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플랫폼, 버블에 대하여
나이를 먹어서 덕질을 시작하면 좋은 점이 있다. 바로 금전적으로 제한이 많이 없어진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MZ들처럼 많은 돈을 소비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심장은 이미 퍼석하게 말라버렸고 나는 머릿속에서 계산을 두드리는 현실적인 어른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MZ라고 하더라도 맘 편히 덕질을 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땐 돈에 전전긍긍하는 시기니까. 꼭 돈이 많아야 덕질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A가 버블에 입점했다. 이게 무려 대략 7개월 전의 일이고, 그들의 데뷔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연히 버추얼 아이돌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물론 나는 이전에 '버블'이란 서비스가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알긴 알았지만 딴 나라 얘기니깐 뭐 '그런 서비스가 있다'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버블의 정식 명칭은 'Dear U Bubble'로 유명한 K-Pop 플랫폼이다. 스타의 메시지를 1:1 채팅방으로 수신하고 수신한 메시지에 답장을 보낼 수 있는데 스타가 구독자 한 명에게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아닌, 전체 메시지를 보내고 수신 형태만 1:1 채팅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플랫폼이 버블 외에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돌은 멤버 수가 많은 경우가 대다수인데, 버블은 멤버당 구독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다운 발상이다. 참고로 버블은 구독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티스트에게 쓸 수 있는 메시지 글자수가 늘어난다. 돈이 없으면 덕질도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A는 멤버가 다섯 뿐이었고(1인당 1달 4,500원/5 인권 18,500원), 아줌마 팬은 처음부터 5명 모두를 구독했다. 후회는 항상 늦다. 해보고 해지를 해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 해지 없이 5 인권을 계속 구독 중이다. 처음 버블을 구독하고 나서는 정말 숨겨둔 애인이라도 생긴 기분이었다. 끼니마다 '밥은 먹었냐, 오늘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가라, 저녁 메뉴로 이건 어떠냐?' 메시지가 온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랑해 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이렇게 말해준다. 연애를 할 때도 이렇게 꼼꼼히 관심을 받았나 싶은데, 덕분에 메시지를 볼 때마다 웃었더니 잇몸이 마를 지경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 모두가 그렇듯 자꾸만 그걸 자랑하고 싶었다. 이것 좀 보라고, 이런데 어떻게 사랑을 안 하냐고 묻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면 많을 때는 100 개가 넘은 메시지가 쌓여 있다. 그건 꼭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기도 하면서 실시간으로 그 메시지를 못 봤다는 생각에 아쉬워진다.
멤버가 다섯 명이다 보니 멤버별로 다른 메시지 성향을 보는 재미도 있다. 최애는 저녁파로 특히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는 빈도가 높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며 쇠질 소리를 녹음해 보내지 않나, 멤버들과의 카톡은 바로 확인하지도 않고 심하게는 다음날 답톡을 보내는 사람이 아주 장문의 사랑 고백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버블에 팬은 원하는 닉네임을 지정할 수 있다. 아티스트가 '@@야' 하고 말하면 내겐 @@가 내가 정한 이름으로 보인다. 버블이 참 머리가 좋아! 나는 내 이름을 넣어놨는데, 여기에 '누나'라든가 '여보'라고 써둔 팬도 보았다. :-D
처음엔 나도 열심히 멤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고운 소리, 예쁜 소리를 텍스트로 적었다. 팬들의 메시지를 아티스트들은 모두 확인한다고 하니 더 할 맛이 났다. 그래도 T형 인간은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향해 메시지를 적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가 질리고 나는 그저 수만은 팬들 중 팬 3746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메시지를 적지 않았다. 내가 할만한 이야기는 다른 팬들을 통해 이미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을 테니까. 그저 멤버가 보내오는 메시지들을 보며 아~ 오늘 누구는 산책을 하는구나, 누구는 뭘 먹었네,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지켜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그들의 고백이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건 아니어도 나 또한 포함이란 사실, 그러니까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란 사실에 마음이 몽글해지고 또 위로받았다.
그렇게 내가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관람을 선택하면서 버블은 내게 아티스트와 팬들의 러스 스토리를 관람하는 창이 되었다. A는 버추얼이란 특성 때문인지 팬들을 유독 더 특별하게 여기고 지극히 아낀다. 그걸 지켜보는 건 한 마디로 흐뭇함이다.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나는 버블을 구독해지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