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이야기.

by 이지나

봄이 지나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하나였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둘이 되고, 그 둘이 하나 되어 아이가 생긴 것은.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셋이 되었다. 천국은 늘어나는(multiply) 것이라더니, 그렇게 우리 집에는 작은 천국이 도착했다.


오랜 친구였던 남편과 나는 이십 대의 마지막 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 후 두 번째 맞이한 가을, 우리는 부모가 되었음을 알았다. 임신 기간은 달콤했던 신혼의 연장이었고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이 전처럼 틈나는 대로 데이트를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도서관과 카페에 가고, 늦잠을 자고, 여행을 떠났다. 둘이 보내던 일상에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고, 신비로운 태동을 함께 느끼고, 아이의 작은 물건들을 준비하는 일이 더해졌다. 우리는 아이에게 ‘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을 누리듯 그 시간을 보냈다. 기다림은 설레는 것이었다. 나와 얼이는 열 달 내내 건강했다. 평소에도 아픈데 없이 튼튼하고 체력이 좋았던 나는 모든 검사들을 안정적인 수치로 통과했고 그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입덧마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입덧을 하는 기간 동안 남편이 이유모를 소화불량과 메스꺼움으로 힘들어하며 한동안 고생을 했다. 간혹 아내를 많이 사랑하는 남편들이 입덧을 대신하기도 한다더니, 하하하. 정말 그래서 였던 걸까. 누군가는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하지만, 그 무렵의 우리는 날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었고, 사랑에 밥 말아먹으며 얼이도 무탈하게 쑥쑥 자랐다. 얼굴에서는 윤기가 나고, 마음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어깨가 들썩이고 웃음이 데굴데굴 쏟아지는 날들이었다. 배가 꽤 많이 불러왔을무렵 횡단보도 옆에 서 계시던 어떤 어르신께서는 어쩌면 임산부가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우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몸이 점점 더 무거워졌지만 남편과 둘이서 평소처럼 일상을 보냈다. 임신 전처럼 인쇄소에 가고 디자인도 했다. 고요한 날들이었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막달은 만만치가 않았다. 일찌감치 배가 많이 나오면서 묵직했던 얼이의 무게는 내게 처음 겪어보는 허리 통증을 안겨주었다. 길을 걷다가도 악소리가 나며 걸음을 멈추는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압력으로 인한 임신성 이명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역류성 식도염으로 식도가 타는 듯이 고통스러워서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점점 밖에 나가는 것이 힘에 부쳤다. 편안히 누울 수도, 누운 채로 몸을 돌릴 수도 없었고, 밤에는 수시로 깼다.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이미 임신과 출산을 겪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내게 말했다. 배에 넣고 다닐 때가 편한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얼이를 만났다. 여름이 시작되었고, 살랑이는 얇은 나시 원피스를 입고 얼이를 낳으러 갔다가, 이틀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툼한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작고 작은 얼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해 여름은 작은 방 안에서, 오로지 집 안에서 작고 작은 아기와 함께 단 둘이 보냈다. 모든 것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진통과 출산도 그러했고, 무더운 여름날 산후조리를 하는 것도 그랬다. 아기를 만나는 감격스러움과 별개로 출산은 온몸의 뼈가 벌어지고 살이 찢어지는 경험이었기에 회복하는 데에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렇게 긴 시간을 날마다 집에만 머무는 것도,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달래고 재우는 것도 모두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었다. 기저귀를 가는 법부터 아이를 안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고, 세수는 고사하고 밥한 끼 제대로 앉아서 먹을 새도 없었다. 밤새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보는 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야무진 소원이었다. 모유수유를 하니 체중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원래 몸무게보다 더 줄어들었지만, 몸이 다 망가져 덜그럭 소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마음껏 뛰고 달리고 무거운 것을 번쩍 들던 예전의 나는 사라진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처럼 쪼그려 앉고, 점프를 하고, 몸을 쭉 펴고 엎드려 책을 읽을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궁금하고, 두렵고, 슬퍼졌다. 집 근처 슈퍼에 다녀오려 해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고, 수유하는 틈틈이 작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계절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더듬어볼 뿐이었다. 집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부러움과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다 주는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이 내가 쐬는 바람이고, 햇살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종종 내 손을 잡고 집 옥상으로 올라가곤 했는데, 여름이어서 해가 늦게 졌고, 바람에서는 여름 냄새가 났다. 이따금 바람결에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임신기간의 자유로움과 명랑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여행은커녕 마음대로 나가서 돌아다닐 수 없는 삶은 그동안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삶이 한순간에 너무 바뀌어서 어디부터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헤아려볼 수도 없었다. 아, 그래서 다들 아기가 배에 있을 때가 편한 거라고 한 거구나.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안에 있던 얼이가 내 곁에 있는 게 좋았다.

그건 다른 무엇과 바꿀 수도, 다른 무엇에 비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얼이를 품에 안고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따스했고,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고 있으면 손 안에서 심장이 콩콩 뛰었다. 향긋한 아기 냄새가 내게서도 났고, 눈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실배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감정은 더 깊은 곳에서부터, 더 사소하게 피어올랐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차곡차곡 얼이로 채워졌다. 결혼 전부터 함께 자주 가던 식당에서 한 사람은 얼이를 안고 서서 둘이 번갈아 밥을 먹던 날도 있었고, 얼이와 똑같은 포즈로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던 날들도 지나갔다.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침대에 쉬야를 하고, 밤을 새워 손으로 다지고 끓여서 만든 이유식을 엎고 쏟으면서, 얼이는 고개를 가누고,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동동거리며 얼이를 돌보고, 둘이서 오롯이 얼이를 키우며 더 단단해졌다. 셋이 되어 만나는 세상은 이 전보다 다채로운 깊이의 즐거움과 행복이 있었다. 내가 얼이를 안고 있으면 남편이 내게 밥을 먹여주고, 남편이 얼이를 씻기면 내가 곁에서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매일매일 날마다 쪽잠을 자야 했지만, 밤에 얼이가 깨서 울면 수유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얼이를 내 품에 안겨주었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날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힘을 내는 날들이 지나갔다. 그 시절은 진정 여름이었다. 우리 삶의 여름날. 우리 인생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시절. 땀 흘려 수고해야 하지만 가장 눈부시고 반짝이고 찬란한 날들.

그러니 여름이었다. 내 생애 가장 뜨거웠던 여름.


어느 밤, 얼이를 재우고 남편과 둘이 나란히 앉아 소리를 작게 틀어두고 영화 ‘어바웃 타임’을 함께 보았다. 그 영화에는 시간 여행을 하는 능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는 그 능력으로 과거를 오가면서 상황과 선택을 바꾸어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는 점점 시간여행을 하지 않게 된다. 현재가 너무 완벽하게 행복해져서 더 이상 시간여행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간 여행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너무나 즐거웠기에.”


그 영화를 보며 지금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날들이었다.

하루하루가 가는 게 아깝고 아쉬워서 시간이 좀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토록 치열하고 고된 여름을 보내면서도 끝내 지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언젠가는 이 계절의 기억들을 꺼내어보며 마음을 데우고 그리워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계절은 쉼 없이 흘러가고, 아이는 멈추지 않고 자라고, 다시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가을이 왔다.

비로소 우리는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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