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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araxia Sep 18. 2019

그가 '소외계층'이면 나는 '인싸'인가

사회적 감수성과 차별의 언어

 "미스 X, 이리 와서 식사 같이 하지?”


 기자 시절 때 일이다. 한 행사장에 취재를 갔다가 당시 다니던 신문사 사장의 부친을 우연히 뵙게 됐다. 사회원로로 꽤 영향력을 행사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반갑고 친근하게 응대해주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시는 것까진 정말 좋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나를 챙겨 주신다며 큰 소리로 부르기 전까진 말이다.


“미스 X, 이쪽으로 와요!”  ‘미스 X’이란 호칭을 태어나 처음 들어본 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신문사에 입사해, ‘X기자’란 호칭에만 익숙했던 나는 너무나 생경하고 당황스러웠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미스 아무개’라고 하면,  80년대 영화 속 다방 종업원을 연상시키는 호칭이 아닌가. 이제는 사무실의 젊은 사무보조원들에게도 감히 쓸 수 없는 일종의 금기어다.


 평소 그분의 소탈한 언행과 나에게 베푼 호의를 생각할 때 ‘미스’란 호칭 속에 젊은 여성에 대한 비하적 태도나 차별적 의미를 담았으리라 생각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분이 생각보다 ‘올드(old)’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




 시대가 바뀌면 언어도 달라진다.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적합한 언어를 구사하는 데 사회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최근 미디어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단어 하나가 '결손가정’ (缺損家庭 , broken family)이다.  ‘결손가정’에 대해 네이버 국어사전은 ‘부모 한쪽 또는 양쪽이 죽거나 이혼하거나 따로 살아서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정’이라고 정의한다.  


 부모 중 한쪽만 없어도 정상적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불우한 가정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결혼한 부부와 그 사이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가족형태를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간주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든 결과다. 하지만 이혼이 일상화되고, 가족 구성이나 가족가치가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에 맞는 않는 시대착오적 언어다.

 


 우리말은 ‘구분 짓기’를 즐긴다. 한자어를 활용해 압축적 의미를 담기 쉽다 보니, 가급적 '자세한’ 정보를 담은 어휘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구분 짓기는 대개 상하 우열 관계를 형성하고, 차이를 부각해 차별로 이어지게 한다. 이때 발화(話) 대상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어휘만 봐도 그렇다. 영어에서는 남편의 부모든 아내의 부모든 모두 ‘파더인 로우(father-in-law)’ '마더인 로우(mother-in-law)’다. 한국어에서는 ‘시아버지/시어머니’ 그리고 ‘장인/장모’로 구분된다. 또한, 남편의 본가는 '시댁', 아내의 본가는 ‘처가’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여권이 신장되면서, 이제 성평등 이슈는 어느 분야에서든 빠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가족 호칭에서도 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정 내 차별적 용어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다 최근엔 서울시여성재단이  ‘성평등 언어 사전’에서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시아버지/시어머니', '장인/장모' 모두 그냥 ‘아버님/어머님’으로, ‘친가’는  ‘아버지 본가', ‘외가’는 ‘어머니 본가’식으로 통일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이나 ‘미혼모’라는 표현 역시 문제 소지가 많다. 


'다문화’ 출신으로 첫 국회의원을 지낸 이자스민 씨는 퇴임 직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 국회에 왔을 때 ‘다문화’라는 용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주민을 일반 시민과 구분 짓고, 역차별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다문화가 유행이 돼 버렸다. 시민단체와 기업들이 다문화를 내세워 이벤트성 사업을 펼치다 보니 다문화만 지원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그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 건너왔을 때보다 점점 더 한국땅에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고 한다. 유학생이겠거니, 국제결혼한 새댁이겠거니 하던 시선이 ‘다문화’라는 프레임이 형성된 후 차별과 멸시의 눈초리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미혼모’라는 호칭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따라)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미망인'(未亡人) 같이 미혼모(未婚母)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엄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10대 탈선과 비행’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차라리 영어의 '싱글맘(single mom)’이 깔끔하다. 사별했든 이혼했든 아예 결혼 자체를 한 적이 없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게 차라리 덜 차별적이다. 정부가 '미혼모’란 명칭을 지양하고, 한쪽 부모만 있는 가정을 모두 ‘한부모가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흔히 마주치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소외계층’이란 말이었다. 


 연말연시나 추석이 다가오면 ‘높은 분’들은 어김없이 ‘소외계층’을 위한 민생행보를 펼쳤다. 특별한 때만이라도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살피고,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전달하는 것은 좋은 취지다.


 하지만 그들이 ‘소외계층’이라면 그들이 아닌 나머지 모두는 ‘인싸(인사이더)’란 말인가. 나는 언젠가부터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분들’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며 구분과 경계를 되도록 희석시키려 애썼다.

 


  책 <차별의 언어>에서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는 "'우리’라는 단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하게 사용하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배척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언어는 사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사고의 울타리도 함께 치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말한다.


 ‘소외계층’과 '우리’ 간 울타리를 치면서 나는 그들과 다름을 안위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언어에 드러난 우리의 무의식을 되짚어 보게 한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지만, 대개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쓰는 대로 익숙한 대로 말한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누군가에게 낙인이 되고 상처를 남긴다면, 낯섦을 감수하고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야 한다. 


 불감증의 시대,  '감수성의 언어'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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