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고 난 후에 알게 되는 것들

by 이지나

호치민의 겨울 햇살은 바삭바삭하다. 셔츠를 빨아서 가장 뜨거운 한낮의 태양 아래 널어두면, 한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따끈하게 햇살을 머금고 바짝 바른다. 햇빛으로 잘 구워진 셔츠를 집어 들면 원래 색보다 더 새하얘진 옷깃에서 바스락하며 기분 좋은 햇빛 냄새가 났다. 처음 먹어본 진하고 향긋한 쌀국수도 쫄깃한 바게트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도 모두 낯설지만 다정한 맛이었다. 이 나라는 이모작, 삼모작으로 농사를 지어 빵도 전부 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차갑고 진하고 달콤한 커피를 마셨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수많은 오토바이들 틈에서 호치민 시내도 달렸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처음 만난 베트남은 햇빛 냄새로, 쌀국수의 맛으로, 오토바이 소리로, 따끈한 공기와 진한 색감으로 내게 기억되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셋이서 다시 찾아간 호치민은 여름이었다. 시간은 십 년이 넘게 흘러있었다. 십 년 전 필름 카메라로 찍었던 몇 안 되는 사진들은 대부분 잃어버렸고, 기억도 사진도 색이 바랬다. 하지만, 햇살은 여전했다. 거리의 풍경도, 사람들도, 도로를 메운 오토바이들의 행렬도. 사진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던 시절의 확실치 않은 뿌연 기억들 위로 눈 앞의 견고한 풍경들이 겹쳐졌다.

다른 점도 있었다. 이번은 여름이었다. 호치민의 여름 공기는 좀 더 습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다가도 빗방울이 투둑 투둑 한두 방울 바닥에 떨어져 무늬를 남기면, 그때는 서둘러야 했다. 걸음을 재촉해 가까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이내 와르르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붙이고 서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 즐거이 비를 맞기도 하면서 호치민의 여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내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많았다. 이 나라의 강렬하고 풍성한 햇살과 강우가 벼들만 길러냈을 리 없으니, 영화나 그림 속에서나 보았던 올려다보면 까마득해 목이 뻐근하고, 팔을 벌려 품에 안아보려면 한 사람으로는 부족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도시 곳곳에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와 비가 세월을 거듭해 키워낸 장대한 나무들 아래를 걷는 것은 자못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는 걷는 속도를 달리해가며 호치민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을 걸어 다녔다. 그날도 시내에 있는 커다란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한 낮이었고, 곳곳에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촤촤촤촤 물을 뿌렸다. 햇살은 바닥에 일렁이고, 나무들이 만드는 그림자와 날아오는 물방울 사이를 걷다 보니 들뜬 산책은 어느새 흥겨운 뜀박질로 바뀌었다. 얼이는 끊임없이 맑은 소리로 높게 웃었다. 나무들 틈으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반짝이며 떨어지고, 그늘에 있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우리는 셋이 어울려 배가 아프도록 웃으며 공원 이곳저곳을 마음껏 뛰어다녔다. 나중에 남편은 내게 그 순간의 행복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후로도 베트남을 생각할 때마다 기억난다고 했다. 한참을 그렇게 놀고 있는데, 그때였다. 투둑 투둑. 비였다. 둥그렇고 큼직한 빗방울이 바닥에 빠른 속도로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후다닥 얼이를 유모차에 태우고는 그 넓은 공원을 나는 듯이 달려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찾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길 건너편에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작은 카페가 눈에 띄었다. 재빨리 길을 건너 카페 안으로 뛰어들자 우리 등 뒤로 굵어진 빗방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벽과 바닥을 세차게 두드렸다. 바깥과 달리 작은 카페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있어 시원하고 아늑했다. 순식간에 그리고 무사히 비를 피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유쾌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뭐라도 이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이제는 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인 이 작은 카페에서 베트남 커피와 주스를 주문하고 비가 그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단 음료부터 주문해야지. 남편은 지갑을 꺼내 카운터로 향했고, 나는 얼이를 데리고 테이블에 앉으면서 무심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유모차 바구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지르는 것은 잘해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는 늘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에 넣었는데. 다른데 두었을 리가 없는데. 순간 불길함이 잠시 스쳤다. 에이 아니겠지. 어딘가 있겠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착하게 가방이며 다른 곳들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휴대폰은 없었다. 설마. 그래 아닐 거야. 이따금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두고 오는 나를 위해 남편은 종종 내 휴대폰을 대신 챙기곤 했다. 이번에는 주문을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오는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남편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외면하려던 불안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보, 내 휴대폰 정말 못 봤어?"

가지고 있던 가방을 다시 한번 샅샅이 살펴봤지만 휴대폰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내 기억은 선명했다. 공원에서 뛰어놀기 시작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어 유모차 바구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휴대폰은 지금 거기 없었다.

남편은 애써 피한 굵은 빗속으로 다시 달려 나갔다. 비를 맞으면서 우리가 달려온 길을 구석구석 훑으며 공원 안까지 둘러보고 왔지만, 어디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동안 유모차에서 떨어져 버린 듯했다. 공원 안 푹신한 풀밭이나 흙 위로 떨어져서 몰랐던 걸까? 아니면 정신없이 비를 피하는 동안 바구니에서 빠진 걸까. 어쩌면 좋지. 아찔하고 속이 탔다. 아니야.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야. 괜찮을 거야. 두려움과 간절함이 뒤섞여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수고와 나의 바람과는 달리 휴대폰은 찾지 못했다. 남편의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해보았지만, 비를 맞아서 꺼진 건지 누군가 주워간 건지 잠시 후에는 더 이상 신호도 가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 멀고 낯선 도시에서. 완전히.


우리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 보험처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카페 직원들에게 경찰서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갔다. 가장 가깝다고는 하지만, 습기와 열기로 가득 찬 거리를 유모차를 밀면서 삼십 분이 넘도록 걸으며 헤매야 했다. 경찰서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은 관광지가 아닌 동네 골목을 걸으니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작은 쪽지에 베트남어로 경찰서를 적어달라고 부탁해서 들고 갔지만, 설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경찰서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다. 대학생으로 보이던 카페 직원이 마지막에 덧붙였던 말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그런데 경찰서에 가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비 오듯 땀을 쏟으며 마침내 도착한 경찰서는 다른 무채색 건물들과 똑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원의 말은 슬프게도 사실이었다. 동네의 작은 경찰서에서 한가로이 쉬고 계시던 경찰관분들은 우리가 나타나니 적잖이 당황하신 듯했다. 게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곳을 나와 여행자 거리에 있는 조금 더 큰 경찰서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참을 더 걷고 헤맨 끝에 마침내 여행자 거리에 있는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결론은 이 곳에서도 역시 우리가 원하는 도움은 받을 수가 없었다. 이 곳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지만 경찰서를 찾아다니다 보니 업무시간이 끝날 즈음이었고, 결국 다음날 다시 오라면서 우리를 돌려보냈다. 나중에 좀 더 알아보니, 베트남에서 무언가를 분실하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는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통역이 가능한 호텔 리셉셔니스트와 동행해서 경찰서에 방문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다음날이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휴대폰은 내가 가진 고가의 물건 중 하나였다. 더욱이 구입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직 할부가 까마득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속이 상했던 건 그 안에 백업해두지 않은 수백 개의 메모와 만 장이 넘는 사진이 들어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여행지에서 가장 비싼 것은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이 거기에 담겨있다고 해서 지금과 나중을 그것과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찾자. 괜찮아. 대신 남은 시간 더 즐겁게 보내고 가자.


그동안 여러 나라로 여러 번의 여행을 다녔으니 무언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위스에서는 로잔에 살다가 주말에 베른으로 기차를 타고 놀러 갔는데, 그곳에서 지갑을 통째로 도둑맞았다. 치안이 안정되어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 나라에 오래 머물다 보니 마음이 느슨해진 탓이었다. 카페에 앉아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두었는데, 한참 있다가 나오면서 보니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지갑이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스페인을 여행할 때는 지하철역에서 낑낑 대며 짐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무심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다른 사람의 손이 잡혔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경험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소매치기가 손을 쓱 빼며 "굿럭-"하고는 눈 앞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황망하게 서 있다가 정신이 들고나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 엉덩이라도 걷어차던가 욕이라도 할 것을. 아니 안 하길 잘한 건가. 그 후 여행을 다닐 때면 가능한 짐을 줄이고, 더 꼼꼼하게 소지품을 챙겼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 아주 잠깐,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지나가버린 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다면 오래 후회하지 않고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났다. 지나가버린 것에까지 마음을 쓰기엔 언제나 지금이 귀하고 중했다. 잘 잃어버리는 대신 잘 잊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조금 더 잘 챙길걸. 거기에 넣어두지 말걸. 아니 미리 백업이라도 해둘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남은 할부금도, 일하면서 필요한 디자인 자료들이나 오랫동안 적어둔 메모들도 그렇게까지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걷고, 웃고, 울고, 말하고, 손을 잡고, 춤을 추고, 내게로 달려오는 숱한 얼이의 기록들이 담겨있었다. 아이는 매일 자라 날마다 달라진다. 나는 얼이를 기르며 비로소 시간의 무게를 느끼고 배웠다. 매일 밤 오늘의 아이를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다. 아이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달랐다. 부모들이 그토록 열렬히 아이의 사진을 담아내는 것은 마치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 봤던 풍경을 내일 다시 볼 수는 없다. 설혹 비슷해 보여도 삶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과 공간을 기록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얼이의 수많은 '처음'에 대한 기록들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낯설고 먼 땅에 영영 찾을 수 없게 두고 온 것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그곳에 놔두고 온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또렷해졌다. 지난 몇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담아두었던 거대하고 사소한 모든 행복의 순간들을 통째로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 잠도 오지 않았다. 아쉬운 게 아니었다. 아프고 속이 상했다.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며칠간은 휴대폰 없이 지냈다. 그리고 그전에 사용하던 액정에 금이 가고 스피커가 고장 나서 통화가 되지 않는 오래된 휴대폰을 한동안 가지고 다녔다. 내가 가입했던 휴대폰 보험을 확인해보니 해외에서의 분실은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에도 휴대폰을 종종 두고 다녔고 전화기 없이도 큰 불편함 없이 지내는 터라 시일이 좀 지난 후에야 새 휴대폰을 마련했다. 속상했던 마음은 우리 셋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돌아와 복작이며 충실하게 채워가는 일상으로 차츰 메워졌다. 잃어버린 게 마음이 아플 만큼 반짝이고 촘촘하게 따스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이렇게 서로의 곁에서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한동안 이따금 슬퍼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나면 이전보다 더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이제는 며칠에 한 번씩, 특히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꼭 휴대폰과 카메라에 있는 모든 사진들을 옮겨서 저장해둔다. 매번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사진이 너무 많아서, 늘 나중으로 미루었던 일이었다.


-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순간은 이번에도 아주 짧게 우리 모두를 스쳐 지나갔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었다. 이 시간에는 거의 통화하지 않는데, 무슨 일이지. 언뜻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받았더니 차분한 침묵 너머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 전화기는 소리뿐 아니라 불투명한 공기도 실어 나른다. 예감은 직감이 되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어느 보통날 우리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삼 일간 장례를 치렀다. 장례절차가 그렇게 많고 복잡한지 처음 알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돌아갔다. 같은 순간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같은 순간 울고, 같은 곳에서 웃어서, 우리는 슬펐어도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커다란 감정을 덜어내어 함께 울고 웃어주는 이들이 있으니 우리 모두의 고통의 무게는 줄어들었다. 무사히 장례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지만, 문득 후회는 예상치 못했던 순간 익숙한 일상의 구석에 구겨진 옷처럼 떨어져 있다가 툭 하고 내 발끝에 부딪치곤 했다.

장례를 마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설 연휴가 다가올 무렵이었다. 돌잔치 때 한번 입히고 곱게 넣어두었던 얼이의 한복을 꺼내는데, 그 틈에서 툭- 후회가 떨어졌다.

그 한복은 얼이의 첫 번째 생일을 앞두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우리는 양가 가족들만 모여 작은 한정식집의 마당에서 함께 축하를 하기로 했다. 얼이를 낳고서야 나는 내가, 그리고 내 아이가 결코 혼자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얼이를 위한 축하뿐 아니라, 내리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정성껏 돌잔치를 준비했다. 장소와 음식을 꼼꼼히 살피고 조용하고 정갈한 한정식집을 택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시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직접 다니면서 계단이 없는 곳을 찾았을 만큼 작은 것 하나까지 마음을 쏟았다. 꽃시장에 다녀와서 정성껏 꽃바구니를 만들고, 떡을 맞추고, 다 같이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케이크도 만들었다. 테이블보부터 소소한 장식 하나까지 모두 직접 준비하고, 며칠간 밤을 새워 양가의 어른들께 드릴 선물도 만들었다. 드디어 얼이의 첫 번째 생일날이 되었다. 날이 맑았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고운 한복을 꺼내어 입혔다. 초록이 완연한 소담한 정원에서의 돌잔치는 안온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날 할아버지는 그곳에 오지 못하셨다. 늘 정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그 날따라 갑자기 몸이 별로 좋지 않으셔서 우리는 돌잔치를 마친 뒤에 바로 찾아가 뵙고 준비한 꽃 바구니와 선물을 전해드리고 돌아왔다. 다행히 좀 쉬시고 나니 안색이 괜찮아지신 듯 보였다. 나는 안도했다. 돌잔치를 마치고 얼이는 이미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힌 후였지만, 그때는 그런 것에 그다지 마음 쓰지 않았다.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저 집에 돌아와 한복을 개켜 넣어두면서, 품이 넉넉하니 다음 명절 때는 얼이가 입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명절이 돌아왔다. 왜 나는 살면서 언젠가는 할아버지가 없는 설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부러진 나뭇가지의 마른 껍질처럼 손 안에서 부스러졌다.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미루어두었던 '언젠가'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를 기르는 일에도, 여행에도, 사랑에도 나중은 없다.

아이는 자라고, 여행지는 떠나고,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중에 해야지.’하고 미루어 놓으면, 아껴두었던 옷은 맞지 않고, 공연은 막을 내리고, 눈 앞의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지며, 바람은 방향을 바꾸어 불기 시작한다. 그 순간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는 옹알이를 잊고, 걷다가 이내 뛰기 시작한다. 아까 망설이며 지나쳤던 물건은 그 가게에 돌아가면 남아있을지, 아니 그 가게에 다시 갈 수는 있을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 순간이 지나면 나중은 이미 저만치 물러난다. 어쩌면 여행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귀한 가르침은, 우리가 여행을 통해 연습해볼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성실과 열심을 다하는 것.


얼이가 교회 마당에서 물총을 가지고 놀다가 뚜껑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물총에 끼우는 동그란 플라스틱 뚜껑은 얼이 손에서 떨어져 어어-하는 사이에 눈 앞에서 굴러 순식간에 하수구 구멍으로 빠졌다. 처음에는 손을 뻗어보고, 다음에는 우리에게 달려와 뚜껑을 꺼내 달라고 하던 얼이는 하수구가 너무 깊어 뚜껑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이제는 그 뚜껑을 꺼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떼를 쓰거나 크게 우는 일이 거의 없는 얼이가 그 날은 눈물을 펑펑 쏟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었다. 결국 남편이 하수구 뚜껑을 들어내고 막대와 청소기까지 동원해서 그 작은 물총 뚜껑을 그 안에서 건져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어느 날 얼이와 물총을 가지고 놀다가 그때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다.

"얼아, 그 날은 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거야?"

그러자 얼이가 대답했다.

"응, 뚜껑을 다시 못 만날까 봐."


어린아이도 헤어짐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안다. 그래서 그 준엄하고 아득한 무게 앞에 목놓아 운다.

시간은 발 앞의 시냇물처럼 쉼 없이 흘러간다. 때로 비가 많이 쏟아져 물이 불어나 세차게 휩쓸어 내려가기도 하고, 혹은 가물어 더디게 자박대며 찰랑이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느려도 멈추지 않고 계속 지나간다.

우리 삶의 어떤 것은 가라앉은 돌멩이처럼 세월에 닳더라도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나뭇잎처럼, 꽃잎처럼, 물고기와 잠자리처럼, 그림자처럼. 우리를 두드리고 물 위로 떨어져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흘러갈 것이다.

순간 소중한 사진 한 장이 시냇물 위로 떨어졌다. 팔랑이며 물 위로 떨어진 순간은 흔들리며 떠밀려간다. 흘러가는 물 위에 떨어진 무언가를 나중에 주워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소중한 것을 잡으려면 주저 없이 첨벙이며 물속으로 들어가 고이 건져 올려야 한다. 발을 적시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다짐한다. 망설이지 말아야지. 미루지 말아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멀리, 함께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