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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Sep 16. 2023

결혼하고 찾은 남편의 진짜 적성

남편이 주부로 이직해 성공했습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집안일에 유독 재능을 보이던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어. 아니 현부양부라고 해야 하나?"



그럼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랑 결혼하면 현모양처 시켜줄게."



만난지 꼭 3년이 되던 해, 신랑은 휴직을 했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허락받을 때도 걱정이 많던 그였지만 휴직을 권유했을 때도 만만치 않았다. 한 직장에서 꼬박 10년이나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가장 길게 일한 직장이 2년이 조금 넘고, 거의 1년 단위로 이직해 온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퇴사를 권했었다. 연애 시절 그의 회사 생활을 지켜본 결과, 나와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역치값 자체가 달랐다. 사회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고 해야 할까. 결국 설득에 설득을 거쳐 퇴사가 아닌 휴직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리하여 시작된 신랑의 주부 생활.








휴직을 시작한 초반 몇 개월, 신랑은 정말 쉴새없이 불안해했다. 나 진짜 쉬어도 되는 거 맞아? 우리집 가계 경제 진짜 괜찮은 거지? 이렇게 경단남이 되는 건가... 등등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고민들을 쏟아내기도 했고. 일하던 분야의 뉴스를 매일 습관처럼 확인하고, 직장은 물론이고 자주 협업하던 회사들의 홈페이지를 염탐하기도 했다.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서 좋아하던 취미 클래스도 등록해줬지만, 왠지 모를 우울감은 계속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하면서도 내심 걱정도 되었다. 주부로 잘 지낼 줄 알았는데, 사실 주부가 맞지 않는 거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무색하게도 몇 달이 지나자 신랑은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배우고 싶었다던 디자인 툴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서 들었고, 결혼을 하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집안 곳곳을 직접 페인트칠하고 시트지를 붙이며 꾸미기도 했다. 신랑은 꾸미는 것들에 재미를 느끼며 즐거워했는데,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시간과 품이 꽤 많이 필요했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취미일지는 알 수 없어도 행복해하니 괜찮겠지 싶었다.



잠깐의 디자인 취미 생활을 마치고 신랑은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파트라는 생활 공간을 직접 꾸미는 건 처음이라 잘하고 싶었는지, 틈만 나면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도통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최소 열 번 이상의 가구 대이동 이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만족할 수 있게 된 신랑은 그제서야 주부로서의 생활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신랑의 청소 카트와 먼지털이개



가구의 위치가 안정되자 청소의 루틴이 만들어졌고, 청소의 루틴에 따라 알맞은 형태와 소재의 청소 도구가 필요해졌다. 타조털 먼지털이개라던지 물기를 훑어내는 와이퍼라던지 베란다 물청소하는 플라스틱 빗자루 등등이 속속들이 집에 채워졌다. 나름 10년을 자취했지만 몰랐던 것도, 사볼 생각도 안 해본 것도 있어서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바닥은 꼭 무릎을 꿇고 걸레로 닦길래 허리가 아플까 걱정되어 밀대를 사주었건만, 깨끗하게 청소되지 않는다며 그건 쓰지도 않는다. 아무튼 몇 번의 시도 끝에 적절한 청소 도구가 구비되었고, 청소가 안정되자 요리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신랑은 어릴 때 잠깐 요리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어서인지 자취할 때도 요리 실력이 상당했고, 연애 시절 그의 음식들을 기쁘게 먹은 기억이 많다. 그럼에도 결혼 초에는 오히려 신랑의 요리를 자주 먹지는 못했는데. 집밥을 하기는 했지만 늘 요리를 하고 나면 지친 모습을 보이는 탓에 외식을 하자고 먼저 말할 때도 많았다. 바깥 음식에서 오는 자극적인 맛을 즐기기도 했었고.



그러던 그가 휴직에 적응하고, 생활 공간에 적응하고, 청소 루틴이 완성되자 달라졌다. 기본적인 식단이 풍성해졌고, 다양한 맛과 재료의 한식이 펼쳐졌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음식을 해줬고 정말 맛있었다. 한식을 제패하자 외국 가정식이 도입됐다. 열심히 요리 유튜브를 보며 식단을 고민하던 신랑은 한식보다 쉬울 것 같다면서 각종 가정식 요리를 시도했다. 프랑스식 돼지고기 요리, 이탈리아식 토마토 스튜, 우리 스타일로 변형한 태국의 똠얌꿍 등 사실상 된장찌개에서 재료만 조금 달라졌는데도 색다른 요리가 되곤 했다.



맛있는 요리를 매일 먹게 되면서 도리어 속도 편해졌다. 외식으로 먹는 음식들은 오히려 과하게 자극적으로 느껴졌고 먹고 나면 속도 더부룩했다. 갈수록 입맛이 높아지면서 신랑이 새롭게 시도하는 요리들은 더 맛있어졌다. 완벽하게 주부로서 적응한 그는 퇴사를 했고, 바깥에서 사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음식들도 용기있게 도전하기로 했다.




빵과 커리는 물론이고 식혜도 만든다




이제 신랑은 집에서 캄파뉴, 식빵, 카스테라, 마들렌, 케이크, 치아바타까지 제과제빵을 다 한다. 휘핑기로 직접 생크림 케이크까지 만드는 건 물론이다. 최근에는 커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 쿠팡에서 무려 수십 가지의 향신료가 배송된 후부터 매일 같이 커리 유튜브를 보던 신랑이었다. 드디어 며칠 전 난을 직접 반죽해 굽고, 향신료들을 조합해 소고기 커리를 만들어 찍어 먹었다. 감동적인 맛이었다. 신랑 덕분에 나는 어지간한 바깥 음식은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잠깐씩 쉬어가는 시간에도 살림 잘하는 유튜브를 보고, 부지런히 여러 국가의 요리법들을 공부하고 시도하는 그를 보며 주부시키길 참 잘했다 생각한다. 또 요리도 청소도 그 외의 집안일도 즐겁게 하는 그를 보며, 집안일도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한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저렇게 행복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나는 못할 것 같기 때문에 :)



신랑은 진짜 적성을 찾았다. 신랑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또 그와 함께하는 내일, 내년, 먼 미래의 나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아마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집에서 엄청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겠지?





✨본 매거진에서는 주부로 취직한 남편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을 다룰 예정입니다. 이 글이 즐거우셨다면 매거진 구독도 살짝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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