시간 걸려가는 이모의 납골당에도 가보지못했다. 그래서 더욱 사촌 여동생들에게도 연락하지못했고 그저 엄마와 함께 앉아 건강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누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두통을 안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 괜찮아?" 그 별스럽지않은 작은 한마디가 찡하게 마음을 울렸다. 별거아닌 통증으로 나는 설마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인지? 어리광의 핑계인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약한 마음일까. 아직 아이들은 십대의 중반도 닿지않은 한없이 의지할 부모가, 가정이, 사회가 필요한 나이이다. 나는 절대 어리지 않은 사촌 여동생을 떠올리며, 그녀가 더욱 안스러운 것은 지금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어서라기보다 어릴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결핍에 더해 여전히 남들보단 이른 시간에 어머니까지 잃어버리게 된 그 자체가, 평생 보상받을 수 없을 무언가라고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내 작은 두려움의 실체가 드러났다. 내 아이들에게 그러한 결핍을 줄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조그만 이유를 끌어내야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