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찔레꽃을 발견했다. 곧 다가오는 5월은 공식적으로 장미의 계절이고, 이미 한 송이씩 붉은 장미를 봐놓고도 찔레꽃은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 자신에 더 놀랐다. 장미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단아한 모양새지만, 향기만큼은 장미가 찔레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한다. 이상하게 요즘 장미들은 향도 진하지 않더라.
아무튼 찔레 향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비빌 수 있는 향은 금목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향이 너무 좋아서 그게 어떤 물성을 가진 것도 아닌데 갖고 싶었다. 한 송이 꺾어서 가지면 안 될까?
친구가 있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많지만, 나보다 키가 작고 화려한 색의 옷을 좋아하는 언니보단 친구에 가까운.(그러나 그녀는 나를 나이 차이 많은 동생 취급한다) 그녀를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확실히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과거 결도 맞지 않은 사람을 꾸역꾸역 만나느라 얼마나 마음이 마모되었던가. 그런데 거기에 더해 둘이 갖고 있는 상식의 수준이 비슷해야 관계가 오래가는 것 같다.
그녀는 경남 김해에서 나는 충남 논산에서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그때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어서, 아니 그 답답한 시골을 벗어날 방법이 그뿐이라서 모범생으로 살았다. 일탈이랄 게 없는 심심하고 지루한 삶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업인데 늦으면 안 되지, 독서회에 오려면 책은 읽고 와야지’ 같은 부분에서 크게 공감한다.(근데 이거 무리한 요구인가?)
겹치는 수업이 한 달에 3번이나 있다. 일부러 맞춘 게 아닌데도 결이 비슷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수업이 있는 목요일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끝나고 함께 밥을 먹는다. 어디 밥뿐이랴?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수다는 덤. 사실 그 수업들엔 언니보다 오래 사귄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이 편하더라?
그날은 수업 시작 즈음 언니가 속삭였다.
“오늘은 같이 밥 못 먹는다. 약속 있어.”
어… 그렇구나… 며칠 전 블로그에서 그녀가 다른 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게시물을 봤다. 그런데 또? 내가 없는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다지는 시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독점하고 싶었다. 찔레꽃을 꺾고 싶어 움찔하던 손처럼.
과거 공동육아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다섯 살에 시작한 모임은 초등학생이 되고 서로 바빠지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때 모임의 주축이었던 이들이 한 아파트에 살았다. 그들은 모임 때가 아니어도 서로 바쁘면 아이를 봐주고 남편까지 동반한 가족 모임도 자주 가졌다. 나중엔 아이들만 데리고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다.
부러웠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였다. 타인이지만, 가족과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 더욱 가까운. 그 언니를 독점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을 가졌을 때 이 모임이 떠올랐다. 그 무리 중 한 언니와 돈가스를 먹으며 그런 부러움을 전할 때였다. 어떤 감정은 입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정체가 분명해진다. 모든 걸 함께 하는 관계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지금껏 세상에 둘도 없이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 관계가, 어딘가 절름발이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이 언니와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바라는 것처럼 그녀 역시 나를 독점하고 싶다면 뭘 하기에 앞서 그 사람을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하고, 모든 걸 함께 하며 혼자 할 땐 죄책감을 느끼겠지. 한 번씩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충전이 되는 내향형 인간인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무서운데?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향한 꼼지락 거리는 손을 걷어들일 수 있었다. 이게 맞다- 하면서.
타인과 뭘 함께하고 싶을 때 그 언니를 먼저 떠올리는 건 여전하다. 특히나 수다를 곁들인 티타임이나 야밤의 맥주 한잔이 생각날 때. 내가 이 사람에게 연락해도 되나? 나와줄까? 바쁜데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닐까? 지레 겁먹고 포기하던 나인데 이 언니에게는 이게 된다.(동네가 가까운 것도 큰 몫을 한다) 100 정도는 아니고 한 80 정도?ㅎㅎ 술도 약하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맥주를 사랑하는 그녀 덕분에 술도 늘었다. 언니는 내 유일한 술친구다. 그것도 늘은 거냐며 비웃기도 하는 술친구.
물론 이 언니 말고도 주기적으로 또 산발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을 보고 역시 열심히 산다면 엄지를 추켜세우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생님도, 나를 무슨 연예인 만나는 것처럼 대해주는 연하 친구까지. 그들 모두 만나면 즐겁고 또 감사하지만 그래도 이 언니처럼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그래서 참 다행이다 싶다. 2명, 3명 바라면 그건 욕심이겠지.
어, 근데 어느새 언니를 만난 지 10일이 넘었네? 혈중 친구 농도가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