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일상
책들은 그녀가 꽤 절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곁엔 언제나 책이 있어왔다. 외출할 때 가방에 책 한 권이라도 담아야 했기에 작은 가방을 드는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밖에서 책을 읽고 안읽고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책이 항상 그녀 옆에 있어야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책들이 증언했다. 마치 부적이나 되는 것처럼.
실제로 그녀가 남들보다 월등히 많은 책을 읽었냐면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취미를 물었을 때 그것이 너무 구태의연한 걸 알면서도 독서를 뺄 수는 없는 그런 것? 동시에 집요한 면모도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연장하고 다른 이름으로 빌려 가면서까지 끝끝내 다 읽어내고야 말았는데, 그 마음은 집착을 닮아 있었다. 아마도 본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질수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책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이 의견을 내놓았다.
대부분이 잠든 이른 시간 또는 늦은 밤 그녀는 자신만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 자는 시간을 양보한 시간임에도 그녀는 어느 때보다 느슨했고 어느 때보다 맑은 눈빛을 빛내고 있다고 책들은 말했다. 하루종일 티나지 않는 일들로 종종거리면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았던 그녀가 그 시간엔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그래서 책들도 그 시간을 즐겼다. 그때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책에 몰입했기에 그녀와 더 친해질 수 있었다고. 책의 페이지 끝을 잡은 손끝의 온도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고.
가끔 그녀는 책을 집중해 잘 읽다 뜬금없이 딴짓을 하기도 했다. 처음 그 일을 목격한 책들은 당황했다고 한다. 그럴 타이밍이 아닌데 왜 저럴까? 싶었단다. 일반적으로 슬픈 장면이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갑작스레 그녀는 책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맞닥뜨린 활자에서 영감을 받거나 슬픔, 감동에 잠식될 때 그녀가 그것을 정면으로 대면하길 두려워한다는 것을 책들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계중에는 그녀와 더 특별한 경험을 한 책들도 있었다. 바로 그녀가 소리내어 읽은 책들이었다. 특히나 쉽지 않은 인문서적들, 때론 소설들까지 그녀는 소리내어 읽었는데,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종이 위의 활자들은 강한 힘에 의해 그녀에게 가 닿았더란다. 또 가끔 그 소리내어 읽기는 징검다리가 되어 그녀의 아이를 책에게 안내하기도 했다. 그때 책들은 예기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 어색하게 ‘안녕’ 인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끊임없이 읽는 사람은 쓰고야 마는 것일까? 책을 곁에 오래 두던 그녀 역시 얼마 전부터 손에 다시 연필을 잡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끼는 그 시간, 테이블 위엔 책 말고 연필로 끄적이는 노트 한 권과 노트북이 올라왔다. 그녀는 전과 다름없이 살림을 살피고 아이를 키웠지만 스스로 만든 미지의 시간에 자신의 안에 고여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 모습들은 책들에 의해 고스란히 목격되었다.
사람이 먹은 음식은 그 사람을 만든다. 그래서 유기농 농산물을 찾고 화학성분이 덜 들어간 가공식품을 찾으려 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의 정신도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의 정신 모두가 책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순 없지만, 책이 맡은 몫이 작지 않다고 많은 책들이 입을 모았다. 절박하게 책에 매달리던 그녀였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당연해 보였다. 책들이 그녀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냈다.
그녀가 언젠가 내어놓을 그것은 책들의 새 친구가 될 것이고 자신들이 받게 될 최고의 선물임을 책들은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