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을 끄는 아주 사소한 이유들
우리는 셋이 떠나는 여행을 꿈꾸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여행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어디로 떠나는가는 단연 가장 설레고 제일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우리가 여행지를 결정하는 방법은 언제나 세계지도를 펼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지도를 놓고 손 끝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나라와 도시들을 짚으며 가고 싶은 곳을 찾았다. 그렇게 넉넉히 후보지가 추려지면, 일정에 맞는지 항공 스케줄을 확인해보는 것이 다음 순서이긴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목적지는 마음을 끄는 아주 사소한 이유들로 결정되었다.
우리 둘이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었던 허니문의 장소를 정할 때도 우리는 결혼식 장소를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신중하게 공을 들였다. 우리는 우리의 결혼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직접 준비했다. 결혼식은 물론, 웨딩 리허설 촬영부터 신혼집을 꾸리는 것까지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불과 몇 년 전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셀프 촬영이라는 것이 생소하던 시기였는데, 우리는 공원에서, 고궁에서, 작은 카페에서 우리가 준비한 옷을 입고 평소처럼 한껏 웃으며 사진을 남겼다. 결혼식날에는 내가 디자인하고 동생이 만들어준 드레스를 입고, 엄마가 전 날 밤 손바느질로 완성해준 베일을 머리에 썼다. 내 손에 들린 부케와 작은 귀걸이 하나까지 우리가 만들거나 선물받은 것으로 채워졌고, 따로 촬영이나 도와주시는 이모님도 부르지 않았으니, 우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기꺼이 와주신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진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드리고 부부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살게 될 집부터 냉장고며 책상, 숟가락 하나까지도 둘이서 함께 고르고 준비했다. 그러니 신혼여행도 우리가 직접 계획을 세우고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이 신나는 숙제를 여행사에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틈나는 대로 세계지도를 펼치고 머리를 맞대곤 했다. 하지만 지도 위를 헤매던 두 손끝이 만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나는 혼자일 때 여행 다니곤 했던 유럽에 남편과 함께 다시 가보고 싶었고, 남편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쪽으로 떠나고 싶어 했다. 둘이 함께 하는 첫 여행이니 우리 둘 다 처음인, 가보지 않은 나라였으면 했는데 그런 나라를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오후 우리는 흔들리는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다이어리에 붙어있는 작은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북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를 찾았다. 그중에 모로코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카사블랑카’라는 도시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우리가 찾던 이유였다. 그리고 계속 그 매력적인 낯선 나라에 끌리다가, 결국 모로코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물론 다른 이유도 몇 가지 있었다. 그 무렵 다른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내전이며 정치적 상황으로 치안이 불안정했지만 왕정국가인 모로코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로코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14km 떨어져 있을 만큼 유럽과 가까운 나라였다. 위치상으로는 북아프리카이면서 중동 문화권이기도 했다. 또한 그 문화적 풍성함과 정교한 예술성으로 인해 수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라 이기도 했다.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나라, 아름답게 염색되어 섬세하게 가공된 가죽과 타일, 공예품이 시장 골목 가득 쌓여있고, 제멋대로 자란 마른 수풀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람들 곁을 스쳐 당나귀가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곳.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목적지를 결정한 후에는, 마치 이 사람이 내 운명인 것처럼 가는 곳마다 그 도시와 마주쳤다.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 본 시리즈에도 모로코가 등장했고, 여기저기서 모로코 얘기를 듣고, 그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나라가 자꾸만 눈에 띄었다. 그러다 둘이서 영화 ‘카사블랑카’를 찾아보았는데 영화 속에서 노래가 한 곡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는 깜짝 놀라 서로를 마주 보고 다음 순간 깔깔대며 웃어버렸다. 유명하지만 우리만 몰랐던 노래, 영화 ‘카사블랑카’ 주제곡 ‘As time goes by (시간이지나)’ 였다. 바로 내가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 브랜드의 이름. 우리는 운명이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신이 났다. 아 여기구나. 우리의 첫 여행. 우리의 허니문은 꼭 여기로 가야겠다. 처음에는 호기심이 일었다가, 얼른 달려가고 싶어 졌다가, 나중에는 꼭 그곳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유에 이유를 차곡차곡 더하며 가보기도 전에 그 나라와 사랑에 빠졌다.
결혼 후 두 번째 여름, 우리가 인도 고아 Goa로 떠났을 때에도 그런 사소한 이유가 있었다. 본 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그 작은 바닷가 마을이 등장한 게 시작이었다. 어딘가 쓸쓸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풍경도 좋았고, 그럼에도 따스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다. 우리는 아기가 생기면 당분간 가기 어려울 것 같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 인도를 선택했고, 도시로 가고 싶던 남편을 위해 일정의 절반은 뭄바이에서, 휴양지에 가고 싶었던 나를 위해 일정의 나머지 반은 인도 서부 해안가의 고아에서 보냈다.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셋이서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오랜만에 떠나는 것이니 우리는 가능한 멀리 가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둘 다(셋다) 가보지 않은 나라였으면 했다. 우리 셋 모두에게 처음인 곳. 그리고 감성적인 이유를 하나 찾았다. 바로 내 동생이었다. 미국에서 일하느라, 우리 결혼식 때 잠시 귀국했다가 돌아간 뒤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동생 단비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미국 서부로 가기로 했다. 단비는 LA에 살고 있었지만, 서부 쪽 도시 어디에서든 만나기로 했고, 이유는 내가 찾았으니, 도시는 남편이 선택했다. 그즈음 자꾸만 마주치던 도시. 티브이를 켜도, 책을 펼쳐도 자꾸만 눈에 띄고, 노래로도 흘러나오던 도시. 우리를 소곤대며 부르던 그곳. 우리는 마침내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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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가을 무렵에 떠나는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본래 여행 전에 느끼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설렘은 영화보다 재미있는 예고편처럼 짜릿한 즐거움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상상 속에는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얼이가 있었다. 그때가 되면 돌도 지나고 15개월 즈음이니, 당연히 걷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을이 다가오고 출국일이 가까워올 즈음에도 얼이는 도통 걸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이는 대체로 늦는 편이긴 했다. 목을 가누는 것도, 허리를 세우고 앉는 것도, 뒤집고 기는 것도, 잡고 일어서는 것도, 모두 느지막이 시작했고, 첫 니도 무려 돌이 지나고서야 났다. 원래의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지만, 얼이에 관해서는 다행히 느긋한 마음이라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저 얼이에게는 얼이만의 가장 좋은 때가 있겠지, 얼이는 얼이의 속도로 가면 되는 거겠지 하고 믿으며 기다렸다. 하지만 모름지기 여행이란, 함께 손을 잡고 제 발로 걸어야 하는 것인데.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런데 여행 3일 전, 얼이와 함께 친정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뭔가 내 눈 앞을 스윽 지나갔다. 무심코 돌아봤더니, 얼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박자박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농담처럼 우리가 안 볼 때는 걸어 다니다가 우리가 쳐다보면 아직 못 걷는 척하고 기어 다니는 거 아니냐고 하곤 했는데, 진짜였던 걸까. 그게 ‘내 눈으로 본’ 얼이의 첫걸음마였다. 그리고 3일 뒤, 공항에 가면서 얼이는 신발을 신고 밖에서 처음 걸었다. 마침내 우리는 동등한 동반자이자 친구로, 진정 ‘함께’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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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이네 가족의 '아이와 함께한 여행 이야기'는
가을, 미국 샌프란시스코,
겨울, 대만 가오슝,
봄, 필리핀 마닐라,
여름, 베트남 호치민,
다시 가을, 둘이서 제주.
이렇게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행정보보다는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볼 생각이고요.
글은 거의 다 써두었는데, 긴 글을 나누어서 제목도 붙이고 사진과 함께 올리려니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네요. 그래도 여행은 계속되고,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
이 곳과 인스타그램에 덧글로 남겨주신 글들은 몇 번씩 읽어봤어요. 힘이 되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