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작은 병원에서 지켜본 죽음, 가족, 그리고 이별
60대 후반의 남자 환자, Mr. K가 응급실에서 우리 병동으로 입원하셨다.
앙상하게 마른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
Mr. K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파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의 병명은 말기 폐암 그리고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
평생 페인터 일을 업으로 삼으셨지만, 그로 인해 암을 얻으셨다.
항암 치료 중 폐렴이 발생했고, 면역이 바닥인 상태였던 그의 건강은
갑자기 극도로 나빠졌다.
그날 밤, 많은 고비를 넘겼지만, 이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한 의료팀은
힘든 치료를 멈추고 pallative care (완화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병과 사투를 벌였던 그날 하루가 많이 고되었다는 듯,
그는 병상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환자의 옆엔 그만큼 지쳐 보이는 그의 아내가 있었다.
큰 키에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팔짱을 낀 그녀는
실내에서도 계속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수척해진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방 안에서 악취가 진동한다며
코를 막은 채, 숨쉬기 힘들다며 환기를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불과 몇 시간 전,
그 방에서는 다른 환자가 운명을 달리했고
가족들과 이별한 뒤 영안실로 옮겨졌었다.
이후 방은 깨끗이 청소되었지만
그녀는 아마도 예민한 감각을 가진 듯했다.
그래서 아직 남겨진 죽음의 냄새를 알아챈 듯했다.
병원 안에는 환기를 위한 창문이 없었기에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고,
한 번 더 바닥을 닦아드린 뒤
중앙 환기구에서 자동 환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곧 나아질 거라 설명했다.
이전 방에서 환자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왠지 모르게 거짓말을 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병실의 불을 모두 끄고서야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녀 역시 피로가 많이 누적된 듯,
작은 의자에 앉아 남편이 누운 침대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입원한 당일부터 그녀는 여러 명의 의료진을 만났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쌓였다.
예민한 촉은 불안을 더욱 키워갔을 것이다.
그녀는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방금 왜 pallative 간호사가 와서 호스피스 이야기를 하고,
계속 진통제와 증상 완화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왜 폐렴 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죠?”
그녀는 아직 Mr. K의 상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그녀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의사는 오랜 시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 치의 부풀림도, 거짓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환자 상태.
있을 수 없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환자와 가족에게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앗아가는 일이었기에,
의사는 담담하되 배려 있는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녀는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병상으로 돌아와 다시 작은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는 남편의 손을 잡고 갑자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 이제 곧 죽는대… 당신 이제 곧 죽는대…”
“아무것도 못 하고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진통제만 맞다가 그렇게 가버린대… 흑흑.”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야?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다 그렇게 가는 거?”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간신히 몇 마디를 이어가던 Mr. K는 말했다.
마치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아니…”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선글라스에 이어 마스크까지 쓰고
두 손엔 위생 장갑까지 낀 채 남편을 찾아왔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당신 옆으로 갈 수 없어.
어떤 끔찍한 아내가 내 감기를 아픈 남편에게 옮기고 싶겠어?
그래도 난 계속 당신 옆을 지킬 거야.”
1m 거리를 두고
남편은 침대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오랫동안 잠을 자는 듯했고
그녀는 좁은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그날 그녀는 몇 분 단위로 손을 씻고 남편의 테이블을 닦아냈다.
그것이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인 듯했다.
이틀 뒤, 환자는 의식을 잃으셨고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불과 며칠 전,
힘겨운 숨 사이로 주사를 놔드린 나에게
“하나도 안 아팠어요. 고마워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그 미소가 잔상처럼 남았다.
그녀는
처음 남편의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보다,
남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날보다는
덜 울고 있었다.
하지만 슬픔의 크기가 작아졌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마.. 그렇게 될 순 없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그 깊이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며칠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좋은 곳에서
이제는 고통 없이 지내시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