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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소년 Jan 15. 2023

코 푸는 법을 27세에 배운 썰

생각지 못한 배움에 허를 찔릴 때 (w. ChatGPT)

코 푸는 법이 란 게 따로 있나?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방심하며 보낸 그의 26년 세월을 비웃는 듯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그 전까지 그에게 ‘코 풀기(nose-blowing)’란 언제나 코 속, 비강 안에 있는 짧은 공기 한 줌을 코 밖으로 밀어내는 정도의 소극적인 행위로 밖에 미치지 못했던 것.


때문에 그는 코 푸는 영역에 있어선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서럽게 울 때, 코를 ‘팽~’, 하고 시원하게 푸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그에게 어쩌다 마주친 남자 어르신들이 한쪽 손으로 코를 부여잡고 ‘흥~’, 하며 비강의 응어리를 총알 같은 속도로 내뱉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들의 콧물은 비산하지 않고, 목표물을 겨냥하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내다 꽂히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작은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콧물이란 게 흘러야 할 때 모르긴 몰라도 평균치 정도의 콧물이 생성되었을 터. 하지만 코를 풀고 싶을 때 양껏 풀기 위한 시도를 할라 치면, 여지없이 두 귀가 순간 멍 해지며 기압차에 의해 막혀버리는 증상을 겪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 장애로 인해 앞으로도 코를 시원하게 풀 수 없겠구나.’ 그의 이런 생각은 그를 옭아 맨 채, 코 푸는 일에 대해 자신만의 노하우란 게 있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를 만들어버렸다. ‘이 작은 일에 무슨 노하우씩이나…’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모든 습관과 그로 인한 행위라는 게 의식적이든 아니든 자신만의 편리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코푸는 데 필요한 진화 그 숭고한 표본에서 탈락한 인자’로 기록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생에 코를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것 정도의 장애는 쉽게 적응되고 또 잊혀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딱 그 정도의 일인 것이다. 그렇게 그는 26년의 적응과 또 다른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다 그 부적응 항상성 메커니즘에 쌘 현타가 오게된 일이 있었으니, 때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그에겐 코감기가 심하게 걸려 바로 그 코풀기가 마려웠던 27세의 어느 날이었다. 모든 깨달음의 순간이란 게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방심 속에 찾아오듯 그날의 몇 마디 대화도 그랬다.

그는 작은 스터디 모임을 통해 멤버들과 이런 저런 주제의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그가 발언하면서 유독 코를 풀지 못해 훌쩍이듯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얘기하던 바로 그때, 한 멤버가 그에게 얘기했다.


“코를 좀 풀고 하셔도 되는데…” / “저는 어차피 코를 잘 못 풀어요.”

“왜요?” / “저는 이상하게 코를 시원하게 풀려고 하면 두 귀가 막혀버려서 잘 안 되더라고요.”

“그야 당연하죠, 그러니까 한쪽씩 코를 막아 푸는 거잖아요.” / “사람들이 한쪽씩 풀고 있는 거라고요? 정말?... 어, 진짜네? 한쪽씩 하니까 귀가 안 막히긴 하네요?!”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듯 모두 웃어 넘겼던 그때 그의 마음 속은 지난 26년간 그가 체득했다고 생각한 모든 영역들의 질서가 소용돌이 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두 손을 가져다 대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작은 범위의 컨트롤을 통해 한쪽씩 코를 막고 번갈아 푸는 스킬을 시현하고 있었던 거였다.

당시 스무살이 훨씬 넘어 거의 모든 범위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것. 그에겐 저마다 코를 풀지만 아무도 코 푸는 법인 란 걸 가르쳐줄 생각을 않고, 또 ‘그게 가르칠 일인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던져진 우리 삶에 이런 것도 배움이라면 배움인 지라 신선한 경험으로 각인되었다.


그런 그가 40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코를 시원하게 풀지는 못한다. 26년간 코를 시원하게 풀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단정이 그에겐 코를 시원하게 풀 지 않아도 괜찮은 메커니즘으로 진화하도록 그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류의 얘기치 못 한 배움이란 게 그의 7살 아이를 통해서도 여전히 삶의 잔잔한 묘미로 전해지고 있다.

“아빠, 쉬야가 마려울 땐 다리를 꼬아. 그럼 괜찮아져.” / “어? 정말 그렇네!” 이런 식이다.

또 이런 건 최근 AI 트렌드로서 회자되고 있는 첨단의 GPT Chat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영역이라 구비전승 할 만 한 카테고리로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사진설명: ChatGPT에게 코 푸는 방법을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데 여러 배움을 통해 살아가고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어떤 일에 대해선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내 안의 작은 장애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던져졌을 때 내 안에, 또 내 행동과 미래에 어떤 변화가 생겨날 것인가. 새삼 코푸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던 27세 그의 소용돌이 치던 그 때가 생각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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