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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Sep 09. 2024

남편이 주부라서 행복한 여자의 삶

더없이 편안하고 안정적이에요

어렴풋하게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와 잠에서 깼어요. 톡톡, 아마도 달걀을 깨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살짝 젓는 소리가 나더니 지글거리는 걸 보면 역시 달걀말이인 것 같아요. 더불어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도 작게 나고, 싱크대의 물소리도 끊임없이 나고 있습니다.



아까 육개장을 한다더니, 오늘 저녁은 육개장이랑 달걀말이인가



환절기에는 귀신같이 컨디션이 떨어지는 몸이라서 빠르게 일을 마치고 오후 늦게 잠시 낮잠을 청했거든요.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40분. 그래도 1시간은 좀 쉰 것 같습니다.



부스스 일어나 주방 쪽을 보면 엄마, 아니 남편이 제가 일어난 것도 모른 채 요리에 빠져 있어요. 국을 한 입 맛보고 전자레인지에 밥을 돌리고 밑반찬도 담아내고 바로바로 설거지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엄청 집중한 모습입니다. 이럴 때 갑자기 소리내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라 조용히 작은 방에 들어가 불부터 켭니다.



이내 남편이 다가와 말하네요. "깼어~잘 잤어?" 하루 24시간을 붙어있어도 잊지 않는 우리 부부의 안부 인사. 네, 저희는 24시간 함께 지내며 집에서 일하는 부부입니다.




저는 컴퓨터로 일하고,
남편은 집안일하며 살고 있어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면 늘 청소부터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핍니다. 열심히 쓸고 닦고 보수할 것들이 없다면 아침을 차려내고 저를 살펴요. 식사하고 제가 일하러 작은 방에 들어가면 곧바로 설거지를 하고 잠시 쉬다가 점심을 준비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빨래거리를 모아 세탁기를 돌리고 널어둔 빨래를 걷어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하고요. 이후에는 장을 보러 나가거나 운동을 다녀와요. 그리곤 바로 저녁 준비하고 저녁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하루를 마무리하죠.



남편에 비하면 저의 일상은 퍽 단순합니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씻고 일하고, 점심 먹고 일하거나 가끔 운동을 다녀오고, 저녁 먹고 일하거나 조금 노닥거리다 하루 마무리. 어쩌다 보니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고 있어서 남편이 힘들 것 같은데 의외로 즐거워하며 요리하고 있어요.



사실 오늘의 글은 남편의 요리를 자랑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베이킹과 양식을 좋아해서 빵을 좋아하던 남편은 중식과 한식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정말 다양한 요리를 하고 있어요. 사진으로 한번 보시겠어요?





유튜브에서 보고 좋아 보이는 요리는 바로바로 해주는 남편이라서요. 비계를 잘 먹지 않는 저를 위해 살코기 육개장이 밥상에 올라왔네요. 수제 카레와 마늘 후레이크를 얹어 바삭하게 구워낸 야채구이도 일품이에요. 장아찌와 김치류도 당연히 남편이 직접 담근 것이고요.



마파두부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 부부만의 입맛에 꼭 맞는 스타일로 완성한 맛인데요. 제가 중국요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남편이 종종 해주던 요리예요. 항상 맛있었지만 중국스러운 느낌이 더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작년에 대만도 다녀오고, 치앙마이에서 중식당을 몇 번 가보더니 바로 그 맛을 재현해 냈습니다. 제 입맛에 너무너무 꼭 맞는 최고의 마파두부랍니다.





물론 베이킹도 빠질 수 없죠. 저희 집은 양념이나 소스가 잔뜩 묻는 빵들을 제외하곤 대체로 만들어 먹어요. 케익도 시트를 구워 직접 생크림을 쳐서 과일을 얹어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당연히 생과일도 듬뿍이고 생크림도 신선한데 시판 케익보다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요. 케익도 케익이지만 남편표 식빵은 정말 촉촉하고 결이 살아있어서 행복해지는 맛이에요. 제빵기 없이 오븐만으로 식빵을 만들려니 너무 오래 걸려 고생이라서 최근에는 제빵기도 하나 들였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맛있는 빵들이 만들어질지 기대하고 있어요.



어떤가요, 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요 :)








사실 양가 부모님은 약간의 걱정과 반신반의하시는 분위기에요. 결혼하고 남편은 주부로 저는 재택근무로 삶을 영위한 지 3년째인데도 아직 걱정이 많으세요. 그래도 남자가 일해야 하지 않니, 이렇게 쉬다가는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니, 너는 정말 괜찮은 거니 등등 조심스레 나오는 질문에서 걱정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말 각자에게 너무 알맞은 삶의 형태로 살고 있어서 무척이나 만족스럽거든요. 되려 시간이 갈수록 서로 적성에 맞다고 느끼고 있고요. 그렇다 보니 단순히 좋다는 말만으로는 어른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어려운 것 같아서, 이제는 결과물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월요일인 오늘 역시도 저희 부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저에게 살뜰하게도 간식을 챙겨주는 남편. 오늘의 간식은 요구르트, 남편표 초코 파운드, 그리고 목 막히지 말라고 가져다준 아주 많은 물이 담긴 컵이네요. 저는 진정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




저의 사랑스러운 남편은 어엿한 3년 차 주부입니다. 요리, 청소, 빨래부터 인테리어까지 못하는 게 없는 남편이 주부로 살게 된 이유는 아래 글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본 매거진에서는 아내가 보는 주부 남편에 대한 시선을 담습니다. 이번 글이 즐거우셨다면 구독,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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