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에 익숙해지는 법

자기 객관화의 과정

by astrodiary
proposal_writing_chatgpt.png 관측제안서를 쓰는 천문학자 (created by ChatGPT)

직업 천문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필자의 인생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거절의 연속이었다. 구직공고가 나면 지원서를 제출했고, 망원경 관측시간을 얻기 위해서 관측제안서를 제출했다. 돌아오는 결과는 거의 대부분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제출하신 제안서는 잘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로 시작되는 거절 이메일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계속 망원경 관측제안서를 제출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연구가 있는 한 관측제안서 제출은 계속될 것이다.


그 당시 때로는 피곤에 찌들어 커피를 마시고 억지로 정신을 차려가며 열심히 지원서와 제안서를 썼던 이유는 물론 직업 천문학자로 살아남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거절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거절의 경험은 즐겁지 않다. 그럼에도 거절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태생적으로 누구나 주관적이다. 자신의 견해와 자신이 내린 결정이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낫다고 믿는다. 당연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본인의 견해와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원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혹은 어느 조직이나 기관에 나를 보여주고 "내가 능력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 나에게 기회를 달라"라고 지원을 하거나 제안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자기중심적이라서 '이렇게 훌륭한 제안을 하는데, 내가 이렇게 훌륭한 자질이 있는데, 당연히 채택이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버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여러 번 거절을 당하기 시작하면 그제야 '아, 뭐가 문제일까' 하며 자신의 지원서와 제안서를 다시 보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객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때 받는 마음의 상처는 말로 하기 힘들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거절당하는 경험이 없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힘들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거절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다음번에는 어떤 점을 보완하여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생각대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거절을 당하면서 점차 내가 사회 구조의 사다리 속에서 어느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기고 지금의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물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대중과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는 그 사람들도 '소싯적'에는 거절을 당하는 경험을 최소한 한 두번은 했었으리라 생각한다.


거절에 익숙해 지라는 말은 '이번에도 역시나 안되었군, 다음번에 또 해봐야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야...' 라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빠지라는 뜻이 아니라, 거절을 받아들일때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거절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계속되면 패배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면 우리는 점차 거절에 익숙해지고 기분이 상하는 일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 대신, 이번에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 아이디어를 다음번에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쌓여간다. 역설적이게도 거절에 익숙해지다 보면 거절당하는 빈도수가 점차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거절을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거절당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익숙해지는 법을 빨리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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