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오롯이 얼이를 키우고 얼이와 늘 함께 있는 나는 평소에 외출할 때면 여느 엄마들이 그렇듯 바지나 헐렁한 티셔츠, 긴 스커트 차림에 가장 편한 신발을 골라신는다. 얼이와 손잡고 함께 달리고, 넘어지면 언제든 가서 일으켜주고, 때로는 길에 주저앉아 벗겨진 신발도 다시 신겨줘야 하고, 수시로 바닥에 떨어트리는 물건들도 허리 숙여 주워야 하니까. 나는 아이 짐을 거의 안 가지고 다니는 엄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얼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적에는 물티슈나 기저귀 한두 장은 챙겨야 하니 외출을 할 때마다 가방도 큼지막하고 가벼운 것으로 들었다.
어느 대학에서 유희열 씨가 강연을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이면서 살 수 있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고 한다.
"옷에 더 신경 쓰세요. 옷에만 신경을 써도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균열은 의외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가 되는 것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기에 뼈와 장기를 누르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니다가, 몸을 찢는 출산의 고통도 견뎌낸다. 이 전에 누리던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유익들을 즐거이 포기하고 모든 일상을 송두리째 아이에게 건네준다. 성경에 이런 표현이 있다.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아서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다고. 아이를 기르는 일도 천국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기쁨으로 아이와 바꾸었다. 거기에는 나의 일터, 제때 하는 식사, 충분한 잠 같은 것들뿐 아니라 하이힐, 짙은 색 립스틱, 작은 핸드백, 기다란 귀걸이와 앙고라 스웨터, 커피와 여유 같은 것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하고 작은 순간, 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다 팔아버린 것들이 기억나 때로 마음이 욱신거렸다. 아이가 엎은 간식을 치우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끝내 식어버린 식탁 위의 국그릇, 마지막으로 신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아끼던 구두 한 켤레, 읽다가 덮어두었지만 끝내 다시 펼치지 못한 책, 푸석한 얼굴과 윤기 없는 머리칼, 늘어진 티셔츠 위에 아이가 남긴 얼룩 위로 나는 하릴없이 허물어졌다. 낯선 도시로 떠나는 것을 설레어 하고, 언제나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쪽을 선택하고, 짧은 스커트를 좋아하지만 몇 주간 청바지 한 벌만 입고도 구김 없이 웃던 나는 천국을 캐내는 동안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희생이라 부르는 거대한 무게는 제법 견딜 수 있었지만, 가느다란 바람에 베인 상처는 날카롭고 쓰라렸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한다. 그러니 한 영혼을 길러내는 일은 다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때로, 아니 자주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가는 금이 견고한 돌담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처럼 반대로 긍정적인 변화도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유리창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간 전체에 온기를 채우고, 찬연한 햇살을 깊숙이 끌어올 수 있다.
화사한 색상의 옷을 꺼내 입는 것만으로 일순간 마음이 환해진다. 머리를 빗질하는 동안 마음도 가지런해진다. 립스틱을 바르니 이내 기분의 결이 달라졌다. 오늘 신은 좋은 구두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다.
매섭고 단단한 겨울을 녹이는 것도,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도 결국은 따스한 바람 한줄기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얼이와 단둘이 보내는 일상에는 무던한 옷들을 입는다. 편안한 바지에 튼튼한 운동화를 신고 얼이와 함께 달리고, 얼이 곁에 걸터앉는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외출할 때면 내가 좋아하는 하늘거리는 원피스나 스커트를 꺼낸다. 샌들이나 하이힐을 신고, 립스틱도 바르고, 휴대폰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가방도 든다. 우리가 함께 떠나는 여행을 갈 때는 편안한 옷보다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좋아하는 옷들을 골라서 캐리어에 넣는다. 평소에 자주 하지 못하는 귀걸이나 주얼리도 여행 갈 때는 모두 가지고 간다. 예전에는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나는 입고 잠을 자도 될 만큼 편안하고, 들판을 굴러도 거뜬할 만큼 튼튼하고, 더러워져도 표나지 않을 옷을 골라서 짐을 쌌다. 혼자 두 달이 넘게 유럽을 여행할 때는 운동화 한 켤레만 신었다. 세 달간 아프리카에서 입은 옷가지는 모두 합해서 열 벌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의 여행가방은 훨씬 더 다채로워졌다. '엄마' 옆에 '아내'와 '여자'도 잃어버리지 않고, 잊지 않고 챙겨 담는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 그는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 식사하면서 얼이에게 음식을 잘게 잘라 놓아주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얼이를 씻기는 것도, 외출 준비를 하면서 옷을 입히는 것도,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몸으로 놀아주는 것도 거의 대부분 남편이 한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찾아헤매거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가 흘린 음식을 닦지 않아도 된다. 얼이는 아빠의 강하고 빠르고 다정하고 사려 깊은 돌봄을 받는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면 그는 역시 온전한 나의 남편이 된다. 무거운 물건은 들지 못하게 하고, 어디든 데려다주고, 문을 잡아주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넌다. 나를 위해 편지를 적어 거울 위에 붙여두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들고 오고, 집에 들어오면 곧장 내게 와 나를 안아주고,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에게 아이가 있어도 그는 여전히 나의 연인이다.
언젠가 내가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건 자기 몫이 크다고 했다.
사람이 어렸을 때 얼굴은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내가 매일 짓는 표정들은 내 얼굴 위에 새겨져 주름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니, 세월 속에서 날마다 마주 보는 나의 배우자의 얼굴은 함께 나이 들며 내게도 흔적으로 남겨지겠지.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해 고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도 나로 인해 근사한 할아버지가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나란히 새하얀 머리를 하고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지금처럼 서로를 눈과 마음과 사진에 담을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