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날들이 있었다. 혹여나 술꾼처럼 보일까 봐, 혹은 사치를 즐기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애주가이고 가끔은 꽤 좋은 와인을 마시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와인을 향한 내 사랑을 정의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니까. 이제 나는 와인을 사랑해 온 내 시간이 오크통 속의 붉은 액체처럼 깊게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그 시간은 코와 입을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한 모금 머금으면 싱그러운 과일 향이 퍼지다가 점차 긴 밤의 이슬과 바다의 바람을 드러내고, 깊은 숲 바닥의 낙엽과 그 아래 숨겨진 버섯의 향이 서서히 피어오르듯이 말이다.
나의 와인 사랑은 뉴질랜드로 이민을 온 후, 스무 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내 앞에 놓인 녹색을 머금은 황금빛의 액체는 성인이 된 나를 유혹하는 백설공주의 사과처럼 강렬했다. 와인 생산국인 뉴질랜드에서 10불 대면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소비뇽 블랑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 와인은 그저 ‘술’이었다. 다만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와인 잔을 기울이는 이곳의 문화는, 술에 대한 막연한 죄책감을 덜어주곤 했다.
이민 초기, 높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 서 있던 나의 가장 친한 술친구는 아빠였다. 아빠는 가끔 30~50불대의, 당시 내 기준으로는 꽤 고가였던 와인을 사주시곤 했다.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날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쓴맛 하나 없이 풍성한 과실 향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온몸으로 퍼지던 그 여름밤의 알딸딸한 행복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아빠의 도움 없이도 취향껏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와인을 단순한 알코올 그 이상의 가치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품종과 역사, 그 병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마시는 행위의 본질적인 목적이 되었다. 값비싼 프리미엄 와인의 마케팅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숨겨진 보물 같은 와인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 샤도네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데, 프랑스 와인 가격의 삼분의 일로 천국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나만의 작은 천국이라 할지라도 나는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이 가성비 좋은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물론 뉴질랜드 와인 가격도 오르는 추세라, 조만간 이 천국에서 방을 빼고 또 다른 낙원을 찾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병의 와인이 가진 맛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함께 마시는 사람과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모든 와인은 고유한 향을 지니기에, 그 향이 특별한 순간과 연결될 때 기억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마법이 된다.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온 가족이 휴양지에 모였던 날이 기억난다. 아빠는 오랜만에 만나는 딸과의 추억이 담긴 클라우디 베이 샤도네이를 사오셔서 호텔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그런데 남편이 냉장고 문을 너무 세게 여는 바람에 그 귀한 보틀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와인의 가격보다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이 깨진 것만 같아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결국 우리는 깨진 와인 대신 호주산 비오니에를 사서 마셨지만, 그날의 청량감과 아득했던 밤의 공기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렇게 와인은 나에게 기억의 저장고가 되었다. 생산자와 빈티지 앞에 언제, 어디서, 누구와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완벽한 추억을 복원하는 매개체가 된다. 멜번에서 12월 31일 친구와 마신 피노 누아와 피지에서 동생의 결혼식 정찬에 함께한 샴페인은 잊혀지지 않는다. 또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남편과 전해에 고른 와인을 일 년간 보관했다가 마시곤 하는데, 그 와인의 이름은 남편의 머릿속에선 사라졌을지 몰라도, 매 순간의 대화와 온기가 와인의 향과 함께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와인 잔 속에서 수많은 향이 겹겹이 쌓여 복합미를 만들어내듯, 내가 와인을 마셔온 시간 또한 와인의 다층적인 레이어처럼 익어간다. 앞으로도 나는 새로운 보틀을 열 때마다 그 속에 담긴 맛과 함께, 내 인생의 또 다른 레이어를 차곡차곡 쌓아가겠지. 내 반세기를 이끄는 마법 같은 포도송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익어간다. 오늘을 사는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