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츠 에셔의 공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필자가 좋아하는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는 20세기 네덜란드의 판화가이다. 필자가 에셔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더글라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 책에 나온 에셔의 판화들은 참으로 신기하였다. 에셔가 그의 작품들에서 시도한 것들은 수학적 원리에 기반한, 반복과 순환 그리고 재귀, 공간의 변형, 무한한 공간과 같은, 수학자, 과학자, 공학자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주제들이다.
위의 왼쪽 그림은 에셔의 작품들 중 '원의 극한'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천사와 악마가 공간을 나누어 빈틈없이 채우며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틈이나 포개짐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완전하게 덮는 것을 '테셀레이션'이라고 한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천사와 악마가 나타난다. 사실 이 그림의 이면에는 공간 변형에 관한 수학 원리가 숨어있다. 필자가 수학자가 아닌 관계로 올바른 설명을 할 수는 없고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쌍곡선 모양으로 표현되는 '무한대'의 공간이 수학적 변형을 통해 '유한한' 크기의 원반 안에 다 들어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쌍곡면 공간에서 무한히 먼 거리는 수학적 변형을 거치고 나서 얻어진 유한한 원판의 가장자리와 맞닿아 있다). 즉, '무한을 품고 있는 유한한 공간'인 셈이다.
위의 오른쪽 그림은 우리의 우주를 나타내고 있다. 중심에 있는 태양으로부터 시작해서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거리는 로그 스케일을 따라 표현되어 있다) 우리 은하를 벗어나, 빅뱅의 흔적을 거쳐, 원판의 가장자리는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우주의 시작에 닿아 있다. 에셔의 '원의 극한' 판화와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는 유한한 공간일까 무한한 공간일까?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는 유한하다 (유한한 빛의 속도로 유한한 우주의 나이만큼을 달려도 여전히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범위는 유한할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이다). 그렇지만, 관측할 수 있는 저 너머의 우주까지 포함한 이 우주는 유한할까 아니면 무한할까? 공간적으로 닫힌 우주라면 유한할 것이고, 열린 우주라면 무한할 것이다. 만약 평탄한 우주라면 무한할 수도 유한할 수도 있다. 현재 우주론은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확실하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지만, 관측결과를 종합하면 우주는 평탄한 우주에 아주아주 (완벽히 평탄하다고 말하기에는 측정값의 정확도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가깝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우주론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한다 (호기심 때문이라는 말 외엔 달리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우주는 유한할까 아니면 무한할까?'와 같은, 어떻게 보면 막연한 호기심을, 과학적 질문으로 바꾸고 이에 대답을 하려면, 배워야 하는 수학, 과학 지식을 습득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천문학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에셔는 수학과 과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끝 모를 호기심과 열정으로 공간과 시각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얻고 이를 예술로 표현할 수 있었고 오히려 역으로 수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천문학도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과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는 계속 글을 써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