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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Feb 12. 2022

2022년 4-5번째 주

돌아오는 길

한 시간 한 시간은 더디게 가는데 도대체 왜 일주일은 이렇게 훅 가는 걸까. 돌아온 지도 벌써 2주째다. 이번 돌아오는 길은 좀 더 길었다. 마음한테도 그랬고 몸한테도 그랬다. 긴 잠을 잔 날들이 많았고 돌아오자마자 열어본 이메일들에서 '뭔 말이지' 싶어 다시 옛날 기록들을 찾아봤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래도 짐은 오자마자 풀었고 그중 작은 파우치에 들었던 새콤달콤을 보고 한참 웃었던 적도 있다.


아참, 이 새콤달콤 에피소드는 나한테 참 소중하다. 언니랑 형부랑 스파이더맨을 보러 갔고 마스크를 써야 하니 커피도 팝콘도 먹기 안 좋은 상황이었다. 마침 주머니를 뒤지니 새콤달콤이 딱 있어 언니랑 열심히 까먹었었다. 내 주머니에 새콤달콤이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날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데 뭔가 상큼하게 입가심을 하고 싶었고, 괜히 외국에서 들여온 민트 같은 것보다는 한국에서만 있는 새콤달콤을 사는 게 좋겠다 싶어 집어 들었는데 한국 편의점이 그렇지 않나, 1+1, 2+1 천지인 거. 합리적이고 계산이 빠른 나는 그렇게 하나를 더 사 왔고, 그렇게 내 주머니에서 한참 있었던 새콤달콤은 영화관에서 마스크 안 입에 쏙 집어넣어 오물 쪼물거리며 영화를 보기에 아주 좋은 주전부리가 되어 주었다. 언니는 항상 나한테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는데, 나랑 취향이 그리 맞지 않는 언니는 뭘 사줄 때마다 굳이 마음을 더 쓰는 바람에 내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돈 쓰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그런 선물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걸 다시 가져가려면 힘든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여러모로 조심하는 상황. 마지막 내가 떠나는 날에 그런 언니가 슈퍼에 들려서 사온 게 바로 새콤달콤과 마이쭈. 거의 슈퍼를 털어왔는지 맛 별로 골고루 섞여 있는 그 간식이 우리 언니를 참 닮아있었다. 손이 크고 관찰력도 뛰어나며 마음은 큰데 내 짐가방은 항공사가 정해준 사이즈고. 암튼 언니의 솔루션이었던 그 새콤달콤과 마이쭈는 책상 옆 서랍에 잘 담겨 있어서 불편한 회의를 하고 난 다음 잘근잘근 화를 씹어내는 용도로 아주 잘 쓰이고 있다. 이렇게 내 안에는 새콤달콤 같은 기억들이 많다. 받은 사랑이 많아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는 것 같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비행기였고 그래서 여느 때보다   안에서  수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영화를 봤다. 심란한 마음에 블랙위도우, 샹치, 최근 007 연이어 보다가,  로치의 영화 <Sorry, we missed you> 봤다. 블랙위도우를 보고선 '마케팅  못하는 히어로도 분명 있지, ', '러시아는 정말 흥미로운 나라야,   알아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했고, 샹치를 보고선 '역시 아시아 부모님들이 애들 잠재력을 진짜 발바닥부터 강제로 쥐어짜서 끌어올리는 데는 짱이지', '결국 나쁜 영향력도 없앨 수는 없고 그대로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007 보면서 '그렇게 의심 많으면 그냥 혼자 살지', '미스터로봇은  때마다 반갑네'라고 생각했다. (가볍기가 먼지만도 못한 영화평, 죄송… 비싼 영화들인데 내가 가벼운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음) 시간이  갔고 마음도 뭔가 아시아 대륙을 떠나왔을 즈음, 아예 가상의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허나 너무나도 있을 법한 이야기인  로치의 영화를 봤다. 이번엔 물류회사에서 사람들을 '자영업자' 고용해서 쪽쪽 빨아먹는 이야기다. <노마드랜드>에서 보여준 아마존 물류센터의 모습도 그랬지만, 편리함이 누군가의 착취로 이어지는 투명한 자본주의는 제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불편함에 타의로 노출되며 살아야 하는 독일 생활의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상의 편리함은 사실 불필요하다. 몸에게도 좋지 않고 지구에게도 좋지 않다. 자본가에게나 좋은 거다. 아무튼 사회가 무책임하게 내버려  곳에 무방비하게 방치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꾸준히 듣고 보고 싶다. 그러기엔 아마존 기프트 카드와 도대체 오프라인 어디에서 사야 할지 모르는 제품들(예를 들면, 단추, 캐시미어 브러시) 잔뜩 담겨있는  장바구니 때문에 부끄럽지만...    


돌아와서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네가 다시 돌아와서 참 다행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뭔가 따뜻했다면, 나는 아직도 서양식 겉치레 인사에 충분히 적응이 안 된 거겠지. 기다렸다는 듯 가득 찬 일거리들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고, 시차로 헤맬 겨를도 없이 매일 8시간 이상의 근무를 해냈다. 적어도 3주는 일을 안 해야 생기는 '새로운 시각'은 언제고 좋다.


11월부터 괜히 날씨 탓하며 느슨하게 살았었는데 이제 다시 루틴도 만들고 성실함을 심어봐야지. 오미크론이 진짜 주변을 에워싼 수준이라 바깥 활동에 확실히 제약이 있지만, 부스터까지 맞았으니 너무 움츠러들지는 말아야지 싶다. 난 그렇게 계획에 성실한 편은 아니라고 말하던 친구가 여름 뮤직 페스티벌에 가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 7월이면 금방이지. 놀러 갈 계획, 돈 쓸 계획, 몸 쓸 계획, 머리 쓸 계획 정도는 좀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 돈 들어오는 계획은 따로 안 해도 되는 월급쟁이라 이 부분이 참 좋다.


이제야 새해 같다. 어차피 영속적인 시간을 칼로 뚝 잘라서 새해로 만들어버리는 게 이상했으니, 내가 느끼는 새해가 더욱 중요하다. 해가 바뀌고 생일이 지나고 나이도 먹고 여차저차 음력설도 지나고, 2월은 참 중간에 낀 둘째 같다. 1월만큼 2월에게도 관심을 주어야지. 내가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다. 아니, 내가 그냥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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