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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Dec 30. 2023

메리 크리스트레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흐즈므르-_-+

우리 부서는 공용 엑셀파일에 연장근무 내역을 기록한다.

올해 12월 연장근무 내역을 열어보니, 대다수의 팀 근무자들이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에 조기출근이나 연장근무를 진행했다. 나도 예외 없이.



눈 덮인 인천공항. 저흰 눈 오면 힘들어요. ㅠㅠ



교대근무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나 크리스마스에 당연하게 근무하는 것을 빼고, 왜 이렇게 많이들 연장근무를 진행했냐 하면... 23일부터 25일 아침 내내 인천공항에 눈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단순히 근무 시간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근무 강도가 매우 세지기 때문에 비행장관제사라면 누구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리 반기지 않을 것이다.




휴일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바쁘게 싸워야 하는 관제사로 일한다면 확실히 스트레스에 강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든지, 아님 스트레스를 아예 받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관제사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새롭게도 이런 얘길 들었다.


“어유, 힘드시겠네요. 계속 긴장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정곡을 찔린 동시에, 저 사람은 관제를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잘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관제를 한다는 것이 확실히 마음 편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차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보통의 다른 일들은 몇 년쯤 하면 숙련이 되어서 힘들지 않은데 관제는 경력이 오래되어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내 연차쯤 되는 관제사들끼리만 아주 잠깐 관제실을 지키고 있으면 어느 순간엔가 경력이 20년 이상씩 된 조장님들이 관제석으로 찾아와 ‘별일 없었지?’라 묻는다. 관제를 하고 있는 내 뒷 배가 이렇게 든든하구나라는 안도감과 아직 나는 물경력을 못 벗어났구나 하는 자책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이다.


 아무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만든 작은 실수가 큰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관제사는 긴장상태로 근무하게 된다. 언젠가는 애플워치에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어플을 받아 근무 내내 끼고 있던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관제업무를 하고 있는 동안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한다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근무를 하는 동안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는 건 비정상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관제업무 특성상 필요한 일이기도 하니까.



비행기가 정말 많이 늘었다. 처음보는 하얀색 에어아시아.



단시간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하는 관제사는 일정 시간 동안 근무하면 그다음 일정 시간 동안은 반드시 관제석을 벗어나 휴식하도록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이런 규정에 더해서 최근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관제사 *피로관리제도이다.

*피로관리제도(FMS, Fatigue Management System) : 항공종사자의 스트레스 및 피로를 관리하기 위해 시행되는 제도.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에서 조종사, 객실승무원, 운항관리사를 적용 대상으로 한다. 피로위험관리제도(FRMS)의 상위 개념이다.
관제사는 적용이 잠시 유예되었다.


현대 항공사고의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 의한 것이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항공기나 각종 장비가 고장 나는 것보다는, 급증한 교통량과 업무시간을 핸들링해야 하는 항공업 이해관계자의 행동이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항공교통관제사는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비행기와 교신하고 교통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아프거나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상태에서는 근무를 지양해야 한다.


또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세계적 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항공업이 언제까지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공항 운영, 항공사, 지상조업사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무급휴직을 하거나 사직을 하는 상황을 겪으며 불안지수와 스트레스지수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대비 항공종사자 건강증진 방안:싱잉볼 명상을 중심으로], 2023, 송창선


적당한 스트레스는 업무에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과하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항공안전과 직결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피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피로관리제도의 적용대상이 적어보인다. 곧바로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상조업종사자와 현장에서 뛰는 공항운영자 등이 포함되어야 항공안전이 보다 잘 지켜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브날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심지어는 오늘도! 눈 오는 공항을 지킨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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