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영역은 넘보지 말 일이다
이른 봄부터 지극정성 씨 뿌려 가꿔 논 텃밭의 채소들이 하룻밤 새 초토화가 되었다
고라니 짓이다
어느 볕 좋은 날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정원에 심긴 꽃들이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다육이는 잎들이 죄다 짓이겨져 있었다
까치 짓이다
비가 추적대며 내리던 밤이 지나고
아침에 나와 보니 온실 안 소파는 흙 범벅이 되어 있고 쿠션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비를 피해 찾아든 길고양이 짓이다
얼기설기 전깃줄이 엮인 처마 밑
전기를 집 안으로 들이느라 뚫어놓을 구멍으로
말벌 떼가 천장 속에다 집을 짓고 있다
사방이 오픈된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으니 꼬여드는 것들도 많다
테라스 옆 측백나무속에서는 오목눈이가
새끼를 쳐서 무사히 날아갔다
새가 경계를 풀고 사람 가까이 날아드는 것은
언제나 귀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내 삶에 위해를 가하거나 농장물에 피해를 주는 존재들은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소중한 내 영역을 함부로 넘보고 침범하려는 존재들은 항상 도처에 깔려있다.
잠시 한눈을 팔면 그들은 소리 없이 스며들어
내 평화를 무너뜨리려 한다
이곳은 공적으로 허락된
나의 안식처이며 우리들만의 영역이다
나는 오늘도 내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밭 가에다 그물망을 치고, 온실 문에 철망을 세우며
손에는 짱돌을 들고서 순찰을 돈다.
에프킬러를 들고 집 주변을 살피며
적의 침입흔적을 살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곤충이나
남의 영역, 남의 안식처는 함부로 넘보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