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의 번아웃은 왜, 그리고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으로 번아웃을 경험하는 시점이 일하는 시점에서 최소한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워라밸이 잘 지켜지고 친절한 나라 뉴질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나 조차도 월례행사처럼 어김없이 번아웃이 찾아온다.
내가 경험하는 번아웃 현상을 적어 보자면..
일단 일 하러 가기 전까지 감정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야 한다.
일 하러 가기 하루 전부터 출근 후부터의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가라앉는다.
“내일 또 일 하러 가야 하네…”
황금 같은 쉬는 날의 반은 내일을 걱정하는데 낭비하는 것 같다.
출근을 한 후에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가 너무 버겁고,
아무리 내 최선을 다해도 내 노력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마음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책임지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사소한 나의 부주의로 인해
투약 사고나 늦은 응급 대처 등등의 실수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는 것.
그리고 요즘 나의 번아웃의 제일 큰 이유는..
그렇게 하루 종일 내가 버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쥐어 짜내고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냈는데
그 누구도 고생했다, 잘했다는 인정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어떨 땐 오히려 왜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건지 질책을 받기도 하는 날엔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하루 종일 내가 한 일은 다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그런 이유로 가라앉아 있는 나의 마음에 방아쇠를 당기는 기사를 접했다.
뉴질랜드에 한 시골 어느 병원의 응급실에서
나이트 근무 때 간호사 한 명만 근무하고 있던 중,
한 아이의 심각한 상태를 제 때 알아채지 못하고
제 때 조치 하지 못하고
의사조차 골든타임을 놓친 채 수액과 약을 제때 처방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을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다 감당이 되지 않아 멈췄다.
병원을 또 의료진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겼을
아이의 탈진을 목격하면서 절실하게 의료진을 찾았지만
제 때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의
그 절망감...
내 안에서 싸늘해져 가는 아이를 안고 무너져 내렸을 부모의 마음을 상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또,
현업에 몸 담고 있는 간호사로써
자신의 실수에 괴로워하고 있을 간호사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내 심장을 바닥으로 툭 던져 버리고, 숨 쉬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신문 기사에서 보니 그날 밤, 충분한 인력 충원이 되지 않아 혼자서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고,
외국에서 뉴질랜드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병원에서 소아 응급 대처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되었다고 기사에 언급되어 있었다.
그녀의 과오만을 탓하기엔
충분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제대로 된 training을 주지 못 한 채
홀로 응급실에 투입시킨
뉴질랜드 병원 시스템 역시 문제가 있는 듯했다.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의료진들..
의사, 약사, 그리고 간호사들..
그들의 실수와 늦은 대처는 환자들의 안위와 직결 돼 있다.
그만큼 그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일할 수밖에 없으며
내가 돌보는 환자들이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근하여
녹초가 된 몸과 마음으로 퇴근하는 일의 반복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의 모든 의료진들에게,
그들이 어느 나라에 있든,
그들은 모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수고가 있음으로 오늘 하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평화롭게 잘 지나갔다고…
만약 내게 기사에서와 같은 일이 닥친다면,
만약 내가 일 하던 중, 나의 실수로 환자에게 해가 끼친다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간호사란 직업과 병원이란 곳이 버거웠다.
병원 안에서나 밖에서나 버거운 나는 지금 번아웃을 지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기엔
나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매일 아침 눈을 감고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명상을 한다.
감사한 것들을 헤아리며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은 생각보다 좋은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자괴감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날도 있고,
환자와 가족들의 감사의 인사에,
같이 일하는 동료의 따뜻한 격려, 웃음소리에,
집에 돌아와 와락 안기는 두 아이의 온기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이렇게나 많았었지.
라고 상기한다.
여전히
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줄이고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조기 은퇴를 꿈꾸는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