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함께 가기

by 이지나

"얼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하는 거예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몇 주 전 얼이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 날은 우리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한 동생네 부부를 만났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그 동생네 가정에는 얼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었고, 우리는 해 질 녘 즈음 함께 청계천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아이들은 졸졸 흐르는 물과 돌로 된 징검다리, 그리고 길을 따라 빼곡한 풀숲에 들떠있었다. 여름에 접어들 무렵이라 기분 좋은 풀냄새와 함께 묵직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공기 중에 섞여있었다. 퇴근을 하고 곧장 우리를 만나러 온 남편은 종종거리는 아이들을 챙기며 앞서 걷고 있었고, 우리는 몇 걸음 뒤에서 걸어가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얼이와 함께한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을 다녀왔으면서도 왜 그 질문이 그토록 생경하게 들렸을까. 나는 대답했다. 내가 얼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얼이와 함께 있는 것이고, 우리가 늘 같이 있기 때문에 얼이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말했다. 넓은 세상을 보는 건 내가 좋아해!

걸음을 늦추고 어느새 곁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도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가 좋아서 가는 거지 뭐, 하하!

사실이었다. 우리가 좋아서. 설레서. 가슴이 뛰어서.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세상을 좀 보고 싶어서.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인 개리 채프먼은 사랑에 다섯 가지 언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정하는 말 Word of affirmation, 함께하는 시간 Quality time, 선물 Receiving gift, 봉사 Act of service, 스킨십 Physical touch.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의 언어들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봉사인 아내가 있다.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고, 셔츠를 다리고, 집을 청소하는 것으로 그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남편은 선물로 사랑을 표현한다. 선물을 사주며 자신의 사랑이 모두 전해졌을 거라 생각하고, 아내가 인정하는 말과 스킨십으로 사랑을 채워주기를 바란다. 만약 이렇게 사랑의 언어가 다르고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를 모르고 있다면, 이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리고 심지어 각자의 언어와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 모두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언어는 다른 관계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친구였을 때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을 읽었고, 그 후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될 때까지 여러 번 사랑의 언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얼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을 주고 싶었다. 나의 사랑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간들을 얼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한 가지 사랑의 언어로만 사랑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다. 나는 얼이를 끌어안고 살을 비비며, 너와 함께여서 즐겁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이불을 빨았다. 얼이가 자라면서 우리의 언어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어느 날에는 얼이가 홀로 여행을 떠나고 내가 그것을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사랑인 날도 오겠지. 그때에는 또 그 날의 얼이가 이해하는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우리의 아이에게 어린 시절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랑의 표현이자 언어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떠났다.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실은 맞는 말이다. 얼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고 늘 나와 함께 있으니, 우리는 어디든 함께 가고 언제나 같은 것을 보았다. 내가 만나는 매일이 곧 얼이의 세상이었다. 내가 가서 닿는 만큼 얼이의 지경이 넓어졌고, 우리가 다닌 곳들이 고스란히 얼이의 세계가 되었다.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은 여행의 목적이 아니어도 이내 결과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여행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얼이는 이제 네 돌이 지나 다섯 살이 되었는데, 아직 놀이공원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평소에도 키즈카페를 가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아주 드문 일이고, 그동안 여행지에서도 특별히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에 가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나는 얼이가 작은 크기의 모형보다는 진짜 세상을 겪어보길 바랐다. 집에서도 장난감이 많지 않은 대신 살림살이를 꺼내어 가지고 놀게 두었다. 그래서 얼이는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쌀을 푸며 놀았다. 제주에 갔을 때는 아쿠아리움 대신 수산시장에 갔다. 테마파크 대신 바닷가에서 파도와 모래를 적시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 얼이가 뛰어놀고 싶어 할 때는 공원이나 놀이터를 찾아가서 함께 놀았다. 가능한 비용이 들지 않고, 얼이가 노는 동안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이에게 동물들은 많이 봤냐고 물어보았다.

케냐 마사이마라에서 사파리를 했지만, 아프리카 현지에서 하는 사파리는 동물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얼이는 우리와 함께 지붕이 열려있는 투박한 차를 타고, 여기저기 쿵쿵 부딪쳐가며 거친 오프로드를 달려 동물들을 찾아다녔다. 코끼리나 기린이 나타나면 얼이는 재빨리 신발을 벗고 의자 위로 올라가 우리 옆에 나란히 서서 목에 걸고 있던 뽀로로 망원경을 들어 동물들을 보고,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얼이에게도 우리에게도 짜릿하고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만을 위해서도 가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함께 갔다.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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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808.JPG 지난 달,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에서. 삼각대를 놓고 찍은 우리 가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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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글을 올려요.

지난달에는 저희 가족의 바람이자 소망이었던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정말 먼 길이었지만, 놀랍도록 근사하고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케냐에서는 전기도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오고, 인터넷도 연결이 되지 않는 곳에 머물렀어요.

그러다 탄자니아 잔지바르로 이동하기 위해 나이로비 공항에 갔을 때 간신히 잠시 와이파이를 연결했는데,

제가 지원했던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결과를 알게 되었어요. 얼마나 놀라고 떨리고 감격스럽던지요.

이국의 언어들이 들려오는 낯선 작은 공항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얼이와 함께 수상을 확인하고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뭉클한 마음이었어요. 부족하지만 얼이가 잠들고 난 후 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쪼개어 가슴 뛰고 설레 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들을 책으로도 들려드릴 수 있기를 계속 꿈꾸고 있어요.

글도 여행도 계속됩니다. 공감하며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다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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