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방황의 시간
불혹에 다시 시작한 진로 고민
만 39세. 오는 7월이면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마흔이 된다.
그리고 나는 퇴사 이후 9개월째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가열차게 고민 중이다.
10년 전인 29살에 나는,
나의 20대를 통으로 꼬라박은 연구자 생활을 때려치웠다. 박사 3학기를 마치고 말 그대로 도망쳐 나왔다. 교수님께 6개월만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바로 다음 월요일부터 서울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두 번의 퇴사를 거친 후에 우연히도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어 30대를 보냈다.
그리고 39세가 된 지금.
나는 또 10년 전에 했던 고민을 다시 하고 있다.
데자뷔 같은 고민과 일상이 이어진다.
온갖 취업 사이트를 뒤적이며 이 일은 어떨까, 이 회사는 어떨까를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귀농을 생각하며 유튜브와 시골 매물을 뒤적인다.
페이스북은 속기사 자격증, 성우 되기 학습지, 웹소설 작가되기 강의, 북부여성인력개발원의 특강까지 내가 관심 있을 정보들을 나에게 쏟아붓는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으니 너무 불안해서 아무거나 덥석 잡을 것 같다.
선택의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호기심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돌아보면 어릴 때 내 선택의 기준은 지금이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심리학과를 선택했고, 그렇게 심리학 중에서도 취업이 1도 안 되는 생리심리학을 석사 전공으로 선택했다.
철저하게 현재만 위한 선택을 했고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이 높은 나는 석사 5학기를 보내는 내내 계속 내 생존을 걱정했다. 혹시나 나중에 내가 상담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담, 임상 수업을 빼놓지 않고 들었다. 범죄심리사 수련생이 되어 용돈 벌이용 심리검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난한 대학원생 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가장 빨리 올라온 채용공고에 이력서를 넣었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에서 연구원으로 살았다.
생각이 자꾸 이리저리 뻗어가며 지나간 과거에 '만약에'를 붙여댄다.
당시 내가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선택‘이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선택을 했다면 지금 내 삶이 조금 달라졌을까.
퇴사하면서 얼기설기 세워둔 계획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
10년 전 고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나온다.
너무너무 좋아해 마지않던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퇴임식도 가지 않았다. 마흔에 또 이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싫은 것을 하지 않는 삶이었다
거창하게 현재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선택을 했다고 의미를 담아봤지만 사실은 그냥 싫은 것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취업이 싫어서 대학원을 선택했고, 상담사가 되면 겪을 여러 압박이 두려워서 상담 전공으로 원서를 넣은 두 번째 대학원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지고 일이 바쁘면 당시 만나던 연인과 헤어질 것 같아서 검찰 9급 공무원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면서 이력서 쓰고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가장 빠르고 쉬운 박사 연구원이 되었고, 연구비 따고 논문 쓰는 게 너무 싫어서 학교를 그만뒀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좋지 못해서 아애 다른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다. 잦은 실수와 내 고집으로 동료들과 관계가 무너진 걸 회복할 수 없어서 더 처참해지기 전에 그만뒀다.
예쁘고 멋진 포장지로 둘둘 말아봤자 속내는 그냥 애시끼의 땡깡 같은 마음이다.
성인이 된 후 20년 동안 좋아하는 것을 찾지 않고 싫어하는 일을 피하는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내 일관성 없는 포트폴리오이다.
신입이라고 하기엔 기간이 길고, 그렇다고 중간 관리자의 경험은 부족하고, 오래 일해 전문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영역이 있지도 않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자신이 없다
추구미는 항상 ‘이번에는 내 평생을 결정할 선택을 하고 싶다'이지만 이번에도 실패의 기운이 가득이다.
이번에는 내가 힘들지 않을 삶을 선택하고 싶은데 미래에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는 지금 초조하고, 가난하고, 불안하다.
마흔의 나는 스물의 나보다 싫은 것을 견디는 인내심이 아주 조금 더 늘었을 뿐 여전히 내 또래 평균에는 한참 미달이다.
마흔의 방황은 서른, 스물의 방황보다 짧기를, 쉰에는 이런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내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자신이 없다.
또다시 방황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내 자존감은 지금 바닥이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돌아보면 방황하던 시기마다 일기를 썼다. 지금 읽으면 오글거리기 그지없는 글들이었다.
감정을 쏟아낸 그 글들은 쓸 때도, 다시 읽을 때도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지금 이 글도 나외에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공개한다.
마흔에 진로 고민하는 이가 나 말고 또 있을거다.
여럿이면 덜 쪽팔린다.
나 같은 찌질이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자존감이 +1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