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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 Apr 06. 2021

강아지의 주 양육자가 된다는 것

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

  글은 강아지 입양 5개월  시점에 작성한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


홍역만 나으면 다 잘 풀릴 거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홍삼이는 그 무서웠던 홍역 키트 음성 판정 이후에도 감기가 걸려 한동안 고생했다. 다행히 기력을 많이 회복해서 활발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 쯤이다. 비로소 천방지축 청소년기의 시작이었다. 흔히 문제 삼는 전선이나 가구를 물어뜯는 저지레가 없었지만, 말랑말랑한 재질을 굉장히 좋아해서 문 스토퍼와 요가 매트를 몰래 뜯어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변으로 조각을 배출하면서 큰 탈은 없었다. 주 타깃인 물건을 치우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고는 순식간이다. 침대 옆 협탁에 두었던 귀마개와 스프링 머리끈을 몰래 먹느라 급하게 먹었는지 하루 종일 토하고 설사를 하는 바람에 1주 간 약을 먹었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예방접종이 그만큼 미뤄졌다. 결국 5번의 예방접종, 중성화, 잔존 유치 발치까지 모두 완벽하게 끝난 것은 2월 말이었다. 이미 홍삼이의 나이는 9개월 정도로 추정. 다른 강아지들보다 3, 4개월 정도 늦게 기본 병원 케어가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정식으로 입양한 것이 11월 초였으니, 예상한 바 대로 3개월의 세심한 케어가 더 필요했던 셈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누적된 병원비를 바라보며 입양을 보냈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했을지도 몰랐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더불어 좋은 수의사 선생님들을 만난 행운에도 감사하면서.



드디어 활발한 강아지로 돌아온 홍삼이



사실 나는 자만했다. 친정에서 2006년부터 내 인생 첫 강아지를 15년째 키워본 경험만으로 '강아지는 이렇다'라는 오만에 빠져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와 홍삼이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하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일명 사바사와 마찬가지로 견바견. 강아지마다 성향, 성격, 자질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이상하게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6년에 처음 강아지를 키우던 무렵에도 같은 실수를 범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릴 때 읽었던 애견 도감만으로 강아지를 모두 안다고 착각했다가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던가. 정말로 육아는 실전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부모님이 강아지의 주 양육자였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 집 강아지의 예방접종일자나 심장 사상충 약 복용일, 잔존 유치 발치 여부 등을 챙겨본 적이 없었다. 가끔 놀아주고 산책시켜준 것이 다였다. 부끄럽게도 홍삼이 유치발치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더니 엄마로부터 친정개님의 유치발치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았다. 나는 왜 그랬던 기억이 없지? 이런 것들이 주양육자와 동거인의 차이가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홍삼이를 직접 돌보는 주양육자, 견주, 보호자이다. 


예방접종을 시작하면서 매일 조금씩 산책도 시작했다. 홍역이 완치되면서 부쩍 자라 몸집도 커지고 기운이 나는지 활동량이 많이 늘었다. 집안 산책을 시작으로 안겨서 산책, 짧은 10분, 20분간 산책 등 꾸준히 연습했다. 3주 정도가 되니 편하게 배변하며 산책을 즐기기 시작했다. 집에 처음 왔을 때 누워서 잠만 자는 강아지를 보며 언제 산책 나가 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지금은 3시간도 거뜬하다. 심지어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고집까지 생겼다.


아마도 산책 모임이 결성되면서 산책의 즐거움이 금방 커진 듯하다. 비록 강아지 친구들보다는 견주분들, 일명 '이모들'을 더 좋아하지만 그중에 단짝 친구들을 사귀며 자주 소통하고 있다. 강아지들 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조심스럽게 얼굴과 응꼬 냄새를 맡고 별 반응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사회성이 적은 친구들이 짖으면 겁을 먹기는 하지만 홍삼이는 크게 대응하지 않는다. 다행히 모임의 친구들은 사회성이 좋아 간식으로도 싸우지 않고, 같이 뛰어놀기를 좋아한다. 견주분들도 홍삼이도 예뻐해 주셔서 즐겁게 이어가고 있다.



더 이상 아팠던 강아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체형도 달라졌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몸에 비해서 컸지만, 원래 홍삼이의 체형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길고양이 중에 대빵은 머리가 큰 수컷 고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홍삼이도 수컷이니 머리가 큰 줄 알았다. 하지만, 초반에 아파서 잘 먹지 못해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것 같다. 몸이 회복되고 정말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으면서 몸통이 많이 자라 더 이상 면봉 같은 외형이 아닌 늠름한 강아지가 되었다.


그 외에 집에서는 우리가 외출했다가 집에 온다고 해도 현관 앞에 나와서 꼬리 몇 번 살랑살랑 흔드는 정도로만 표현하고 놀아달라고 보챌 때 빼고는 정말 얌전한 편이다. 아마도 산책이 길어서일까. 가끔 현관 밖 소리나 티비 소리에 짖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아직 사람 육아는 해보지 않았지만, 개육아도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주 양육자가 되면서 내가 강아지를 키우면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단순히 밥 주고 산책시켜주고 예방접종 챙기는 수준에만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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