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뒤에 사람 있어요
첫 강아지인 친정개님에게는 못해준 것이 참 많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정보가 많지 않았고, 심지어 동물병원에서도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열심히 따랐다.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들이 많지만 제일 아쉬운 것은 사회화 시기를 잘 몰라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지인의 개가 새끼를 낳아 데려온 것이라 2개월은 어미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냈지만, 산책의 중요성은 잘 몰라서 사회성이 부족한 강아지로 평생을 지내게 한 것이 아직도 미안하다.
그런 아쉬움이 있었기에 홍삼이의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는 동네 강아지들을 열심히 탐색했다. 하지만 내 친구도 아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강아지들에게 '너네 친구 해라'라고 떠밀 수는 없다. 서로에게 호의적인지, 성향이 맞는지, 더불어 상대 견주의 마인드가 나와 맞는지 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우선은 서로에게 호의적인 강아지를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실제로 마주치는 강아지들 중 상당수가 사회성이 부족했다. 혹은 어린 홍삼이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에는 나이가 많거나. 어쩌다 호의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강아지들이 소통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 견주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강아지들 뒤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의 어색함을 잘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강형욱 훈련사가 방송에서 "견주의 사회성이 곧 강아지의 사회성"이라고 한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러다 작년 봄, 우연히 만나게 된 비슷한 연령의 포메라니안 친구를 시작으로 또래 강아지 친구들 네 마리와 매일 같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산책 모임이 결성되었다. 다행히 견주분들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거나 사교성이 좋으신 분들이라 모임이 이어질 수 있었다. 꾸준히 만나 함께 걷고, 간식을 나눠먹고, 때때로 맘 놓고 달릴 수 있는 공간에 함께 갔다. 각 강아지의 성격이나 성향, 견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이가 좋다. 특히, 함께 싸우지 않고 간식을 잘 먹는 것이 모임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소심했던 홍삼이도 점점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또 에너지를 밖에서 많이 쏟으면서 집에서는 편히 쉬는 시간이 늘어났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예방접종 완료를 기념하며 처음으로 놀러 갔던 반려견 놀이터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산책 모임을 나가면서는 반려견 놀이터, 카페를 너무 좋아한다. 자신 있게 탐색하기도 하고 즐거우면 혼자서라도 뛰어논다. 물론 자신감의 상징인 뒷발차기에도 열심이다. 산책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친구들이 인사하러 다가오면 겁을 먹고 주저앉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오면 살며시 얼굴 냄새도 맡고 더 용기 있는 날에는 궁둥이 냄새도 맡는다. 본인과 성향이 맞지 않는 다고 생각하면 그냥 쌩하고 지나가버린다.
하지만, 친구는 사람에게도 강아지에게도 참 중요한 존재다. 나쁜 버릇도 잘 배워온다. 한 때는 올라타는 버릇을 배우기도 했고, 애견카페에서 배웠는지 집에서도 이따금씩 마킹을 한다. 또 한동안 간식을 요구하며 짖기도 했다. 매일 열심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문제성 행동을 예방하지 못했다. 보통 강아지의 성격이 형성되는 2살까지는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해 주면서 꼭 필요한 교육만 해주고 싶었지만, 단순히 강아지에게 '재롱'을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교육들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다 이렇게 시행착오도 겪으며 배워가는 것도 견주의 몫 아닐까.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와 행동변화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뚱하게 있던 아가 강아지가 행복하게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그런 순간들을 잊는다. 산책 모임이 결성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옆 동네로 이사도 오고, 여러 상황이 변하면서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만나도 친구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좋아하고, 잘 어울린다. 물론 예뻐해 주신 견주들(일명 이모들)도 마찬가지다. 강아지들도 다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