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하게: 일반 상대성 이론의 탄생과 아인슈타인의 우주원리
필자가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잠시 살았던 네덜란드의 라이덴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곳이다. 화가 램브란트가 태어난 곳이고, 유럽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 위해 계획을 짰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에게 라이덴은, 아인슈타인이 1920년 무렵부터 10년간 방문교수로 머물며 라이덴 대학의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 헨드릭 로렌츠 (특수 상대성 이론의 기초가 된 시공간의 로렌츠 변환을 만들어낸 바로 그 로렌츠)와 교류하며 지냈던 사연이 많은 곳이다. 그 라이덴에 있는 보어하헤브 박물관의 외벽에는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의 장 방정식이 적혀있다 (위의 그림).
뉴턴이래, 한 사람이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이론 물리학 업적이라 불리는 상대성 이론은 위에 보이는 것처럼 꽤 단순한 형태의 방정식을 최종 결과물로 내놓았다. 아인슈타인이 8년 동안 고민한 끝에 얻어낸 이 방정식은, 좌변에 있는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을 나타내는 양들 (R과 g, 그리고 Λ는 그 유명한 우주 상수이다)과 우변에 있는 물질의 에너지-운동량 텐서 (T, 나머지는 중력상수와 빛의 속도이다), 언뜻 보기에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성질을 연결시키고 있다. 실험적 결과나 알려진 관측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인슈타인의 머릿속 사고 실험을 통해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확신으로 탄생한 이 방정식이 현대 우주론의 시작이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으로 되어있다. 보통 우리는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공간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시간이 더 빠르게 가거나 느리게 가거나 하지 않는다) 물리량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특수 상대성 이론 (중력의 영향이 없는 경우에 성립한다)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개념을 허물고, 관찰자의 상태 (운동속도)에 따라 공간이 줄어들고 시간도 그에 반응하여 느리게 간다는, (운동하는 관찰자에게도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게도 빛의 속도는 같아야 한다는 전제를 만족시키기 위한 조건이다) 더 이상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새로 세웠다. 이를 중력이 있는 일반적인 경우로 확장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여기에 더해서, 시공간의 기하학 (공간의 기하학에서 더 나아가 시간까지 포함한 4차원 시공간의 기하학),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시공간의 곡률은 그 안에 있는 물질의 에너지와 운동량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확립하였다. 그러면 시공간의 기하학이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미분을 배운 사람들은 곡선인 함수 (2차 함수나 3,4,5... 차 함수)를 미분한 도함수를 다시 미분한 이계도 함수가 곡선의 곡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공간의 기하학적인 곡률을 알려면 4차원 시공간의 함수를 미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성 이론의 장 방정식 좌변의 항들이 바로 미분연산으로 얻어진 결과물이다. 시간도 시공간의 변수이므로 이 미분 연산에는 당연히 시간에 대한 미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시간에 대한 미분이면 속도 (일차 미분)나 가속도 (이차 미분) 뭐 그런 거 아닌가? 맞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을 잘 다루면 우주의 크기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과정을 기술할 수 있다. 러시아의 젊은 물리학자 알렉산더 프리드만은 1922-1924년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으로부터 우주의 역학 (크기의 시간에 따른 변화)을 기술하는 프리드만 방정식을 발표한다. 프리드만 방정식에 관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프리드만 방정식의 전제가 되는, "우주원리 (cosmological principles)"라고 불리는 중요한 우주적 가정을 언급하고 가기로 한다.
우선 거의 모든 물리학 문제가 그렇듯이 단순한 상황을 가정하고 시작한다. 아인슈타인도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고 난 후 그것이 우주의 구조에 대한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그리고 미적(美的)인 관점에서도 "우주는 단순한 상태"일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단순한 상태라는 말은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한한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은 어디에서나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균일한 우주), 우주 공간의 어느 방향을 보아도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등방한 우주)"는 뜻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시간에 대한 방향성까지 무시하면 과거나 현재나 그 상태가 같은 우주인, 정적 우주 (static universe)가 되지만 (나중에 얘기할, 빅뱅 우주론의 맞수였던 정상 우주론이 가정한 정상 우주 steady-state universe 와는 다르다), 무한한 공간에 균일하게 분포하는 물질은 조금만 미세한 섭동이 있어도 중력적으로 그 섭동이 자라기 때문에 정적 우주를 만들 수가 없다. 물질이 없는 우주라면 모를까.... (하지만 물질이 없는 우주는 넌센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물질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기에). 따라서 우주는 적어도 시간에 따라서는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실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빛의 속도가 유한한 관계로 관측가능 한 우주는 유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측범위 밖의 우주를 포함하는 전체의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는 논할 수 없는 주제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바탕에 되는 미분 기하학은 시공간의 국소적인 성질인, 특정위치에서의 곡률에 대해서만 말을 해 줄 수 있을 뿐, 시공간 거시적인 구조 (전체적인 모양, space-time topology)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책의 시작에서 말한 대로, 전체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관측가능하고, 균일등방한 우주"에 국한해서 얘기를 하기로 하겠다. 다행히 현재까지 관측된 바로는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결정하는 큰 규모의 공간 스케일에서 보면 균일, 등방 하니, 아인슈타인의 우주원리는 지금까지는 꽤 괜찮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원리에 대한 얘기로 밑밥을 깔았으니, 이제 프리드만 방정식에 대한 얘기를 할 차례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자세한 과정을 생략하고 뉴턴역학을 이용하며 프리드만 방정식을 도출한 후 그 방정식이 가지는 물리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