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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Feb 21. 2022

2022년 6-7번째 주

부제의 부재

밖에 아예 안 나간 날이 밖에 나간 날보다 많은 2주였다. 장 볼 일이 없고 약간의 운동마저도 집에서 해결하고 나면 굳이 나갈 일이 없다. 정확하게는 나가지 않고도 하루가 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린 뒤 자연스레 일을 시작하고 바쁘게 오전을 보내고 밥을 먹고 나면 또 분주한 오후가 끝나 있다. 피곤한 나머지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하루는 끝나 있었다. 바쁘게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되어 있는 한국에서의 바쁜 하루와는 결이 달랐지만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하루라는 점에선 제법 비슷했다. 날씨도 제멋대로였는데, 눈이 오고 비가 오다가 강풍 때문에 잠을 잘 못 잔 날들이 있었고 그러다 다시 해가 너무 따뜻하게 비추던 14도의 낮도 있었다. 오랜만에 해가 집에 들어오니 가능한 모든 표면들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먼지들을 보는 게 괴로웠다. 맘 잡고 청소한 날 하루, 분리수거 싹 다 한 날 하루, 빨래한 날 하루도 있었다.


이렇게 고립된 두 주 동안 갇혀있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던 건 넷플릭스 덕분이다. 물론 반작용도 있었는데, 이번 2주를 지나면서 이렇게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이 구독 서비스는 중단하기로 했다.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독일 넷플릭스에서 현재 1위인 <애나 만들기>를 봤다. 진짜 이야기를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드라마를 시작했다가 스케일에 놀라서 설마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런저런 팩트를 찾아보면서 봤다. 어쩜 이렇게 컨템퍼러리 아트 같은 사건이 있을까. 하나의 행위예술 같아 보일 정도로 지금 세상의 가장 기괴한 모습을 차곡차곡 담아 완벽한 프레임으로 엮은 그런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게 만들려고 만든 드라마를 보고 봤으니 이상한 관전평이긴 하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니 결론만 말하자면, 이 드라마의 가장 슬프면서도 적확한 부분은 이야기의 배경은 상류층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폭로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그리고선 그 보이지 않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살짝 열린 문 틈으로 들어온 약간의 빛만 전달한, 그들과는 달리 방패나 갑옷 없이 전쟁터에 나온 사람들이 서로 지지고 볶는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호텔 VIP를 가까이서 만나는 호텔 관리인, 명상과 어퍼메이션을 운동 코치와 함께 제공하는 개인 트레이너, 욕망을 욕망하게 하는 패션 시장의 가장 전통적인 아울렛 잡지사 에디터, 그리고 사실을 찾아 세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셀럽이 나오는 이야기. 이 드라마의 마지막에 실명과 얼굴이 함께 나온 사람들은 어쩌면 이름을 숨길 여유와 어쩌면 필요가 없어 불나방 같은 관심에 이야기를 팔아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면 부조리의 끝 아닌가.    


계급 이야기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역사적 근본에 대해서라면 환장하는 미국인들이 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과 계급 이야기에 유난히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 영국인이 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이건 이 이야기를 다룬 영국의 라디오 드라마와 그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저런 나이브한 어린애한테 놀아날 정도로 미국은 근본이 없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럴 일이 없이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불평등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지"로 밖에 안 읽히는 건 내가 꼬인 건가.


그녀가 신나게 이용한  모르는 독일의 관점은 아직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8화를  사람이라면  말이 필요 없이 지스트는 얻어갈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8화가 재밌었는데, 우선  회색 하늘에 고집스럽게 촌스럽고 낡은 분위기가 굉장히 독일적이었고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터키계 독일인인 저널리즘 학생을 통역가로 쓰면서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독일의 "다양성" 요약본이 너무 딱이었기 때문이다. 아참, 그리고 재밌었던 게 그렇게 애나가 렌트하고 싶었던 그 공간을 챙긴 게 스웨덴의 Fotografiska였던 거. 뭔가 이 혼란 속 진정한 승자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의 시점이 여기서 무엇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카피 제품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 유튜버 사건을 통해 유추해보는 것도 그리 멀리 간 건 아닐 것 같다. 갑자기 추앙하며 사랑을 주다가 삐끗(을 한번 한 게 아니니 이렇게 표현하긴 부적절하지만서도)한 바로 그 순간부터 물어뜯는 데 화력을 보태는, 기자보다 팩트 체크에 최선을 다하는 얼굴 없는 사람들의 합이 어쩌면 한국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예로는 기생충이 있지 않은가. 이건 시네필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같으니 나는 여기서 발을 빼는 걸로.


물론 저럴 능력과 배짱도 없지만 욕망도 없는 평범한 나는, '돈이 저렇게 들어올 때 뉴욕 변두리에 스튜디오라도 하나 사두지 그랬어'나, '독일 비즈니스 매니저를 직접 목소리 변조해서 담당할 정도로 도와줄 사람도 없었던 건 작업 스케일 대비 너무 대담하지 않나'하는 오지랖 정도밖엔 할 말이 없는 걸 보니 아직 제대로 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애나에겐 덤벼들어 볼 놀이터였겠지만 나에겐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멀리 돌아서 피해가야 할 불구덩이처럼 보여서다.


이 기자의 시선이 참 좋았는데, 예를 들면 Google never forgets나 출산하면서 외쳤던 I am not special은 굉장했다. 실제로도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취재를 시작했고 그걸 다 감당해낸 것 보면 보통 분은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출산이나 마더후드를 다룬 작품이 아니면서도 임신한 직업인이 드라마의 60% 이상을 주인공으로 리드하는 드라마는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기자 주변에 있던 scriberia 팀들도 이 드라마에서 참 맘에 들었던 캐릭터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어디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의 시베리아 존에 가서 직업인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을지라도 저런 재야의 고수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잠깐 가져봤다.


읽을 게 많아서 즐거웠던, 내가 사는 시대의 이야기지만 내가 살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 그러나 나를 둘러싼 공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는 the lost daughter 도 재밌게 봐서 그 이야기도 써보려고 했는데, inventing Anna를 쓰고 나니 기가 빨려서 나중에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시리즈를 다 읽은 후 같이 묶어서 써보려고 한다. 어머, 나 이제 백로그도 막 있고. 깊이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얕고도 얕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아쉽고 허무하다. 지루함과 뭐 별거 없음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스크린과 소음과 함께 흘려보낸 날들도 다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경험으로 안다. 사계절을 계속 깨어서 살아간다고 해도 겨울잠을 안 자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매해 하게 된다. 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많이 더울 거라는 이번 여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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