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첫 도착지

텍사스 라이프

by Lulina

우리 가족의 미국 첫 도착지는 텍사스였다. 임신 6개월 차에 접어들어갈 시점에 도착한 텍사스는 흡사 습식사우나 같았는데, 아직도 공항 문이 열리고 느껴지던 후덥지근함이 잊히질 않는다. 그와 반대로 실내라면 에어컨이 닭살이 돋을 정도로 틀려져 있어, 적응력 떨어지는 임산부는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감기에 시달렸다. 아직 지낼 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라 호텔에서 끙끙 며칠을 앓았다. 따뜻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현실은 짜디짠 피자 몇 조각이 전부였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이었다.




집을 구하고 두 달 뒤에는 4등급의 어마어마한 위력의 허리케인 ‘하비’가 상륙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의 태풍을 주기적으로 겪었고 몇 차례 물난리도 겪어봤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기름값이 오르더니 마트란 마트의 물건들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분위기에 휩쓸려 집 앞 마트에 갔더니, 그 넓은 공간에 캔 음식 몇 개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비는 4일 동안 구멍 뚫린 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인 가족은 타주로 피난을 갔다는 말이 들리고, 또 다른 가족들 집은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고 한다. 지내던 아파트 앞에는 깊은 천이 있었는데, 그 천도 물이 넘쳐 도로는 물바다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우리 집은 전기도 수도도 괜찮았다. 그래서 넘쳐흐른 물이 좀 빠지자 우리 집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온 가족들도 있었다. 끔찍하게 덥던 그 여름, 처음 도착한 이 도시는 설렘보다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한낮인데도, 비 구름으로 인해 깜깜하던 집안 풍경이다. 밖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지내던 지역은 병원지역 쪽이라 다행스럽게도 복구가 금방 되었지만, 다른 곳들은 복구가 더디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곧 역대 대통령들과 풋볼 선수의 모금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복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미국은 정말 스포츠의 나라인 것 같았다. 종종 스포츠 선수들의 사회 환원 활동들이 무척 인상적인데, 이때 펀드모금활동도 목표치를 한참 넘길 정도로 파워가 대단했다.



‘하비’ 사건 이후로 집을 구할 때는 침수지역이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집값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실제로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침수 지역인지 아닌지였다. 그곳은 허리케인이 아니더라도 집중호우가 종종 있었는데, 천둥 번개가 무섭게 휘몰아쳐 잠든 아이가 깜짝 놀라며 깨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상습침수지역은 항상 물이 차는데, 도로 곳곳에는 침수된 물높이를 표시하는 자(?)들이 세워져 있곤 했다. 인간의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실로 대단하지만, 자연에 비하면 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 텍사스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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