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나는 너를 상처입히기로 했다

by 은섬

뛰는 이 가슴이 뛰고난 후의 가쁜 호흡 때문인지 아니면 빈 속을 적신 카페인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를 보자마자 느낀 어떤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한기쁨은 이젠 신도시로 이름 붙이기 민망하게 훌쩍 커버린 도시, 미평에 근무하는 흔한 직장인이다. 보통 그녀는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을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없는 힘을 짜내 비루한 몸을 뛰게 했다. 이 조깅마저 없다면 하루의 많은 시간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다리가 퇴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 탓이다.

아침 기상시간을 알리는 스마트폰의 알림과 동시에 집안의 조명들이 모두 빛을 밝혔다. IoT로 연결된 조명들도 기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시리야~ 오늘 날씨 가르쳐줘.”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해 다소 낮은 목소리로 기쁨이 시리를 불렀다. 잠깐의 시차를 두고 낯익은 목소리가 날씨를 알려주었다.

“현재 날씨는 맑음 상태이며 기온은 25도입니다. 오늘 최고 기온은 28도, 자외선 주의보가 예보되어 있으니 썬크림과 썬글라스를 준비해주세요.”


뛰기 좋은 날씨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뭔가 핑계를 갖다 붙이기 시작하면 루틴대로 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기쁨은 샤워 후 레깅스와 품이 넉넉한 티셔츠를 갖춰 입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직선코스로 5km, 달리면 대략 40분이 걸렸다. 미평의 대표 하천인 진천을 따라 뛰는 코스는 더 없이 훌륭했다. 이른 시간 한적한 천변을 달리는 고적함과 약동하는 신체의 조화는 절묘함 자체였다.


기쁨의 몸은 조깅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땀을 가득 쏟고 나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온 몸의 피를 새 것으로 바꾼 것 같은 개운함이 좋았다. 이전에 비해 업무 개시 후 두뇌 회전이 빠른 걸 보면 뇌의 혈액순환까지 잘 되는 모양이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샤워 후 살짝 노곤하긴 한데, 그 정도야 아침을 여는 카페인으로 해결될 터. 어차피 직장인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닌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검은색일테니까. 기쁨은 오늘도 여유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가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Sieze the day


낮이면 직장인들로 붐비는 고층 빌딩들 사이에 늘어나는 것은 커피숍뿐이었다. 건물의 코너마다 자리한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숍을 보고 있노라면 저 커피들을 따라 직장인들의 피도 흐르겠구나 싶달까? 카페 seize the day는 회사가 위치한 빌딩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는 아니지만 커피맛이 좋아 인근 직장인들의 자주 찾는 핫플(Hot Place)이 되었다.


“기쁨님~ 오늘도 달리셨나봐요.”

자주 와 낯이 익숙한 이든이 먼저 알은척을 해주었다. 어느새 이 카페를 이용한지 반 년이 다 되어가서 그런지 이든은 언제나처럼 별도의 주문 없이도 기쁨의 메뉴를 전해주곤 했다. 투샷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런데 오늘의 이든은 계산 후 스탭룸에서 나오는 다른 바리스타에게 주문을 인계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쁨님, 죄송한데 나머지는 이 친구가 해줄 거에요. 다음에 봬요.”

새로 온 바리스타인지 얼굴이 낯설었다. 허리에 앞치마를 질끈 두르는 그에게 귀엣말을 한 이든이 스탭룸으로 사라졌다.


기쁨에게 살짝 목례를 한 새 바리스타가 등을 보이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출근 전쟁이 시작되기 전인지라 카페는 제법 한적했고 주문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금방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카운터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얼굴에 흐르는 땀이 간지러워 티슈를 집어 들었다. 그즈음 눈이 자연스레 뒤돌아선 바리스타의 등으로 향했다. 운동을 한 건지 타고난 골격이 좋은 건지 반듯한 어깨와 넓은 등이 보기 좋았다.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넋을 잃고 바리스타의 뒤태를 구경하던 기쁨이 깜짝 놀라 부리나케 카운터로 쫓아갔다. 살짝 컬이 들어간 앞 머리 아래 드러난 얼굴이 앳되 보였다. 얼른 눈을 내려 명찰을 보니 그의 바리스타 닉네임은 바론이다. 바론바론바론. 기쁨은 잊지 않으려고 그 이름은 입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커피를 들고 seize the day에서 나온 기쁨이 빨대를 쪽 빨자 아아가 짜르르 몸안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정신이 명료해졌다. 아직 몸안에 고여있는 호흡과 만난 카페인이 주는 고양감도 고개를 들었다. 기쁨은 가끔 이 맛에 운동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아아를 더 오래 마실 수 있도록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막 출근해 바쁘게 움직이는 바론을 다시 본 순간, 그녀의 심장 어딘가에 무언가가 부딪혀오는 둔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기쁨은 한참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 있었다.


텅빈 사무실에 들어선 기쁨은 사물함에서 하루분의 옷이 담긴 패키지 가방을 꺼내 들었다. 개인 용품도 꺼내 진천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를 맡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천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빌딩의 행렬이 자못 근사했다. 기쁨의 회사는 자율 좌석제를 운영했는데, 오는 순서대로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녀가 샤워실 문을 팔랑 열었다. 현 직장에서 매우 만족하는 사내 서비스 중 하나였다. 만약 샤워실이 없었다면 땀을 쏟는 조깅은 상상도 못하리라. 샤워 후엔 역시 회사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이용할 계획이다. 샤워실은 아직 이용한 사람이 없는지 바짝 말라 기분 좋은 쾌적함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거울 속 기쁨의 얼굴은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휴지 조각들로 엉망이었다. 카페에서 땀을 닦은 휴지가 이렇게까지 집요히 붙어 있을 줄이야!!!


#일요조찬클럽!


3년차라고 하지만, 실제 근무기간은 1년 반 정도가 된 기쁨은 입사 동기들과 작은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초반엔 다소 혼란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사람들이 정리되어 현재는 기쁨을 포함 여자 동기 5명이 남았다. 사회 생활하면서 맘 맞는 친구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고들 하지만 모두는 오래지 않아 입사 동기라는 공감대 말고도 서로 취향이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다.


모임은 일요일 오전 10시. 물론 강제도 아니었고 시간도 10시에서 11시 사이로 느슨하게 잡혀 있었다. 오는 대로 브런치를 주문해 먹으면서 서로의 일주일을 공유했다. 누구는 책을 더 읽다 가기도 했고, 누군 와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일어서기도 했다. 참석 인원도 제각각이었지만,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이 모임이 이어져 온 시간이 짧지 않기에 기쁨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모임엔 드물게 5명의 인원이 모두 모였다.

“은혜아, 너네 팀 과장이 한 주간 벌인 진상 좀 들어볼까? 우리 모두 함께 씹고 듣고 맛보자꾸나.”

총무팀의 김과장은 오전열시클럽의 단골 메뉴였다. 다른 팀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그의 진상은 마치 자극적인 아침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어서 욕하면서 듣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김과장 뒷담화의 소란이 사그라질 때쯤 기쁨이 슬쩍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너무 부끄러워 손끝도 발끝도 오그라들었지만, 기쁨은 혼자 간직한 그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었다. 수줍은 그녀의 고백에 친구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기쁨에게로 집중됐다.

“에에에에?”

미혼 여성들답게 대화에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지만, 기쁨만은 이런 쪽으로 무심해 동기들은 그녀를 무성욕자로 놀리곤 했었다. 그런 기쁨이었기에 그녀의 고백이 대단히 이례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한기쁨, 네가? 남자는 맞긴 하고? 혹시 2D나 3D 속 주인공 그런 건 아니겠지?”

무리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수현이 제일 먼저 기쁨이 좋아하는 상대에 관심을 보였다.

“어... 아직은 그냥 나 혼자 좋아하는 건데, 니들도 알 수 있는 사람이야.”

그 말에 친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리는 것이 기쁨 주위의 남자들을 떠올리는 게 분명했다.

“기쁨씨, 누구? 잠깐만 기다려봐요. 혹시 영업팀 강대리? 아니면 같은 팀 박사원일까요?”

존댓말이 더 편하다며 오래 알아도 말을 놓지 않는 은혜가 추리를 펼쳐 나갔다. 엉뚱한 사람들이 친구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은 기쁨은 재빨리 짝사랑의 상대를 공개했다.

“바론이야.”


다시 친구들 눈동자가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잠깐만, 외국인이야?”

완전 의외라는 듯 소연이 벌어진 입으로 슬그머니 손을 올렸다. 그런데 설마 하는 눈빛으로 수현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혹시 seize the day 신입 바리스타 그 바론이야?”

“엥? 바리스타?”


소란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소문에 어두운 소연을 제외한 은혜와 수현, 연수는 이미 바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빠른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어... 기쁨~ 이런 말 조심스러운데, 그 바론이 이미 좀 유명해졌던데, 괜찮겠어?. 바론 때문에 카페 매출이 올랐단 얘기까지 있더라고.”

연수가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수현이나 은혜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런 상대를 짝사랑해서 어떻게 하겠냐는, 달리 말해 가능성 없는 짝사랑이라는 뉘앙스가 은근히 비춰졌다. 기쁨은 한숨을 천천히 나눠 쉰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

기쁨은 아직 자신의 이 마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처음 든 이런 감정이 기껍기도 했고, 혹시 조깅이나 카페인으로 인한 가슴뜀을 가슴설레임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가 스스로가 궁금해 그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역시 바론은 인기가 많았다. 역시 사람 눈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여직원들 사이에선 바론이 과거 아이돌 연습생이란 말이 돌았다. 누군가 정말 그랬냐고 바론에게 물어봤다는데, 그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단다.

그가 있는 seize the day는 과연 그 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무엇보다 그곳에 들어서는 기쁨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카페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꽉 쪼여들어 조금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카운터 뒤의 바론이 자신을 쳐다본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부가 따끔따끔해졌다.


그 순간 기쁨은 자신이 바론의 시선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다정한 상대를 원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기쁨은 이대로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온 것이 무색하게 또다른 것을 바라게 되었다.

‘당신이 날 봐주길 원해.’

스스로도 낯선 욕망이었다. 깨달음과 함께 뒷골을 당기던 뻐근함이 척추를 따라 흐르고 천천히 몸에서 빠져 나갔다.


자연스럽게 일요조찬클럽에서 기쁨의 화두는 바론이 되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는지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에도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지 기쁨은 눈 앞에서 보는듯 섬세하게 그려냈다. 사실 그가 내린 아메리카노의 맛이 특출난 줄은 모르겠지만 그가 내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범한 아메리카노의 맛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모임에서 즐겁게 이야기할 소재가 생겨서 그런지 만남이 더 즐거웠다.


기쁨은 자신이 바론에게 느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다. 지금까지 동기들은 그 누구보다 편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soul mate 같은 표현은 너무 거창했고 따지고 보면 동기들이 모든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친구들도 아니었다. 적당한 거리감, 적당한 공통의 관심사 그런 것들이 관계를 제법 돈독하게 해주었다. 일요조찬클럽의 암묵적 룰도 과거 이야기는 자제할 것! 현재의 관심사,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할 것! 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번 주에도 바론을 봤는데, 초록색 맨투맨티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몰라.”

마치 꿈을 꾸는 듯 다소 멍한 눈길로 기쁨이 이야기하자 눈빛을 빛내며 소연이 질문을 건넸다.

“언제까지 외사랑만 할껀데?”

그 소리에 기쁨이 마치 중요한 걸 까먹었다 떠올리는 것처럼 놀라 행동을 멈추고 소연을 돌아보았다.

“그렇지? 아무래도 다음엔 바론에게 말을 걸어볼까 해..”


그 소리에 동기들 모두 웃음의 담이 허물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이 쏟아 내렸다. 지금까지 짝사랑에 더 없이 행복해하는 것들이 기쁨다운 행동이어서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 조금 기대가 되어서 그들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잠시후 나머지 친구들은 금방 하던 일로 돌아갔고 프로젝트 업무로 바쁜 연수가 가끔 잊지 않고 있다는 듯 고개를 들어 기쁨을 쳐다보기도 했다.

“기쁨아 연락처라도 줘봐. 혹시 모르잖아?”

연수의 조언에 기쁨이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음 번 카페 방문에서 기쁨은 바론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보라색 마카롱을 하나 건네 받았다. 비록 손님과 바리스타가 나눌 수 있는 기본적인 대화긴 했지만, 진일보한 관계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기쁨이었다. 아무래도 바론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은근슬쩍 마카롱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리가 있나?


그동안 어떻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았나 싶게 속절없이 빠져드는 감정이었다. 그렇다! 이것은 기쁨에게 첫사랑이었다. 사춘기 시절에 겪었어야 할 감정의 파도가 20대의 기쁨에게 불어닥친 것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기쁨의 첫사랑엔 그린 라이트가 켜진 듯 했다.


기대감이 무너지고 실망으로 부서지는 7일을 주기로 하는 collapse와 resurrection.

그것은 요즘 기쁨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기도 했다. 이 감정의 굴곡은 바론으로 인한 것이면서 동시에 일요오찬크럽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 날 수현의 기분이 좋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나 기쁨은 그때 모임에 등장한 수현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기억해보려 애썼다.

“한기쁨! 정신차려! 바론은 네가 누군지도 모를걸? 그 카페에 하루에 드나드는 여성 직장인들만 해도 몇인데 널 기억하겠어?”


일요조찬클럽에 자주 나오지는 못해도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수현의 일갈이었다. 항상 솔직하고 제 욕구를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그녀였기에 갑작스런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가장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기도 했다. 또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학창시절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에 대한 감정은 애달프도록 절절했지만, 항상 그 마음의 끝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그 멤버가 때론 가족보다 더 소중하다 해도 그는 기쁨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모를테니까. 자신은 그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지만, 화려한 무대를 떠난 그는 누구보다 외로움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의 공허함이 이어질 날은 절대 오지 않겠지.


그 뒤로도 수현의 그 말은 불쑥불쑥 수면 위로 올라와 기쁨으로 하여금 땅굴을 파게 했다. 그럴 때면 바론과 이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 마음은 일주일 안에 아물었고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누군 혼자 머리 속이 꽃밭이라고 지적할지 몰랐지만, 황폐한 사막보단 생명력이 넘치는 꽃밭이 더 낫지 않은가? 기쁨은 7일의 몰락과 회복을 기꺼이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모임은 지지부진해졌다. 갈수록 동기들의 참석이 들쑥날쑥 해졌는데, 어떤 날은 참석하겠다고 얘기했던 동기가 그날 아침 불참을 알리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기쁨이 모임에 더 큰 애정을 부여한 후에 벌어진 일들이라 전처럼 무신경하기가 어려웠다.


본래부터 일요조찬클럽는 강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번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로 참석을 미루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어떤 날은 브런치 카페에 기쁨 혼자 덩그라니 앉아 있기도 했다. 일주일 내내 기다린 날이었고, 모임 전날은 얕은 흥분 때문에 하루가 어찌 지나는 줄 몰랐지만 이런 마음을 함께 할 자리는 점차 좁아졌다.


‘또 나 혼자 진심이지.’

다만 동기들의 바쁨이 겹쳤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적어도 그 날 만큼은 번아웃 비슷한 증상을 앓곤 했다. 다들 담백하고 깔끔한데 저 혼자 질척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커피를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의 얼음이 녹으며 잘그닥 소리를 냈고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일요조찬클럽은 또 아무 일 없는 듯 순조롭게 흘러갔다. 덩달아 기쁨의 실망감도 옅어졌다. 사람과의 만남이 다 내 뜻 같을 순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무도 그 날을 겸심하지 않았는데 그 날은 오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면 그 전 수많은 전조가 있었으리라. 다만 눈치채지 못했거나 알고 있음에도 눈을 감아왔을뿐. 오늘도 동기들은 덤덤하게 기쁨의 말을 들었고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물꼬를 튼 건 의외의 인물, 소연이였다. 그동안 나름 기쁨의 말을 잘 들어준 상대였기에 그 반전이 놀라워 기쁨은 한 마디 말도 못한채 소연의 말에 귀을 기울였다. 잠시후 고개는 아예 책상 아래로 완전히 떨어졌다.

“기쁨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네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누군가를 만나 열심히 연애해도 모자랄 시기에 짝사랑이란 것도 말이 안되고 바론이 너랑 어떻게 될 가능성 제로야. 아니 제로는 아니더라도 그런 영화 같은 일에 우리 눈앞에 펼쳐질 꺼란 생각이 안들어.”


조근조근 이어지는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말인 것 같은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기쁨은 동시에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애먼 커피 잔만 노려 보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시간 낭비가 안타까웠을 수 있다.


“아니... 당장 내가 바론이랑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것도 안돼? 그리고 바론도 분명 내게 마음이 있어 보인다고 내가 말했는데...”

차라리 혼잣말 같은 기쁨의 말이었다.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잖아? 줄곧 바론 얘기만 하는데, 그것도 어쩐 진전도 없는 그 얘길 듣는 게 우리한텐 고역이란 생각 안해봤어?”

그때까지 사태를 관망하던 수현이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보탰다. 그랬구나! 고역이었구나! 나에게 즐거움이었던 그 대화들이 동기들에겐 힘든 일이었구나! 할 말이 많았지만 그 어떤 말도 기쁨의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자신은 그동안 바론과의 관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남들 보기엔 여전히 답없는 짝사랑으로 보였나보다. 그런 마음에 방점을 찍는 은혜의 한 마디.

“그리고... 내가 조심스러워 참았는데, 바론이 여직원들이 주는 연락처를 다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봐도 이건 아냐. 기쁨씨~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그동안 자리만 지키고 있던 은혜의 그 말은 기쁨을 K.O 시키기에 충분한 펀치였다.


지금껏 기쁨은 혼자만의 착각으로 동기들 앞에서 원맨쇼라도 벌인 것인가? 순간 온 몸의 피가 얼굴로 모여드는 것처럼 머리는 불타는 것 같은데, 오히려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려 한기가 느껴졌다. 동기들의 눈에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지 또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비웃었을지 헤아려 보는 일은 방금 생긴 상처를 헤집는 행동이었다.


“네 연애 사정 감놔라 배놔라 할 생각 없긴 한데, 이건 알아야지. 첫눈에 반한 건 결국 외모만 봤다는 거잖아? 그거 결국 섹스하고 싶단 소리야. 우리 유전자엔 우수한 유전자를 보면 번식을 하고 싶은 본능이 새겨져 있거든.”

그 뒤로 이어지는 ‘바론이 너랑 섹스를 하려고나 할지 모르겠다’ 라는 뒷말은 혼잣말처럼 조용히 잦아 들었지만, 기쁨의 귀에는 그 어떤 말보다 선명하게 새겨졌다.


본능, 섹스! 바론을 두고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물론 바론과 키스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상상하고 얼굴을 붉힌 적은 있지만, 본능이니 섹스니 하는 말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자신이 바론과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동기들의 의견을 듣고 나니 맥이 빠졌다. 어쩌면 자신도 그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밝은 미래를 믿고 싶었기에 한 번도 그 부정적인 마음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왔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기쁨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날이라도 잡았는지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비처럼 쏟아졌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너 그 말끝마다 웃는 버릇도 좀 고쳐봐. 촌스럽고 한심해 보여. 그렇게 헤픈 웃음이 바론에게 좋게 보일리도 없잖아?.“

그 소리와 함께 팽팽하게 당겨진 줄 하나가 끊어지며 공기 속으로 튀어 올랐다. 은혜가 살짝 기쁨의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기쁨은 살면서 웃음이 헤프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기쁨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부끄러울 때, 무리한 부탁을 받았을 때 슬쩍 웃음으로 모면하면 유하게 그 상황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헤프다고 평가받을 줄 몰랐다. 헤프다는 표현에 덩달아 따라오는 안좋은 이미지들도 떠올랐다. 스스로 발 딛고 있는 단단한 땅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고 기쁨은 서 있는 것 자체가 아찔하게 느껴졌다.

뒤늦게 얼어붙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연수가 나섰다.

”얘들이 오늘 다 왜 이래? 지난 주에 다들 안좋은 일 있었어? 기쁨아~ 그냥 흘려들어. 다들 남의 일에는 쉽게 말들 하잖아? 우리가 오래 봐와서 표현이 격해서 그렇지 다들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거 알지?“

”맞아요, 기쁨씨. 차라리 소개팅 할래요? 나 대학교때 동아리 선배가 진짜 사람이 괜찮은데, 왜 진작 소개해줄 생각을 못했지?“

은혜도 기쁨에게 치대며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쁨은 그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안았다. 다만 이 상황에서 자꾸만 방어적이 되어버리는 자신이 진심 부끄러웠다. 자신의 사랑이 나아가 자신의 삶이 조롱 당한 것 같아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바르르 떨리는 손끝을 다른 손으로 잡아 눌렀다.


사실 오늘 일요오찬클럽에 나오는 기쁨은 평소와 다른 마음을 먹고 있었다.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모임을 좀 더 잘 이끌어 가기 위해 동기들에게 이런 저런 제안을 해보고자 마음 먹은 참이었다. 필요하다면 그동안 모임에 지나치게 담백한 동기들에게 쓴 소리도 할 생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마음까지 먹었건만 우습게도 상처받은 것은 기쁨 자신이었다.


자신이 모임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동기들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은 사실 자신의 더 큰 즐거움을 위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모임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몰랐다. 웃고 떠들며 보냈지만, 그것들이 평소와 다르단 걸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동기들은 기쁨의 어깨를 따스히 감싸주었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했다. 기쁨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다시 한 번 가슴 속 어떤 섬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그 후로 기쁨은 어떤 생각을 하다가도 어떤 행동을 하다가도 그때의 그 부정적인 그 자리로 매번 돌아오고야 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하는 후회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왜 아무 소리도 못하고 바보처럼 앉아 있었는지 자신이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끝없이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노라면 기쁨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혹시라도 바론과 잘 된다고 해도 그때 내게 나다운 게 남아있을까? 빈 껍데기뿐인 자신을 바론이 받아들여줄까? 다가오지 않은 미래임에도 그 걱정의 깊이가 얕지 않았다. 어느새 자꾸만 깨물던 아랫 입술이 깨져 입안에 피맛이 흘러 들어왔다.


너무 힘들어 일요오찬클럽을 3번 불참했다. 괜찮은 척 연기를 하며 동기들을 다시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시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면 견딜 자신이 없었다. 기쁨은 아직은 타인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단계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동기들에게선 기쁨을 걱정하는 톡들이 들어왔는데 자신들이 너무 심하게 말한 건 아닌지 염려하고 하나 같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입안이 썼다.


그런 중에도 기쁨은 seize the day를 규칙적으로 찾았다. 바론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근사한 얼굴로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그 시원하고 동시에 마음을 데우는 커피 한 잔을 받아 마시면 또 바론에 대한 긍정의 마음이 차올랐다.


기쁨은 바론을 천천히 관찰했다. 그의 멋짐 뒤에 숨겨진 모습이 수줍은 듯 꼬물꼬물 하나씩 드러났다. 커피잔을 잡을 때 새끼 손가락을 펴는 버릇이 있다는 것, 라떼 아트가 서툰 그는 라떼를 찾는 손님이 오면 이든에게 S.O.S를 친다는 것, 주문 손님이 없을 땐 폰을 보기보단 유리창 너머를 멍하니 보고 있다는 것, 그런 사소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즈음 기쁨은 동기들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어렸던 기쁨은 미움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주는 것 없이 밉다‘ 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아주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한 자락이 모두 눈에 거슬려 미워하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어느 순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나 당신이 너무 싫어요. 어쩌죠?”

돌이켜봐도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상대가 어쩌라고? 묻는다 해도 답할 말이 딱히 없는 질문이었다. 그 뒤 운좋게(?) 그 사람이 퇴사를 해서 상황은 진정되었지만. 돌이켜보면 상대에 대한 질투가 깔려 있었고, 그것은 부족한 자신의 투영이었다.


그랬던 기쁨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뒤로 기쁨은 누굴 제대로 미워할 수가 없었다. 미워 죽겠는데도 그걸 그대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성숙한 사회인은 누굴 미워하면 안된다는 것처럼, 상대는 상대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는 룰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을 부정하고 자꾸만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 그 사람이 좀 이상한 건 사실이지만, 이런 것은 장점이긴 해.‘

스스로 객관적이고 싶었을까? 스스로 객관적이어서 그 사람을 미워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납득하고 싶었을까?


폭풍우 치는 바다 위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자 작은 섬에 닻을 내렸다. 비난을 닮은 비판을 받았을 때는 속이 쓰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니 시간이 지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면 바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안그래도 머릿속이 꽃밭인데 거기에 더 많은 꽃을 피웠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바론과의 관계가 진전될 가능성도 더 희박해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쁨은 좀 더 나은 한기쁨이 되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상처받고 조금 단단해진 것만 해도 전보다 나아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그걸 인정하는 걸 망설이게 했다. 자꾸 그 마음을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기들의 말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바늘방석이었던 그날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을 찌르던 칼날에도 시간이 퇴적되어 전처럼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기쁨은 이상하게 누군가를 순수하게 미워할 수 있는 그때가 그리워졌다.

그 날 아침 기쁨은 조깅을 하는 날이 아니었지만, seize the day에 들르기로 했다. 운동시 입던 레깅스와 펑퍼짐한 티셔츠도 밀어두고 꽤 번듯한 옷도 챙겨 입었다. 일요오찬클럽 동기들에겐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고 결과만 알려줄 생각이었다.


기쁨이 카페의 문을 열자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리며 손님의 등장을 알렸다. 뒤돌아선 사내의 모습이 낯이 익다고 생각할 무렵 그가 몸을 돌려 기쁨을 쳐다보았다. 서로의 눈빛이 딱 마주친 순간 기쁨은 그가 살짝 긴장하는 것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기쁨씨~ 웬일이세요? 오늘은 조깅하는 날도 아닌데...”

의외라는 표정에 덧입혀지는 반가운 기색. 주위를 둘러본 기쁨은 바론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론이 매일 같은 시간에 카페에 있다고 생각한 자신은 얼마나 막무가내였나? 손 안에 든 명함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손을 찔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든이 쑥스러운 손짓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기쁨씨~ 제가 할 얘기가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기쁨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와 자신 사이에 무슨 할 이야기 있을까? 그때 이든이 급하게 자리를 옮겨 보라색 마카롱을 챙겨 들더니 카운터를 나서 기쁨에게 다가왔다. 그의 하얗고 긴 손이 기쁨을 향해 뻗어졌다.

기쁨은 마카롱 아래 삐죽 튀어나온 티 코스터 그리고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오래 봐왔어요, 기쁨씨. 이제 기쁨씨와 새로운 관계로 만나고 싶은데 연락 기다려도 될까요?”

그 말을 하면서 이든이 마스크를 끌어 내려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카운터 너머 마스크를 쓰고 바라봤던 이든의 모습과는 제법 다른 모습이었다. 묘하게 눈이 더 쳐져 보여 순한 모습이 조금 의외여서 또 이 고백이 너무 당혹스러워 기쁨은 웃음이 났다.


이번엔 이든이 기쁨과 눈을 마추며 미소를 지었다. 살짝 찡그린 것이 입매인지 눈가인지 불분명한 표정은 마치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여 기쁨은 그 표정이 오래 가슴에 남을 것을 예견했다.


기쁨이 손을 내밀어 이든이 내민 보라색 마카롱과 티 코스터를 받았다. 손 안쪽을 찌르던 명함의 모서리가 땀에 젖어 더 이상 손을 찌르지 않았다.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