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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하맘 Oct 11. 2022

[엄마의 기분] 외로움 현명하게 대처하기


외로움이라는 건 뭘까? 왜 오는 걸까? 어떨 때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아들보다 먼저 일어난 아침은 늘 마음이 분주하다. 아침식사를 준비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할까? 오늘은 작은방에 혼자 앉아서 성경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며 보내다가 6시 반에 그새 내 빈자리를 느끼고 깬 아들을 침대에서 데리고 나왔다.


아침에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왠지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아침 준비도 힘겹거나 버겁다기보다는 왠지 나만의 일상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 같아 즐거운 기분마저 든다. 잘 차려진 아침밥을 아들과 신랑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다.


그렇게 즐겁게 아침을 시작했는데... 아침 9시.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고 말았다. 정말 너무너무나 오래간만에 내가 감정 컨트롤을 할 수 없게 흐르는 눈물이었다. 길을 걸으며 통화 중이었는데, 건널목 앞에 서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한동안 멈추지 않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더 서럽기도 했다.


둘째를 임신 중이라 호르몬 때문에 감정이 더 출렁이는 걸까...?


부모님은 우리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는 분이시다. 젊은 시절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보험 등으로 저축한 덕분에 은퇴한 후에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시라 우리가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신다. 하지만 은퇴 후 해외에서 제2의 인생을 꾸리시느라 한국에 거의 없다.


첫째를 임신하고 낳을 때까지 부모님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아마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급히 귀국해서도 바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하신다며 귀국 당일 제주도로 가셨다. 그리고도 만삭 때 우리가 제주도로 가서야 처음 만났다.


첫째를 낳고도 우리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보름 남짓, 그리고는 해외 상황이 조금 안정되자 곧장 다시 해외로 나가셨다. 남들에게는 은퇴 후 멋지게 사는 부모님이지만 가끔 내가 몸과 맘이 힘들 때면 나는 정신적으로 고아가 된 것 같은 심정이 된다. 부모가 있는데도 왠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부모님들은 다 일찍 돌아가셨고, 가까이 왕래하고 지낸 친척도 없어서 친척들 이름도 가물가물할 정도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녀서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낸 동네 친구나 힘들 때 의지할만한 지인도 없다. 물론 20대 때부터는 같은 동네에 계속 거주 중이긴 하지만 가장 오래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 않다. 그나마 가까운 가족인 남동생 내외도 해외에 10년 이상 거주 중이라 2-3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다.


내 인생은 늘 그래서 독립적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또 타인에게  마음을 주고 의지하고 기대는 게 무섭고 버겁다.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힘들 때 연락하지 못하는 나는 나 스스로가 가끔 정말 이 우주에 홀로 남겨진 정신적 고아 같다.


오늘은 둘째 낳기 전에 귀국하시는 부모님이 둘째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다시 나가겠다는 얘기에 이미 그럴 것이라고 여러 번 예상하고 맘을 잘 다독였는데도 그냥 그렇게 서운했다. 지방에 거주하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있어서 급하게 도움을 청하면 그다음 날 비행기라도 타고 와서 도움을 받을 수라도 있을 텐데, 13시간 이상 걸리는 해외에 거주하시는 부모님은 정말 오가는 데 걸리는 피로와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라도 1~2년에 한 번 정도나 들어오신다.   


부모님의 삶이고, 부모님의 인생이고, 부모님의 선택이고, 부모님이 이미 장성하여 원가정을 꾸린 나에 대한 더 이상의 양육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오늘은 갑자기 그게 그렇게 서운하고 서러웠다. 몸이 아프니까 맘도 약해지나 보다.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감정이 출렁여서 예전에 함께 영적 독서모임을 했던 그룹 단톡방에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 글을 올려봤다. 그랬더니 언니가 책 여섯 권 사진을 보내며 원하는 책을 보내주겠다고 고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책이 바로 아래의 <위로의 약국>


그렇게 책 세 권이 하루 만에 도착했다.   


위로를 뜻하는 라틴어는 '콘솔라티오 consolatio'라고 한다. 우리가 함께 con, 외로운 사람 solus과 있다는 의미라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령을 위로자라고 표현하며, 12세기 스티븐 랭턴의 <성령 송가>에는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 주소서"라는 글귀가 있다고 한다.


책 첫 장을 읽으면서 벌써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 내가 최근 느낀 감정이 '외로움'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첫 장의 '외로울 때'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부모님의 '인생 즐기기' 모습이 내게 늘 상처가 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부모님은 내게 '자랑스러움'이고 '멋진 노년을 즐기는 부모'로서 존재했었다. 나 역시 그런 노년을 꿈꾸게 해 주는 멋진 모델이시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몸이 피로하고, 의지하고 싶은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순간, 다른 이들의 '부모 찬스' 이야기를 들으며, 내 곁에 없는 부모님을 쉽게 원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나는 늘 아이를 갖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도 물론 좋아했지만, 이를 갖게 되고 처음 휴직을 했을 때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임신기간이 고되었지만 임신 중에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엄마가 된 것이 행복했다. (물론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것이 '늘' 행복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휴직 기간이 2년이 넘어가자 문득 문득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과 달리, 집과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외출이 전부인 삶이 되면서 언젠가부터 집 밖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참 어려워졌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고립감이다. 육아는 늘 바쁘고 쉴 틈 없는데도 왠지 무료하고 공허함을 느끼던 찰나였던 건지도 모른다.

 

p17.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건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위로의 약국> 첫 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내가 가장 '살아있다'라고 느꼈던 순간 나는 왜 외롭지 않았는지 생각해봤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충분히 외로울 수 있을법한 상황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즈음 나는 영적 충만함에 심취해 있었다. 미사를 빠지지 않았고 늘 기도하며 지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도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외로움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에서 작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신감을 부여하실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한다. 즉 우리의 내면을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호흡의 들숨 날숨을 통한 명상, 용서와 사랑, 활발한 여가활동, 경청 등을 제시한다.


아마 습관처럼, 본능처럼 내 감정을 느낀 내 무의식이 나를 이끌고 행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눈물을 쏟아내기 전 주에 이미 나는 이런저런 활동에 가입해서 정말 오래간만에 성경을 다시 읽고, 아침 명상을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더 빨리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더 안정적으로 감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부모님께 "나는 가끔 내가 정신적으로 고아가 된 것 같아!"라고 쏘아붙인 그날, 전화를 끊고 운동을 다녀왔다. 다행히 요가 수업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눈물은 요가 한 시간을 하고 나올 때에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부모님께 다시 문자를 드릴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서운함과 섭섭한 감정은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위로할 수 있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이 감정을 앞으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날의 감정과 기분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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