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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 Apr 05. 2021

알고 보니 무서운 질병이었던, 홍역

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 임시보호에서 입양까지(2)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홍역에 대해 무지했다. 이전 봉사자들에게 전달받은 '고비를 넘겼다'라는 것에만 안심하고 임시보호를 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오만했던 생각인가. 실제로 인계받은 강아지의 상태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무작정 일요일에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찾아갔었다. 무서운 전염병인 만큼 절대로 접촉할 수 없도록 지침을 전달받아 구석에서 기다리고, 보호자인 우리들도 병원에 있는 문고리조차 만질 수 없었다 - 물론 의자에도 앉을 수 없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절대로 홍역에 '고비'같은 것은 없고, 절대로 '완치라는 것이 없는 질병'임을 강조하셨다. 백신과 같은 치료약이 없고, 유일한 치료는 증상 완화를 돕는 것뿐으로 그저 밥과 약을 잘 먹고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키트 음성이 나와 완치 판정을 받더라도 언젠가 재발 가능성이 있어서 평생 관리해야 하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다.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만큼 나중을 위해 특이사항을 자세하게 메모했다. 오늘의 증상은 어떤지,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몸을 얼마나 자주 겪는지 등 입양 후 새로운 보호자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 작성했다. 나중에 후유증이 올 수 있으니 키트 음성(일단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틈틈이 적어두었다. 주요 증상이었던 열, 기침, 콧물, 눈곱 등이 한 달 넘게 계속되었다. 특히 콧물은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가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줄줄 흘렀고, 그 주변으로 초록색 코딱지들이 도도독 붙어 있었다. 무엇보다 기력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계속해서 밥을 거부하는 통에 기호성 높은 사료를 찾아 급여하고 북엇국, 단호박, 고구마 등으로 잘 먹이고 살찌우는데 집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식욕도 회복하고 기력도 조금씩 돌아왔지만, 아픈 증상이 있는 아가 강아지는 거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잠자는 와중에 간간히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적막한 집에 콜록콜록 소리만 들리니 강아지 키우는 집이라기보단 아픈 아기를 키우는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 조금 호전되나 싶더니 2주 만에 다시 기침이 심해졌다. 상태가 계속해서 나아지지 않으면 격리병동이 있는 동물병원에 옮겨 입원해야 했다. 서재에 울타리를 치고 돌봄 방을 만들어 24시간 가습기를 틀어주며 세심하게 보살폈다. 그럼에도 밤새 기침하는 강아지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 마음 아팠다. 솔직히 초반에는 우리 집에서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옴진드기에게 감사했다. 진드기 때문에 긁지 않았더라면, 홍역에 대해 계속 무지한 상태로 전달받은 약만 먹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기력이 회복하고 활동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홍역 후유증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병원으로부터 홍역 치료를 일찍 시작한 덕분에 틱장애 후유증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럼에도 잠결에 눈꺼풀이 떨리거나 발끝이 떨려도 틱장애 전조증상인가 싶어서 마음 졸였다. 그 해 여름 MBC 예능프로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성훈 씨의 강아지인 양희의 틱장애 후유증 때문에 더 불안했던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우리 아이도, 방송에 나오는 양희도 건강하다.


주요 증상 4가지 중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은 열과 콧물이었다. 완치 판정을 받은 19년 10월 25일에도 기침과 눈곱 증상은 조금 남아있었다. 기침을 꽤 오래 했는데 키트 음성 이후 감기도 한 번 앓는 바람에 두 달 넘게 기침을 했다. 또 한 동안은 옴 진드기 때문에 피부가 건조하고 모질도 푸석푸석했다.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4주 간 6번의 병원 방문이 있었다. 구충을 위한 애드보킷 이외에 홍역 증상 완화를 위한 가루약 및 안약, 엑스레이 검사, 여러 번에 걸친 홍역 키트 검사 등 많은 것들을 했다. 병원 첫 방문에 측정한 체중은 1.43킬로, 키트 음성판정을 받은 4주 후에는 2.1킬로로 600그램 정도 살을 찌웠다. 몸이 너무 작아 겨우 맞는 하네스를 찾고, 배냇 털을 빡빡 밀어 체온을 지켜주기 위해 스몰 사이즈의 옷을 잘라 입혀주었다. 


점점 통통해지는 게 보이시나요




어느덧 누런 눈곱도 사라지고 기침만 남은 상태로 1차 예방접종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보살펴주신 주치의 선생님은 강력하게 이전에 제대로 예방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홍역이 발병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이래서 접종은 필수라고. 동시에 키트가 음성이라는 말에 임시 보호자로서의 우리의 역할도 끝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모든 접종과 중성화, 잔존 유치 발치까지 앞으로 적어도 3개월. 하지만 이대로는 우리가 다 끝내기 전에 입양을 갈 확률이 높았다. 복잡한 병원력을 가진 강아지를 받아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접종 중간에 또 환경이 바뀌는 큰 일을 겪는다는 것, 증상 재발 여부, 적절한 돌봄 여부 등이 걱정되었다. 일단은 증상이 가라앉을 때까지 2주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크게 아팠던 아이를 보내면서 나와 짝꿍 K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임시보호 과정에서도 상처를 받았던 나는 솔직히 이제 임시보호도 끝내고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다. 유기견들이 다시 파양 혹은 유기 되는 것을 우려한 K는 좋은 가족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알 수가 없으니 우리가 키우자는 입장이었다. 병원력을 자세히 전달하면 약간의 건강 문제가 생겨도 괜히 아픈 애를 데려왔다며 파양 할까 봐 겁이 났다. 어떻게 이겨낸 홍역인데, 어떻게 살려낸 아이인데. 그저 '홍역을 앓았다가 이겨낸 아이입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끝내기엔 그동안 우리가 보낸 밤들은 너무 가슴 아팠다. 새벽마다 발을 잡고 무지개가 보여도 건너지 말라고 애원하며 간절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입양했다. 작은 발로 이 집 저 집 떠도는 운명을 거부하듯 처음 만났을 때 열심히 작은 발로 버티던 의지를 내 손으로 또 보낼 수가 없었다. 길게는 20년. 걱정보다는 즐겁게 지낼 다짐으로 함께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건강하게만 살라고 '홍삼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을 매우 압축해서 적어두긴 했지만, 정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다. 여러 계기와 이유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계기는 인스타그램으로 받았던 DM이었다. 임시보호하던 홍삼이 사진을 하나씩 올리며 기록을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입양문의가 왔다. 당시에는 키트가 양성이고 구조자와 심사도 진행해야했기에 해당사항을 전달했더니 "아, 애가 아파요?"라는 답변이 왔다. 모두 프로필에 적혀있었으니 조금만 확인했어도 알 수 있는 사항들이었지만, 그저 사진 몇 장과 어리다는 이유하나로 입양을 문의하고, 아프다니 포기하는 것이다. 그저 누군가에게 유기견은 샵보다 싸게 강아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일 뿐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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