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마오리 할머니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
오늘 우리 병동에 곱디고운 마오리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마오리 민족은 뉴질랜드의 원주민이다.
앞니가 빠지셔서 움푹 들어간 입매로 연신 미소를 짓고 계시던 그분의 성함은 Mrs. H.
그 곁에는 럭비 선수처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아들이 함께였다.
엄마를 닮아 선한 눈망울과 웃는 입매가 인상적인 아들이었다.
입원 수속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혈압을 재려고 병실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낯선 공간을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오래 앓아온 치매 때문에 지금이 어디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잘 모르시는 듯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아들의 익숙한 얼굴만으로도 큰 의지가 되었을 것이다.
“할머님, 성함과 생년월일 말씀해 주시겠어요?”
내가 묻자, 할머니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아들이 옆에서 다시 천천히 물었다.
“엄마, 이름이 뭐죠? 언제 태어나셨죠?”
아들은 엄마가 스스로 기억해 주길 바라며 천천히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흐른 친절한 침묵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에 아들은 이내 대신 답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 괜찮다는 듯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치, 엄마? 이름은 Mrs. H, 생일은 몇 월 며칠이잖아요?”
아들은 엄마와 눈을 맞추었고, 할머니는 텅 빈 눈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순간 아들은 엄마가 느낄 민망함을 덜어주려는 듯 담요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내리며
“피카부!” 하고 장난을 쳤다.
마치 속상한 아이를 달래는 아빠처럼 다정한 목소리와 제스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환한 미소와 함께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Mum, you will be alright.”
아들은 연신 할머니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궁금했다.
그토록 다정한 아들을 길러낸 할머니는 어떤 엄마였을까?
잠깐의 관찰이었지만, 두 사람의 따뜻한 기운에 내 마음까지 환해졌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며느리가 와서 밤새 할머니 곁을 지켰다.
노트북을 켜고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화장실 가는 일부터 샤워까지 직접 돌보았다.
할머니를 ‘Mum’이라고 부르는 모습 때문에 동료들 모두 처음엔 친딸인 줄 알았다.
할머니는 4일 넘게 변을 보지 못해 섬망 증상이 심해지고 불안정해 보였다.
좌약을 투약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자꾸 일어나려 하셨다.
내가 며느리와 함께 부축해 드리려 했지만 할머니는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팔을 허우적거리셨다.
아마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셨던 것 같다.
그때 며느리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좀 봐요. 내 허리를 잡고 천천히 일어나서 나랑 이만큼 걸어요. 우리 같이 춤추는 거예요.”
그 말에 조금 진정된 할머니는 며느리의 리듬에 맞춰
우리의 부축을 받으며 무사히 의자에 앉으셨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완벽한 호흡이었다.
내가 본 춤 선율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일반 내과인 우리 병동 환자의 80% 이상은 65세가 넘는 어르신들이다.
잠시 관찰만 해도 나의 노년을 미리 상상해 보게 된다.
Mrs. H처럼 다정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 내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외롭게 창밖만 바라보는 분도 계시고,
의료진에게 불평불만만 늘어놓아 기피 대상이 되는 분도 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적어도 내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지금부터 쌓지 않는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오늘 내가 보인 작은 다정함이 쌓이고 또 쌓이면,
언젠가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복리처럼 돌아와 눈덩이처럼 커질 거라 믿어본다.
오늘도 나의 꿈 하나가 추가된다.
나는 이다음에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고, 또 사랑받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