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우주론을 알아야 하는 이유

책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한계

by astrodiary
CMB_Timeline300_no_WMAP.png 빅뱅 우주론에 따른 우주팽창의 역사 https://en.wikipedia.org/wiki/Big_Bang

역사(歷史)는 인류사회의 변천과정에 대한 기술이다. 나중에 역사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학창 시절에 한국사와 세계사 정도는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무작위적으로 생겨나는 사건들이 아니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일이 일어난 맥락이 있기 마련이고 가깝거나 혹은 먼 역사를 뒤져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조금 더 먼 과거로 돌아가 수 만년에 걸친 인간과 그 사회의 진화를 다룬 인류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훨씬 더 긴 시간의 안목을 가지고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교양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지구의 역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주의 역사를 아는 일은, 그저 단순히 시간이 남아도는 과학자들의 호기심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우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138 억년에 달하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겪었던 과정을 설명하는 현대 우주론은 약 100년 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그 당시 뉴턴 역학으로 설명이 어렵던 수성 궤도의 근일점 이동을 성공적으로 설명하였고, 태양 주변을 지나는 빛이 태양의 중력으로 휘어진 시공간을 지나면서 겪는 중력렌즈 현상을 예견하고 이것이 몇 년 후 실제로 관측되면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하지만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며,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관측할 수 있는 물리적 현상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유도된 블랙홀이나 중력파와 같은 물리적 현상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검증이 불가능한 그저 시나리오에 불과했고 실제로 확인하는데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등장한 우주론도 마찬가지로 검증하기 어려운 그저 시나리오에 불과한 상태였다.


현대 천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천문학자 제임스 건 (James Gunn,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이란 제목으로 번역 되어 나온 천문학자들의 삶을 다룬 책의 주인공이다)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우주론은 얼핏 보기에 과학 같아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과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동일 조건으로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재현가능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만 하는 다른 과학분야와는 달리, 우리에겐 단 하나뿐인 이 우주를 대상으로 그런 반복적인 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천문학도 그렇게 따지면 내가 관측하는 대상을 실험실에서 반복해서 재현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천문학 지식이 정말 자연의 진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천문학에서 관측하는 천체들은 우리 우주 안에 '무한히' 많이 존재하며 (그 수가 너무 크니 실제적으로 무한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따라서 실험실에서의 재현은 불가능하지만, 같은 종류의 수많은 천체들을 관측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은 관측 자료를 가지로 분석을 해서 얻은 결론은 실험을 하진 않았지만 신빙성이 있는 과학적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임스 건의 말대로, 반복 재현이 불가능한 '하나뿐인'이 우주를 대상으로 한 어떠한 설명이나 이론을 신빙성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그 호기심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발표 후 아인슈타인 본인을 포함한 몇몇의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보는 상태"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 그 간의 많은 과학적 논쟁과 새로운 관측사실들에 기반한 가설의 수정을 거쳐 다듬어지고 발전해 온 '빅뱅 우주론'은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천문학적 관측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우주론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려면 인류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양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를 품고 있는 이 우주를 이해하려면, 우주가 생겨나고 변화해 온 과정을 설명하는 우주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의 관측결과들이 현재의 빅뱅 우주론이 가정하고 있는 몇몇 중요한 가정들에 도전을 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가까운 미래에 더 나은 우주 모형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 이를 따라잡으려면 현재의 빅뱅 우주론을 이해하고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래서, 그 '어느 정도'라는 것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책에서 필자는 '수학과 물리'라는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충분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과 일반인들이 빅뱅 우주론의 피상적인 이해에서 좀 더 나아가 심도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주론과 관련한 천문학 기사들을 접했을 때 조금은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빅뱅 우주론의 발달 과정과 몇 가지 핵심적인 관련 주제를 골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현대 우주론이 과학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분야에 공헌을 한 공로로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임스 피블스는 그의 최근 책 "우주론의 세기 (cosmology's century)"에서 "과학 연구의 기술(技術)중 하나는 공허한 추측과 생산적인 추측사이의 경계를 탐험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빅뱅 우주론 따라잡기'라는 제목을 달고 연재를 시작한 이 책을 읽는 분들이, 100년 전 '공허한 추측'이었던 우주론이, '생산적인 추측' 과정들을 거쳐 어떻게 오늘날 빅뱅 우주론이라 불리는 과학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분량의 책에서 빅뱅 우주론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책의 머리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을 끝내기 전에,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범위와 방법적인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하겠다. 우선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우주론의 대상은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이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우주도 있을 수 있고, 비록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관측범위 밖의 우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블스가 말한 대로 공허한 추측과 생산적인 추측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기 위해서, 또 필자의 지식의 지평이 그리 넓지 않은 관계로, 우주론의 관한 얘기는 "관측이 가능한 우리 우주"에 한정하기로 한다. 그다음으로는 수식의 사용이다. 현대 우주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산물이므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모르고서는 우주론을 깊이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빅뱅 우주론을 따라 잡기 위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려고 진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로만 설명하게 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이해의 깊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필자는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필요할 경우,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과 물리 지식을 이용하여 설명을 하려고 한다.


자, 이제 서론은 이쯤 하고, 빅뱅 우주론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아인슈타인의 생각했던 우주와 그가 만들어낸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유도된 프리드만 방정식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